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 사태' 잘 터졌다
2012.06.14 14:13
[김대중, “'진보당 사태' 잘 터졌다,” 조선일보, 2012. 5. 29.]
할 일 많고 갈 길 바쁜 우리는 지금 철 지난 ‘진보당’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21세기도 10년이 지난 시점에 대한민국이 이념문제에 발목이 잡힌 꼴이다. 진보당 문제는 대한민국 체제를 부인하며 북한 김씨왕조를 종주(宗主)로 하는 NL 주사파에 있고, 이 주사파는 정통 야당인 민주당을 등에 업고 대한민국 체제의 대문을 밀고 들어오려 하고 있다.
우리는 뒤늦게 놀라고 있다. "아니, 저들 주사파 세력이 언제 어느 틈에 저렇게 세(勢)를 늘려 국회에까지 진출하게 됐는가"를 개탄하며 저들의 저돌적인 투쟁력(?)과 완강한 저항력을 새삼 놀랍고 두려운 눈으로 보고 있다. 많은 사람은 "우리의 정보기관․언론 등의 감시 기능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민주당은 진보당 주사파(이른바 당권파)의 실체를 알고서도 그들과 어깨동무하며 그들을 국회로 안내하고 있는가" 등등의 질문과 의문을 쏟아내고 있다.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다. 북한의 김씨왕조는 지금 한 국가와 체제로서 심각한 본질 문제에 직면해 있다. 세습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파탄 위기, 기아와 빈곤 등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세계의 관심과 이목을 끌고 있다. 선진국 진입의 척도라는 '20-50(1인당 소득 2만달러, 인구 5000만명) 클럽'에 세계 7번째로 등재될 시점에 있다. 그런 한국이 북한 체제에 동조하며 그들의 편에 서서 '내재적 접근'을 강조하는 남쪽의 주사파들로 인해 머뭇거리고 놀라고 두려워하는, 도착된 현실을 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들 세력이 국민 10%의 지지를 받고 버젓이 국회에, 그것도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하며 진출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 나라의 모순이며 동시에 업보인지도 모른다.
보수․우파 논리를 배격하며 좌파․진보를 지지하는 국민이 일부라도 존재하는 한 그 분량만큼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 나라의 진보는 100% 북한 김씨왕조의 추종자인 주사파는 아니다. 진보 세력 내에는 좌파 진영의 논리 못지않게 대한민국 헌법체제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통합진보당의 '새로나기특위'의 혁신파들은 당(黨)의 가치․비전․정책노선을 재정립해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서도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개혁된 진보를 표방하고 나섰다. 또 당내에서 종북(從北)주의를 들어내고 노동․환경․분배 등 정통 좌파의 길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주류가 포용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정통 진보 세력이다. 좌파를 지지한 국민 대부분의 표심 역시 종북이 아니라 정통 좌파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좌파로부터 종북을 떼어내는 문제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런 움직임과 관련해 민주당의 입장 정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통합진보당의 NL파들이 저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이 야권 연대를 구실로 양보해준 덕분이다. 게다가 민주당 일부에서는 국회의 상임위원장 자리 하나를 통합진보당에 주자는 소리까지 들린다. 민주당이 계속 이런 노선으로 나가면 언젠가 개혁된 진보 세력에 밀릴 수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정당정치는 보수와 진보 또는 우파와 좌파(정통 진보)의 구도로 돼 있다. 민주당이 계속 기회주의적이고 진보당이 국민 눈높이로 개혁한다면 민주당은 정통 진보 정당에 좌파 정당의 맹주(盟主) 자리를 넘겨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우파 보수와 싸우되 친북(親北)․종북 노선과는 과감히 단절하는 정치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바야흐로 북한 체제와 김씨왕조는 큰 시련에 부딪히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지금은 기득권자인 당과 군부의 지지를 업고 안정된 듯한 기미를 보이지만 인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면 그 안정은 오래갈 수 없다. 북한 내에 점차 형성되고 있는 '시장(市場) 세력' '장마당 세대'의 증가가 그 체제를 판가름할 날이 올 것이다. 세계 혁명의 추세는 중동에서 보았듯이 권력 내부의 쿠데타가 아니라 시민의 봉기 쪽으로 가고 있다. 게다가 이제까지 북한 집권 세력을 지탱해준 중국의 대북 자세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북한 정권의 앞날을 점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중국에도 '우리가 언제까지 세습국가 북한의 뒤를 봐줘야 하느냐'는 인식을 가진 새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인민의 아우성과 중국의 이완은 '김정은 북한'의 미래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북한 김씨왕조를 종주로 삼는 한국의 주사파는 결국 북한체제의 존망에 따라 춤출 수밖에 없다. 그들의 미래는 북한 정권의 미래와 그 궤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NL 주사파의 존재는 시한적이고 제한적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좌파가 종북․주사파를 들어내고 진보를 새롭게 재정의하면서 정통 좌파의 길을 천명할 적절한 시기다. 우리 국민도 더 이상 종북파들의 색깔론에 주눅들 이유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는 한국 사회에 종북․주사파에 대한 경각심을 새롭게 했으며 한국 좌파에 개혁의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한국 정치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할 일 많고 갈 길 바쁜 우리는 지금 철 지난 ‘진보당’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21세기도 10년이 지난 시점에 대한민국이 이념문제에 발목이 잡힌 꼴이다. 진보당 문제는 대한민국 체제를 부인하며 북한 김씨왕조를 종주(宗主)로 하는 NL 주사파에 있고, 이 주사파는 정통 야당인 민주당을 등에 업고 대한민국 체제의 대문을 밀고 들어오려 하고 있다.
