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利敵’ 판결받은 단체 해산시킬 수 있게 법 고쳐야

[사설: “‘利敵’ 판결받은 단체 해산시킬 수 있게 법 고쳐야,” 조선일보, 2012. 8. 15, A31.]

독일의 헌법 파괴 세력에 대한 감시․통제 제도를 연구해온 박광작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가 어떤 단체의 목적이나 활동이 헌법 질서에 어긋난다고 판결하면 그 단체에 대해선 표현․출판․집회․결사․서신과 우편 교환의 자유 같은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 해산시키며 재산도 몰수하게 돼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선 대법원이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같은 단체에 이적(利敵)단체 판결을 내렸는데도 그 단체들이 아무렇지 않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우리 대법원에서 국가보안법상 이적 단체로 판결받은 곳은 13개다. 이적단체란 북한과 연계돼 대한민국 체제를 뒤엎으려는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고무․찬양․동조하는 단체를 말한다. 이들 단체 가운데 하나인 범민련 남측본부는 1997년 김일성 주체사상과 선군(先軍)정치를 찬양하고 연방제 통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범민련 남측본부 노수희 부의장은 지난 3월 김정일 사망 100일을 맞아 북한에 밀입북했다가 7월 판문점을 통해 돌아오기까지 모든 과정을 범민련 북측본부와 사전 공모했던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 단체는 지금도 인터넷을 통해 내놓고 후원금을 모으는가 하면, 14일엔 한 신문에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주장하는 전면 광고를 냈다. 범민족청년학생연합도 1993년 이적단체 판결을 받고도 2006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에 대해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는 내용의 동영상을 제작하고, '선군정치의 이해'라는 이적 표현물을 만들어 유포했다.

정당이 헌법 질서를 위반했을 때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해산시킬 수 있게 헌법에 규정돼 있으나 사회단체에 대해선 강제 해산 규정이 없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법원이 이적단체 판결을 내릴 때 해산 명령도 함께 내리고 해산 명령에도 불구하고 단체를 해산․탈퇴하지 않으면 해산․탈퇴할 때까지 하루 최고 100만원씩 물어내게 하는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해산 명령 뒤 그 단체의 이름으로 집회․시위를 하거나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면 형사처벌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지금이라도 헌법 질서를 정면 부정하는 단체들은 자동으로 해산되도록 법을 고쳐 국가가 최소한의 자기 방어 체제를 갖출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