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사관의 뿌리는 북한 주체사관
2015.11.13 11:31
[이동호, “민중사관의 뿌리는 북한 주체사관,” 미래한국, 2015. 11. 4, 10-14쪽.]
교과서 전쟁이 시작됐다.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과서 문제는 지난 10년간 정부가 임무를 방기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진작 시작되었어야 할 전쟁이었다.
교과서 전쟁은 ‘누가 한반도를 대표하느냐’의 문제다. 지난 70년간 대한민국과 북한 공산집단은 한반도의 대표성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해 왔다. 교과서 전쟁은 이 전쟁의 한 부분이다.
이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해져야 끝날 것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違憲) 판결이 그 서막을 열었다면, 교과서 전쟁은 이제 이 전쟁이 본격적인 국면에 돌입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19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실제 역사교육 현장에서 주체사상과 공산주의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민중과 민중사관의 정체
민중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시기는 1980년대 운동권들이 학생운동의 방법으로 공산주의를 도입하면서부터다. 공산주의는 역사의 주체는 생산의 주역이지만 생산의 결과물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피억압계급으로 봤다. 이는 노동계급을 말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1930년대 식민지 국가들은 식민지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反)제국주의 운동을 벌였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반식민지 운동을 자신들의 세계 공산주의 혁명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는데, 그것이 반제(反帝) 반봉건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이다. 이는 공산주의혁명론의 제3세계에 대한 적용이었다. ‘인민’ 개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제3세계 식민지 국가들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농업을 비롯한 전(前)근대적 산업이 주를 이뤘다. 혁명의 주역이라고 평가되는 노동계급은 소수였다. 이들만 가지고 혁명을 성공시킬 순 없었다. 따라서 농민을 비롯한 전근대적 계급(계층)을 혁명에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노동자에 농민과 소상공인, 소자본가, 학생들을 비롯한 인텔리 집단, 종교인 등을 포함한 개념이 ‘인민’이다.
이 인민이란 개념을 대한민국에 그대로 쓰기는 적절하지 않았다. 6·25 전쟁을 경험한 많은 이들이 인민을 위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가증스런 민낯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인민이란 개념은 1980년대 ‘민중’으로 새롭게 포장되어 등장한다.
민중은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에서 혁명의 동력을 말하는 개념이다. 혁명은 대상과 동력으로 나뉜다. 혁명의 대상은 혁명을 통해 극복해야 할 세력, 동력은 혁명투쟁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혁명 위업 수행에 이바지해 나가는 계급(계층) 가운데 기본 동력과 보조 동력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혁명의 대상은 혁명을 통해 타도해야 할 세력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의 주체혁명론은 “한국혁명운동의 대상은 미제 침략세력과 그와 결탁한 매판자본가, 지주, 반동 관료배들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유지하려는 세력이며, 따라서 그것을 청산하기 위한 민족해방 민주주의 변혁을 결사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반민족적, 반민중적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주체혁명론은 “한국혁명운동의 동력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을 비롯하여 미제와 그의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민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진보적 인텔리 등이 기본 동력이다. 보조 동력은 도시 소자산 계층, 도시 빈민, 애국적 민족자본가, 애국적 군인과 하급관료 등을 말한다. 민중이란 이런 기본 동력과 보조 동력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의 혁명론이 포장을 바꿔 민중이라는 개념으로 대한민국에 자리 잡은 것이다.
민중의 등장
민중은 1980년대 학생운동과 지식인 계층에 절대적으로 통했다. 반민중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 그 사회에서 반역으로 통했다. ‘민중적’이란 평가를 받는 것은 당시 학생운동권과 지식인 사회에서는 절대적 칭찬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너도 나도 민중이라는 말을 수용했다.
반면 역대 정권은 반민중 세력으로 타도 대상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의 앞잡이로 미국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서둘러 미국이 한국으로 데려온 한국의 민중과 적대적인 사람이었다.
박정희는 어떤가? 그 또한 미국의 앞잡이로, 그가 이룩한 산업혁명은 미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노예의 길을 개척한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경제는 발전하면 할수록 점점 피폐해져서 급기야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민중사관은 무엇인가? 역사학계의 원로인 이기동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사 교과서 좌편향의 뿌리가 1980년대 국사학계에 대두한 민중사학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의 말이다.
