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무능한 줄로만 알았는데 '선수'였다," 조선일보, 2020. 1. 24, A22쪽.] → 좌파독재
청와대가 울산 선거 개입 사건을 방어하는 솜씨를 보면 진심으로 감탄이 나온다. 대통령의 30년 지기를 당선시키려 여러 경로로 관여한 의혹이 드러났다. 사실로 확인되면 탄핵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범죄다. 정권 명운이 걸린 절체절명 위기에서 놀라운 '뒤집기 기술'이 나왔다. 핵심은 불법적 권력 남용인데 난데없이 검찰 개혁을 들고 나와 프레임을 바꿔 버렸다. 권력의 거악(巨惡)을 파헤치는 검찰을 도리어 악의 집단으로 만들어 절대 수세를 공세로 뒤집었다. 수사팀을 공중 분해하고 검찰총장을 고립시킨 솜씨도 전광석화 같지만 그 무모한 프레임을 밀어붙인 배짱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가히 프로급 신공(神功)이었다.
이 정권은 되치기의 달인이다. 자기 잘못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워 국면을 반전시키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조국 사태는 불공정·특권·반칙 이슈인데 인권침해로 엎어치기 한 것, 검찰을 패싱한 추미애 장관이 되레 "내 명을 거역" "상갓집 추태" 운운하며 검찰의 항명으로 몰아간 것 등이 예다. 정부 실책으로 '미친 집값'을 만들어 놓고는 '강남 대 비강남'으로 편 가르기 하고 앞 정권 탓이며 언론까지 탓한다. 잘못된 정책으로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일자리를 만들려면 세금을 퍼부어야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반(反)서민"으로 몰아붙인다. 도둑이 "도둑이야"를 외치는 꼴인데, 그러면서도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다.
3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꺼내본다. 분열·갈등의 정치를 끝내겠다, 제왕적 권력을 나누겠다,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겠다, 특권·반칙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이 현란한 미사여구들이 지금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대통령이 분열·갈등에 앞장서고, 제왕처럼 권력을 휘둘렀으며, 자기편 인물만 등용하고, 특권·반칙의 대명사인 조국을 싸고돌았다. 모든 게 정확하게 거꾸로 갔다. 유일하게 지켜진 것은 정말로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를 만든 것뿐이었다. 대통령의 약속들이 휴지 조각이 돼 버렸다.
처음엔 정권의 '선의(善意)'를 믿었다. 나라 위하는 마음은 순수한데 다만 무능할 뿐이라 생각했다. 일방적 대북 구애(求愛)로 동맹을 흔들고, 적폐 청산 놀음으로 나라를 두 쪽 내고, 듣도 보도 못한 소득 주도 정책으로 일자리를 없애고, 반시장 드라이브로 경제 활력을 꺼트려도 일부러 그러진 않을 것이라 여겼다. 경험 없는 아마추어라 그렇지 시행착오를 겪고 나면 정신 차릴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무리 부작용이 터지고 역효과가 쏟아져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경제 망치고 나라 뒤흔드는 마이너스의 국정을 한 치 양보 없이 밀어붙였다.
지난주 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며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조국 사태로 분노하고 좌절한 다수 국민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에겐 조국이 더 중요했다. 전체 국민보다 조국으로 대표되는 자기편을 다독이는 게 먼저였다. 문 정권의 국정엔 민노총과 참여연대와 민변과 탈원전파와 좌파 운동권만 존재한다. 범죄를 저질러도 뇌물을 받아도 내 편이면 무조건 덮어주려 한다. 우리 편이 아니면 잘라내고 온갖 자리와 감투, 심지어 태양광 이권까지 싹쓸이하면서 자기들만의 거대한 카르텔을 구축했다. 극단으로 치닫는 문 정권의 진영 논리는 '국가보다 당이 우선'이라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당론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이 정권의 본질에 대해 착각하고 있었다. 문 정권은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국익의 선량한 관리인이 아니었다. 국민보다 진영, 국가 이익보다 이념, 나라보다 선거를 우선하는 정파(政派)의 대변자에 가까웠다. 국익을 우선했다면 친노동 일방통행, 반기업 규제, 탈원전 원리주의, 맹목적 친북 굴종, 동맹·우방 경시 같은 이념의 폭주는 없었을 것이다. 국가 미래를 생각했다면 재정을 고갈시키고, 눈속임 가짜 일자리 만들고, 세금 뿌려 표를 사는 매표(買票) 행정에 날밤 새우진 않았을 것이다.
국정 자해(自害)는 참담한 결과로 되돌아왔다. 경제가 쪼그라들고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공정과 정의가 위기에 몰렸으며, 동맹에 금이 가고 대북 구애가 모욕으로 돌아왔다. 국익이 무너지고 곳곳에서 내전(內戰) 같은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문 정권은 꿈쩍도 않는다. 국익은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기편은 귀신처럼 챙기고 있다. 선거 이기고 표 얻을 정치 공학적 기술은 '선수'급이다.
이제 확실히 알게 됐다.
문 대통령은 애초부터 취임사의 약속들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은 애당초 허언(虛言)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일련의 국정 자해극은 무능 때문이 아니라 이 정권의 태생적 본질이었다.
남은 2년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라 망가져도 아랑곳 않는 막무가내 정권을 대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선거로 심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