‘정신적 귀족’ 보수주의자의 길 그 근간은 기독교적 세계관
2012.04.25 16:11
‘정신적 귀족’ 보수주의자의 길 그 근간은 기독교적 세계관
[윌리엄 버클리의 <예일대에서의 신과 인간>을 읽고]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또 대한민국에서 보수주의는 가능한가? 이 두 가지 질문이 요즘 필자의 머리를 사로잡고 있는 화두이다. 좌익이나 중도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우익진영에서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입장이 다양하다.
우선 ‘보수주의’란 말을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이 있다. 첫째, ‘보수’란 말 자체에서 부정적 어감이 느껴지기 쉬우며, 특히 젊은 세대가 이 단어에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상, ‘전술적’ 혹은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이 용어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서, 과연 우리 운동이 ‘보수주의 운동’이냐는 질문이다. 즉 ‘보수주의’라고 부른다면 ‘무엇을 보수해야 하는지’를 명백히 해야 하는데, 그것 자체가 분명하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리 운동의 보수는 ‘헌정수호개념’이다”라는 답변도 있지만, 이 역시 통일성을 확보하고 있지는 못하다. 따라서 ‘보수주의’보다는 ‘애국진영’ 혹은 ‘자유민주진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대한민국에 진정한 보수주의가 있을까
사실 현재 우리 ‘보수진영’(앞의 주장대로라면 ‘애국진영’ 혹은 ‘자유민주진영’) 전체가 ‘정치철학적 의미에서의 보수주의’ 진영인 것은 아니다. 아니 우리 진영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산업화세력의 경우는 ‘보수’라기 보다는, 대한민국 ‘근대화’를 이끈 ‘진보세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
또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부르고, 또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자’(classical liberal)들도 많다. 이들의 경우 ‘경제적 보수주의자’로 분류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많은 경우 ‘보수주의’로 분류되는 것을 꺼리고 있으며 그냥 ‘리버테리안’(libertarian)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현재 ‘안보 보수주의자’들의 경우 ‘반공’과 ‘국가 안보’라는 측면에서 ‘보수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으나, 반공과 안보를 제외한 다른 정치철학적 혹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리버럴’(liberal)인 경우가 허다하다. 즉 우리 진영은 단일 이념집단이라기 보다는 ‘정치 전선체’(political front)이며 따라서 ‘보수진영’보다는 ‘자유민주진영’이라 불리는 것이 전술적으로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더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한국 보수주의의 입지는 어디에 있는가? 아니 대한민국 토양에서 ‘영미식 현대보수주의’가 자라날 수 있을까? ‘자유주의’란 용어를 선호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대한민국에는 보수주의의 토대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첫째, ‘기독교적 세계관’이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영미식 보수주의가 가능하려면 사회 근저에 ‘불완전한 인간관’과 ‘인간 인식론에 대한 한계론’과 같은 기독교적 세계관이 전제가 돼야 하는데 그 기반이 약하다는 것이다. 특히 ‘세속주의’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돼버린 한국 사회에서 ‘절대자’로서의 신(神)을 전제로 하고 있는 서구의 ‘보수주의’가 설 자리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둘째, ‘보수주의’는 ‘귀족적’ 혹은 ‘봉건적’ 유산을 영양분으로 성장하는 것인데 한국에는 그러한 토대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다. 일제와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를 거치면서 한국의 ‘귀족적 토대’는 정치적 경제적 의미는 물론 정신적 의미에서도 붕괴해 버렸으며 그러한 측면에서 ‘보수주의’는 뿌리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답을 구하기 위해 윌리엄 버클리의 <예일대에서의 신과 인간>(1951)을 읽어 보았다. 이 책은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이른바 ‘6대 경전(canon)’의 하나이다. 나머지 ‘6대 경전’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drich Hayek)의 <노예로의 길>(The Road to Serfdom)(1944), 휘태커 챔버스(Whittaker Chambers)의 <증인>(Witness>(1952), 러셀 커크(Ressell Kirk)의 <보수주의 마인드>(The Conservative Mind)(1953),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의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Conscience of a Conservative)(1960),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자유와 자본주의>(Freedom and Capitalism)(1962) 등이다.
미국 보수주의의 ‘6대 경전’
<예일대에서의 신과 인간>은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대부’ 윌리엄 버클리가 25세 때 쓴 책으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보수주의 운동가’로서의 버클리의 생애가 시작됐으며, 또 다른 의미에서는 미국 현대 보수주의 운동 그 자체가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은 미국 최고 엘리트 양성기관의 하나인 예일대에서의 ‘세속주의’와 ‘경제적 집단주의’를 비판한 책이다. 버클리는 이 책을 통해 절대자로서의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과 ‘자유시장경제’를 부인하는 ‘경제적 집단주의’가 예일대의 강단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있는데 이를 ‘학문적 자유’라는 미명 하에 그냥 방관하고 있으면 미국을 지탱해 온 문명이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자유방임 교육’(laissez-faire education)을 비판하면서 이른바 ‘가치중립’이란 결국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선과 악을 구분하는 가치(value)와 덕목(virtue)을 배제한 학문은 ‘고학력 바보’들만 양산할 뿐이며 결국 교육의 중심은 가치와 덕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버클리가 말하는 가치란 기독교적 문명과 자유시장질서이다. 또 버클리는 이러한 주장이 반(反)자유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자유사회(free society)를 파괴하자는 ‘자유’를 허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어느 사회나 그 사회를 지탱시켜 주는 기본 정설(orthodoxy)이 존재하며 이러한 필수적인 최소한의 기본토대마저 부정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이다.