“편협한 민족 중심, 계급 중심을 앞세우는 민중사학의 정체를 알면 한국사 교과서의 왜곡은 당연하다는 사실이 이해됩니다. 그들의 한국 근현대사 기본 인식은 반(反)외세와 반(反)자본주의입니다. 대외적 측면에서 식민지 시대는 반일(反日), 광복 후는 신식민지 시대로 보아 반미(反美)가 중심이고, 대내적 측면에서는 민중 해방과 체제 타파가 목적입니다.”(조선일보, 2015. 10. 22 인터뷰)
이기동 교수가 말하는 민중사학은 민중사관에 바탕을 둔 방법론을 말한다. 민중사관은 북한이 정식화한 주체사관을 말한다. 교과서 좌편향을 연구한 정경희 교수는 “민중사학은 북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남한에 유입되면서 대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일종이다. …민중사학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기본적으로 반봉건의 근대화와 반제국주의의 항쟁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 교수는 “민중사학은 ‘역사 발전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하는 역사관”이라며 “한마디로 민중이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변혁을 모색하는 게 그 주요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중사학은 대한민국을 여전히 제국주의 미국의 식민지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우리의 근·현대사를 지배계급과 기층 민중의 대립 구도로 파악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역사관의 한 형태”라고 정의하고 있다.(조선pub, 2014. 1. 25 인터뷰)
이기동 교수와 정경희 교수의 말을 요약하면 대한민국 교과서가 왜곡되기 시작한 것은 북한의 역사관과 역사연구 방법론이 대한민국에 도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북한 역사관의 도입 시기는 학생운동에 주체사상과 그 혁명론이 도입되기 시작하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역사문제연구소(1986년), 한국역사연구회(1988년),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 1988년) 등이 이 시기 설립된 역사 관련 연구소들이다. 학생운동에 북한 주체사상 도입이 1984년 말이고, 학생운동이 일반화된 시기가 애학투(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 발족식(소위 건국대 투쟁)이 있던 1986년이었다.
사실 한국의 역사학계는 북한의 역사관과 방법론에 대해 무지했다. 북한 역사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학생운동에서 북한의 역사학과 방법론이 소개되자, 들불처럼 갑자기 번진 것이다. 그 결과 역사 문제를 연구하는 단체들이 대한민국에 출현한 것이다. 이들에 의해 진행된 북한 역사학 연구와 도입이 오늘 대한민국 교과서 좌편향을 이뤄 낸 것이다.
북한의 역사관과 역사연구 방법론
북한의 주체사상을 해설한 <민족자주화운동론Ⅰ>에서 조진경(가명)은 “주체사상의 사회역사원리 즉 주체사관은 인간관, 철학원리와 긴밀한 내적 연관을 가지는 네 가지 기본명제로 구성되어 있다. …인민대중은 사회역사의 주체이다. …인류의 역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이다. …사회역사운동은 인민대중의 창조적 운동이다. …혁명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다”로 요약 설명하고 있다.(조진경, <민족자주화운동론Ⅰ>, p332~337, 백산서당, 1988년, 서울)
주체사상에서 인민대중(즉 민중)이 사회역사운동의 주체라는 것은, 주체가 없는 자연운동과는 달리 사회역사운동은 주체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에 의해 발생·발전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즉 인류 역사가 민중의 주체적 힘에 의해 발전하여 왔다는 것이다.
또 주체사관이 인류 역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인류 역사가 인민대중의 자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자연과 사회적 관계에 대해 투쟁하는 가운데 발전해 왔다는 것을 뜻한다.
