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이 사법부까지 독점하는 디스토피아를 우려한 작가의 상상력이 먼 나라의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문재인 정권이 법무부를 내세워 검찰 장악에 몰입하고, 사법부까지 충복(忠僕)들로 채우려고 한다. 이미 정권에 기여한 일부 정치 판사는 4월 총선에 나온다고 한다. 우리 현실이 디스토피아 소설을 뺨친다. 이런 정권의 핵심엔 이른바 586세대 특권층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디스토피아는 민주화를 외친 586세대가 장기 집권해 뒷세대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아이러니를 보여줄지도 모른다. 세대론을 떠올리다 보니 소설가 김영하가 지난 2007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 '퀴즈쇼'가 생각났다. 1980년에 태어난 청년 백수의 삶을 그린 소설이었다. 소설 주인공은 자기 세대를 이렇게 묘사했다.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 다양한 교육을 받았고, 세련된 코스모폴리탄으로 자랐다.(중략) 우리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직업이 없다. 이게 말이 돼?'
김영하 소설의 주인공은 이른바 '포스트 586세대'에 속한다. 그는 586세대가 운영하는 편의점 알바로 일하다가 편의점 주인과 다툰 뒤 그만둔다. 대학 때 화염병을 들었다며 운동 경력을 자랑하는 주인이 청년 세대를 향해선 폭군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그 일화는 작은 부분이지만, 586세대를 향한 뒷세대의 불만을 반영했다. 소설에 상징적으로 내장된 세대 갈등은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사태로 인해 현실적으로 크게 불거졌다. 청년 세대는 586세대를 대표한 지식인의 위선에 분노했다.
그때 묘하게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586세대를 비판한 연구서 '불평등의 세대'를 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학술서치고는 보기 드물게 출간 4개월 만에 2만부 넘게 찍었을 정도로 요즘 꽤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산업화 세대가 첫 삽을 뜨고 586세대가 완성한 위계 구조의 희생자는 바로 청년 세대"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586세대 중 특정 집단이 공직 사회와 국회, 대기업뿐 아니라 노조와 시민 단체까지 장악해 그들끼리의 네트워크를 통해 기득권을 누리면서 청년 세대의 진입을 막아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귀족 노조'가 고용 세습과 정년 연장을 요구한 것에 대해선 "자본과 586세대 상층 정규직 노조가 함께 구축한 한국형 위계 구조의 부조리극이 아닐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철승 교수는 "한 세대의 장기 집권의 폐해는 조용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내부자들은 제 몫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의 책은 조국 사태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그 사태를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했다.
조국 사태로 인해 586세대 중 특권층이 형성되어 있고, 그들끼리 편법을 통해 '학력 자본'까지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게 드러났다. 586 특권층 상당수가 4월 총선에 여당 후보로 나와 의회를 장악하려고 할 것이다. 그 세대가 지휘하는 검찰과 경찰도 정권의 하수인이 될 날이 멀지 않았고, 자칭 어용 지식인들이 '민주적 통
제 사회'를 미화할지도 모른다. 김영하 소설 '퀴즈쇼'가 발표된 이후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586세대 특권층의 동맹이 우리 사회를 서서히 잠식한 결과다. 이대로 가다간 586 디스토피아에 떨어질 수도 있다. '가짜 평등'을 내세워 유권자를 속인 특권층이 승자 독식의 향연을 누리는 가운데 경제가 악화하고 불평등이 심화하는 세상이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