우리는 뒤늦게 놀라고 있다. "아니, 저들 주사파 세력이 언제 어느 틈에 저렇게 세(勢)를 늘려 국회에까지 진출하게 됐는가"를 개탄하며 저들의 저돌적인 투쟁력(?)과 완강한 저항력을 새삼 놀랍고 두려운 눈으로 보고 있다. 많은 사람은 "우리의 정보기관․언론 등의 감시 기능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민주당은 진보당 주사파(이른바 당권파)의 실체를 알고서도 그들과 어깨동무하며 그들을 국회로 안내하고 있는가" 등등의 질문과 의문을 쏟아내고 있다.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다. 북한의 김씨왕조는 지금 한 국가와 체제로서 심각한 본질 문제에 직면해 있다. 세습에 따른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파탄 위기, 기아와 빈곤 등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세계의 관심과 이목을 끌고 있다. 선진국 진입의 척도라는 '20-50(1인당 소득 2만달러, 인구 5000만명) 클럽'에 세계 7번째로 등재될 시점에 있다. 그런 한국이 북한 체제에 동조하며 그들의 편에 서서 '내재적 접근'을 강조하는 남쪽의 주사파들로 인해 머뭇거리고 놀라고 두려워하는, 도착된 현실을 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들 세력이 국민 10%의 지지를 받고 버젓이 국회에, 그것도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하며 진출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 나라의 모순이며 동시에 업보인지도 모른다.
보수․우파 논리를 배격하며 좌파․진보를 지지하는 국민이 일부라도 존재하는 한 그 분량만큼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 나라의 진보는 100% 북한 김씨왕조의 추종자인 주사파는 아니다. 진보 세력 내에는 좌파 진영의 논리 못지않게 대한민국 헌법체제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통합진보당의 '새로나기특위'의 혁신파들은 당(黨)의 가치․비전․정책노선을 재정립해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서도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개혁된 진보를 표방하고 나섰다. 또 당내에서 종북(從北)주의를 들어내고 노동․환경․분배 등 정통 좌파의 길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주류가 포용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정통 진보 세력이다. 좌파를 지지한 국민 대부분의 표심 역시 종북이 아니라 정통 좌파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좌파로부터 종북을 떼어내는 문제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런 움직임과 관련해 민주당의 입장 정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통합진보당의 NL파들이 저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이 야권 연대를 구실로 양보해준 덕분이다. 게다가 민주당 일부에서는 국회의 상임위원장 자리 하나를 통합진보당에 주자는 소리까지 들린다. 민주당이 계속 이런 노선으로 나가면 언젠가 개혁된 진보 세력에 밀릴 수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정당정치는 보수와 진보 또는 우파와 좌파(정통 진보)의 구도로 돼 있다. 민주당이 계속 기회주의적이고 진보당이 국민 눈높이로 개혁한다면 민주당은 정통 진보 정당에 좌파 정당의 맹주(盟主) 자리를 넘겨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우파 보수와 싸우되 친북(親北)․종북 노선과는 과감히 단절하는 정치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바야흐로 북한 체제와 김씨왕조는 큰 시련에 부딪히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지금은 기득권자인 당과 군부의 지지를 업고 안정된 듯한 기미를 보이지만 인민을 먹여 살리지 못하면 그 안정은 오래갈 수 없다. 북한 내에 점차 형성되고 있는 '시장(市場) 세력' '장마당 세대'의 증가가 그 체제를 판가름할 날이 올 것이다. 세계 혁명의 추세는 중동에서 보았듯이 권력 내부의 쿠데타가 아니라 시민의 봉기 쪽으로 가고 있다. 게다가 이제까지 북한 집권 세력을 지탱해준 중국의 대북 자세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북한 정권의 앞날을 점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중국에도 '우리가 언제까지 세습국가 북한의 뒤를 봐줘야 하느냐'는 인식을 가진 새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인민의 아우성과 중국의 이완은 '김정은 북한'의 미래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북한 김씨왕조를 종주로 삼는 한국의 주사파는 결국 북한체제의 존망에 따라 춤출 수밖에 없다. 그들의 미래는 북한 정권의 미래와 그 궤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NL 주사파의 존재는 시한적이고 제한적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좌파가 종북․주사파를 들어내고 진보를 새롭게 재정의하면서 정통 좌파의 길을 천명할 적절한 시기다. 우리 국민도 더 이상 종북파들의 색깔론에 주눅들 이유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는 한국 사회에 종북․주사파에 대한 경각심을 새롭게 했으며 한국 좌파에 개혁의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한국 정치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