자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사회적 관계란 공산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지배계급의 사회적 착취관계를 말한다. 그런데 식민지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수탈(자본가가 노동자를 수탈하는 것―이를 계급모순이라고 말한다)과 민족적 수탈이 중첩되었다는 것이다. 민족적 수탈이란 제국주의의 식민지적 지배(이를 민족모순이라고 말한다)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의 역사관에 의한 역사 기술은 민중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자본가 계급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역사 발전은 민중이 주체가 되어 온갖 자주성을 가로막는 제국주의와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에서 동력을 가지고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민중사관에 따른 역사 기술이 민중의 투쟁사가 주를 이루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조갑제닷컴에서 출판한 <대한민국 교과서가 아니다>를 보면 좌편향 교과서는 현대 역사를 정부에 대한 저항운동과 시위의 역사로 서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건강과 가정을 위한 학부모연합’(건학연)은 ‘현재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남한의 시위 장면 지속 반복
“(비상출판) 4·19 혁명 당시 수송초등학교 학생들의 시위 사진을 수록.
- <우리는 왜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는가?>로 시작하는 궐기문도 수록.
- 제6장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라는 현대를 기술하는 첫 페이지부터 광주 시위를 말하면서 63페이지에 걸쳐 무려 17개의 시위 내용을 반복해서 수록.
- 신탁 및 반탁시위, 4·19 시위, 교수 시위, 학생 시위, 한일회담 반대 시위, 5·18 광주 시위, 이한열 영결식과 수입개방 반대 시위, 농민 시위, 6·10 민주화 시위 등”
이런 역사 서술 방식은 북한의 주체사관에 의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북한 역사서인 <현대조선역사>는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미군정, 5·10 총선거,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미제의 식민지 예속화 정책을 반대하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미 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는 정책을 실시하면서 남조선에서 식민지 예속화 과정을 다그쳤다. …미제 침략자들은 남조선 인민들의 온갖 민주주의적 자유와 권리를 말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악법들을 만들어냈다. …미제는 특히 남조선에서 공산당을 파괴하려고 광분하였다. 미제는 1946년 5월에는 이른바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날조하여 공산당 본부를 습격하였으며 당 기관지인 ‘해방일보’를 강제 폐간시켰다.(217면)…
남조선 인민들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미제의 식민지 예속화 정책과 민족분열 정책을 반대하며 북반부에서와 같은 민주개혁의 실시와 조국의 자주적인 통일독립을 요구하여 과감한 투쟁을 일으켰다.(219면)…
미군정의 유혈적인 탄압은 인민들의 분격과 반항을 더욱 격발시켰다. 미제의 야수적 탄압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은 대중적인 시위투쟁으로 넘어갔으며 10월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전인민적인 반미 구국항쟁으로 발전하였다. 10월 1일 대구에서 군중들에 대한 무장경찰들의 발포를 계기로 폭발한 인민항쟁은 점차 남조선 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220면)…
남조선에서의 5·10 단선과 친미정부 조작…
전체 조선인민은 망국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유엔임시조선위원단’의 입국과 망국 단선을 반대하는 2·7 구국투쟁이 남조선 전역에서 벌어졌다.(226면)…
제주도를 비롯한 남조선의 여러 곳에서 무장투쟁이 일어났다. 제주도 인민들은 무장으로 반동경찰을 제압하고 ‘선거’를 완전히 분쇄해 버렸다.(227면)…
남조선 정부 조작 후 남조선 인민들의 반미 반정부 투쟁(240면)…
1948년 10월에 여수 주둔 ‘국방군’ 제14연대의 애국적 병사들의 폭동이 일어났다.
제주도 인민항쟁을 진압하라는 동원령을 받은 14연대 병사들은 동족살육에 내모는 정권의 배족행위에 분격하여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단연 촉동에 궐기하였다.(241면)”
이런 내용들은 북한의 역사서술 방식은 민중의 투쟁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4·19 혁명은 4월 인민봉기
북한 역사서는 1960년 4·19 혁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제4장 남조선 인민들의 구국투쟁
제1절 4월 인민봉기(452면)…
미제와 이승만 정권을 반대하는 남조선 인민들의 이러한 투쟁은 1960년 4월에 이르러 이승만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대중적 봉기로 발전하였다.