비(非)기독교인이 이 책을 읽으면 당혹스러울 수 있다. 버클리는 ‘무신론’과 ‘불가지론’ 등과 같은 세속주의를 공격하면서 ‘유대-기독교 문명’을 보수(conserve)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맥스 이스트먼(Max Eastman)이란 반공주의 무신론자와 논쟁한 적도 있었는데, 버클리는 무신론자가 반공진영의 일원 혹은 우익이 될 수는 있지만, 보수주의자는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즉 절대자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훌륭한 우익인사는 될 수 있지만,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무신론자는 ‘우익’은 돼도 ‘보수주의자’는 될 수 없다
미국에서도 1950년대만 하더라도 ‘보수주의’라는 말은 부정적 뉘앙스를 띠는 말이었다. 버클리 자신도 <예일대에서의 신과 인간>을 서술할 당시만 하더라도 ‘보수주의’라는 용어보다는 ‘개인주의’(individualism)를 선호했다. 그러나 1955년 <내셔날리뷰>(National Review)를 창간한 이후에는 자신의 이념이 ‘보수주의’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미국 현대 보수주의의 원년은 <내셔날리뷰>가 창간된 1955년이다. 이러한 버클리의 미국 현대 보수주의는 ‘퓨전’(fusion) 보수주의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대 보수주의적 흐름을 통합해 낸 것이기 때문이다.
전후 3대 보수주의 첫 번째 흐름은 반(反)뉴딜 자유시장주의자들과 이들에게 확고한 이념적 토대를 제공한 미제스, 하이에크와 같은 오스트리아 시장경제학파를 중심으로 형성된 ‘경제적 보수주의’ 혹은 리버테리안적 흐름이다.
둘째는 러셀 커크 등을 중심으로한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인데 이들은 18세기 영국의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 사상을 보수주의 철학의 기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버크주의자’로도 불린다. 이들은 신(神), 전통, 명예, 공동체 등을 중시하는 입장을 취했는데, 원조인 버크보다도 더욱 기독교적 세계관 혹은 가치관을 신봉하며, 이를 서구문명의 기초로 간주하는 ‘철학적 혹은 신학적 보수주의자’들이다.
또 이들은 1950년대 미국 공화당 기득권 세력을 일컫는 보수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뉴보수주의(New Conservatism)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여기서 뉴보수주의는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와는 전혀 다른 흐름이다.
셋째는 휘태커 챔버스 등이 중심이 된 ‘반공적 보수주의’ 흐름이다. 이 흐름은 주로 1930년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다가 전향한 경력의 인텔리들에 의해 형성됐는데 소련의 팽창정책에 맞서는 ‘강한 미국’을 주창했다. 훗날의 ‘신보주의자’들의 선배격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신보수주의자’들이 트로츠키계 공산주의 출신의 유대인들이 다수라는 점에서 인맥 상 다른 흐름을 보인다.
미국 현대 보수주의의 시초는 격주간 <내셔날리뷰>
사실 이러한 3가지 흐름의 결합이 원만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틀라스>의 저자 아인 랜드와 같은 리버테리안은 보수주의임을 거부하고, <내셔날리뷰>가 중심이 된 이른바 ‘퓨전’파와 대립했으며, ‘반공적 보수주의’ 흐름에서도 ‘인텔리’들의 대부분은 ‘퓨전’에 합류했으나, ‘버치 협회’와 같은 반(反)지성적 흐름은 <내셔날리뷰>와 사상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전통적 보수주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흐름의 주류인 러셀 커크가 합류했지만, 버클리의 친리버테리안 경향에 등을 돌린 ‘전통적 보수주의자’도 적지 않았다. 어찌했든 여러 갈래의 미국 보수주의 흐름은 1955년 <내셔날리뷰>란 저수지에 모여서 융합(혹은 퓨전)됐고 이후 1964년 배리 골드워터의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치세력화 혹은 대중운동화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1980년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으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첫 보수주의 정권’을 창출한다. <미래한국>도 한국의 <내셔날리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잡놈’이 자랑이 되고, ‘개념’이 ‘겉멋’과 동의어가 되고 있는 세상에서 ‘정신적 귀족’임을 자부하는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외롭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남자를 남자라고 부르고, 여자를 여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수주의자는 보수주의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래한국)
2012년 04월 02일 (월) 11:29:39 황성준 futurekorea@futurekorea.co.kr
황성준 편집위원·동원대 초빙교수
출처: 미래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