《1960년 4월에 있은 인민봉기는 남조선 혁명운동 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어 놓습니다. 4월 인민봉기는 남조선 혁명운동 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어 놓습니다. 4월 인민봉기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식민지 통치 밑에서 오랫동안 쌓이고 쌓였던 남조선 인민들의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었으며 남조선 전역에서 수백만 명에 이르는 광범한 군중이 참가한 대중적인 반미 구국항쟁이었습니다.》(김일성 저작집)(457면)”
이어 박정희 장군에 의한 5·16 군사혁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제2절 군사파쇼독재의 수립,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인민들의 투쟁
미제에 의한 군사파쇼정권의 조작(461면)…
미제와 장면 정권은 남조선 인민들의 줄기찬 투쟁을 억제하려고 온갖 방법과 수단을 다 써가며 발광하였으나 투쟁은 시시각각으로 발전하여 ‘예상외의 사태’로 접근하였다.
이에 당황한 미제는 저들의 식민지통치를 유지 강화하기 위하여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등 군내의 극단적인 파쇼분자들을 내세워 ‘군사정변’을 도발케 하여 장면 ‘정권’을 밀어던지고 그 대신 가장 포악한 군사파쇼독재 ‘정권’을 조작하였다.(462면)”
북한의 역사 기술에 따르면 민중들의 반파쇼 민주화 투쟁이 격화되자 드디어 국가폭력의 최대 강력한 방식인 파쇼통치체제가 박정희 정부라는 설명이다. 당연히 여기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투쟁이 다음으로 서술된다.
“군사파쇼를 반대하는 투쟁
미제의 조종 밑에 군사 파쇼 무리들은 새 제도와 새 생활을 갈망하는 남조선 인민들의 혁명적 진출을 말살하고 심각한 위기에 처한 저들의 식민지 통치체제를 수습해보려고 전례 없는 야수적 탄압과 파쇼 테러통치를 더욱 강화하였다.(463면)…
6·3 봉기와 8월 투쟁(467면)…
《1964년의 6·3 투쟁과 올해 8월에 또다시 일어난 시위투쟁은 미일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정책을 반대하며 매국도당을 때려 부수기 위한 반제, 반파쇼 애국투쟁이었습니다.》(468면)…
반제 반파쇼 투쟁의 강화(475면)…
남조선에서의 반파쇼 민주화 투쟁은 군사파쇼 독재를 없애고 남조선 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이며 민족의 영구 분열을 막고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이다.(476면)”
이어 10월유신 체제의 등장과 유신을 반대하는 투쟁을 서술하고 있다. 북한의 <현대조선역사>는 혁명의 주력인 노동자와 농민들의 투쟁을 기술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남조선에서의 반파쇼 민주화 투쟁은 군사파쇼 독재를 없애고 남조선 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이며 민족의 영구분열을 막고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이다.(476면)”
<현대조선역사>는 이어 1979년 10월의 부마(釜馬)투쟁과 1980년 5월의 광주투쟁을 기술하고 있다.
“10월 민주항쟁은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투쟁을 발단으로 하여 시작되었다.(486면)…
광주인민봉기
《…지난 5월 수많은 인민들이 일제히 떨쳐 일어나 손에 무장을 들고 용감히 싸운 광주인민들의 영웅적 봉기는 남조선의 파쇼통치지반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으며 미제와 그 앞잡이 군사파쇼분자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였습니다.》(김일성 저작집)(488면)”
민중사관에 입각한 교과서는 대한민국 교과서가 아니라 북한 혁명론이다
앞서 소개한 건학연의 ‘현재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와 북한의 역사서인 <현대조선역사>를 비교하면 그 서술 방식이 놀랍도록 일치한다. 북한의 역사 기술과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의 기술 방식이 똑같은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순간이다.
정경희 교수는 민중사학은 대한민국이 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로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대립 구도로 파악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이라고 설명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 제국주의와 그와 결탁한 매판 자본가들의 수탈과, 이에 저항하는 한국 민중들 간의 투쟁의 역사라고 본 북한 주체사관을 철저히 추종하는 사관이 민중사관이다.
이런 기술 방식은 북한이 정식화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에서 말하는 사회 성격과 혁명의 대상과 동력, 임무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역사 서술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공은 세계사적 사건이다
대한민국을 저주하고 혁명을 꿈꾸는 주체사관을 대한민국 학생들이 배워서는 안 된다. 8·15 해방 직후 북한 보다 훨씬 못한 조건에서 대한민국은 출발했다. 70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과 북한은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북한은 유래 없는 3대 부자(父子) 세습과 경제적 실패로 세계가 조롱하는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어떤가?
대한민국은 북한의 저주와는 달리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가운데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성공의 역사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과 같은 성공 스토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이 대한민국의 성공 스토리를 모방하고 있는 데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가지는 세계사적 지위를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대한민국의 성공을 넘어 아직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숱한 제3세계 국가들이 따라 배워야 할 모범이다.
아직도 가난과 정치적 인권적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3세계 국가들에게 대한민국의 성공경험을 설명하고 이들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하는 세계사적 책임이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 성스러운 책임과 역할을 누가 저주하는가?
교과서 전쟁이 시작됐다.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과서 문제는 지난 10년간 정부가 임무를 방기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진작 시작되었어야 할 전쟁이었다.
교과서 전쟁은 ‘누가 한반도를 대표하느냐’의 문제다. 지난 70년간 대한민국과 북한 공산집단은 한반도의 대표성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해 왔다. 교과서 전쟁은 이 전쟁의 한 부분이다.
이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해져야 끝날 것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違憲) 판결이 그 서막을 열었다면, 교과서 전쟁은 이제 이 전쟁이 본격적인 국면에 돌입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19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실제 역사교육 현장에서 주체사상과 공산주의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민중과 민중사관의 정체
민중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시기는 1980년대 운동권들이 학생운동의 방법으로 공산주의를 도입하면서부터다. 공산주의는 역사의 주체는 생산의 주역이지만 생산의 결과물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피억압계급으로 봤다. 이는 노동계급을 말한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1930년대 식민지 국가들은 식민지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反)제국주의 운동을 벌였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반식민지 운동을 자신들의 세계 공산주의 혁명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는데, 그것이 반제(反帝) 반봉건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이다. 이는 공산주의혁명론의 제3세계에 대한 적용이었다. ‘인민’ 개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제3세계 식민지 국가들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농업을 비롯한 전(前)근대적 산업이 주를 이뤘다. 혁명의 주역이라고 평가되는 노동계급은 소수였다. 이들만 가지고 혁명을 성공시킬 순 없었다. 따라서 농민을 비롯한 전근대적 계급(계층)을 혁명에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노동자에 농민과 소상공인, 소자본가, 학생들을 비롯한 인텔리 집단, 종교인 등을 포함한 개념이 ‘인민’이다.
이 인민이란 개념을 대한민국에 그대로 쓰기는 적절하지 않았다. 6·25 전쟁을 경험한 많은 이들이 인민을 위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가증스런 민낯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인민이란 개념은 1980년대 ‘민중’으로 새롭게 포장되어 등장한다.
민중은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에서 혁명의 동력을 말하는 개념이다. 혁명은 대상과 동력으로 나뉜다. 혁명의 대상은 혁명을 통해 극복해야 할 세력, 동력은 혁명투쟁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혁명 위업 수행에 이바지해 나가는 계급(계층) 가운데 기본 동력과 보조 동력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혁명의 대상은 혁명을 통해 타도해야 할 세력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의 주체혁명론은 “한국혁명운동의 대상은 미제 침략세력과 그와 결탁한 매판자본가, 지주, 반동 관료배들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유지하려는 세력이며, 따라서 그것을 청산하기 위한 민족해방 민주주의 변혁을 결사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반민족적, 반민중적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주체혁명론은 “한국혁명운동의 동력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을 비롯하여 미제와 그의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민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진보적 인텔리 등이 기본 동력이다. 보조 동력은 도시 소자산 계층, 도시 빈민, 애국적 민족자본가, 애국적 군인과 하급관료 등을 말한다. 민중이란 이런 기본 동력과 보조 동력을 말하는 것이다. 북한의 혁명론이 포장을 바꿔 민중이라는 개념으로 대한민국에 자리 잡은 것이다.
민중의 등장
민중은 1980년대 학생운동과 지식인 계층에 절대적으로 통했다. 반민중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 그 사회에서 반역으로 통했다. ‘민중적’이란 평가를 받는 것은 당시 학생운동권과 지식인 사회에서는 절대적 칭찬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너도 나도 민중이라는 말을 수용했다.
반면 역대 정권은 반민중 세력으로 타도 대상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의 앞잡이로 미국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서둘러 미국이 한국으로 데려온 한국의 민중과 적대적인 사람이었다.
박정희는 어떤가? 그 또한 미국의 앞잡이로, 그가 이룩한 산업혁명은 미국에 경제적으로 예속되는 노예의 길을 개척한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경제는 발전하면 할수록 점점 피폐해져서 급기야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민중사관은 무엇인가? 역사학계의 원로인 이기동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사 교과서 좌편향의 뿌리가 1980년대 국사학계에 대두한 민중사학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의 말이다.
“편협한 민족 중심, 계급 중심을 앞세우는 민중사학의 정체를 알면 한국사 교과서의 왜곡은 당연하다는 사실이 이해됩니다. 그들의 한국 근현대사 기본 인식은 반(反)외세와 반(反)자본주의입니다. 대외적 측면에서 식민지 시대는 반일(反日), 광복 후는 신식민지 시대로 보아 반미(反美)가 중심이고, 대내적 측면에서는 민중 해방과 체제 타파가 목적입니다.”(조선일보, 2015. 10. 22 인터뷰)
이기동 교수가 말하는 민중사학은 민중사관에 바탕을 둔 방법론을 말한다. 민중사관은 북한이 정식화한 주체사관을 말한다. 교과서 좌편향을 연구한 정경희 교수는 “민중사학은 북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남한에 유입되면서 대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일종이다. …민중사학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기본적으로 반봉건의 근대화와 반제국주의의 항쟁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 교수는 “민중사학은 ‘역사 발전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하는 역사관”이라며 “한마디로 민중이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변혁을 모색하는 게 그 주요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중사학은 대한민국을 여전히 제국주의 미국의 식민지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우리의 근·현대사를 지배계급과 기층 민중의 대립 구도로 파악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역사관의 한 형태”라고 정의하고 있다.(조선pub, 2014. 1. 25 인터뷰)
이기동 교수와 정경희 교수의 말을 요약하면 대한민국 교과서가 왜곡되기 시작한 것은 북한의 역사관과 역사연구 방법론이 대한민국에 도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북한 역사관의 도입 시기는 학생운동에 주체사상과 그 혁명론이 도입되기 시작하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역사문제연구소(1986년), 한국역사연구회(1988년),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 1988년) 등이 이 시기 설립된 역사 관련 연구소들이다. 학생운동에 북한 주체사상 도입이 1984년 말이고, 학생운동이 일반화된 시기가 애학투(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 발족식(소위 건국대 투쟁)이 있던 1986년이었다.
사실 한국의 역사학계는 북한의 역사관과 방법론에 대해 무지했다. 북한 역사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학생운동에서 북한의 역사학과 방법론이 소개되자, 들불처럼 갑자기 번진 것이다. 그 결과 역사 문제를 연구하는 단체들이 대한민국에 출현한 것이다. 이들에 의해 진행된 북한 역사학 연구와 도입이 오늘 대한민국 교과서 좌편향을 이뤄 낸 것이다.
북한의 역사관과 역사연구 방법론
북한의 주체사상을 해설한 <민족자주화운동론Ⅰ>에서 조진경(가명)은 “주체사상의 사회역사원리 즉 주체사관은 인간관, 철학원리와 긴밀한 내적 연관을 가지는 네 가지 기본명제로 구성되어 있다. …인민대중은 사회역사의 주체이다. …인류의 역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이다. …사회역사운동은 인민대중의 창조적 운동이다. …혁명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이다”로 요약 설명하고 있다.(조진경, <민족자주화운동론Ⅰ>, p332~337, 백산서당, 1988년, 서울)
주체사상에서 인민대중(즉 민중)이 사회역사운동의 주체라는 것은, 주체가 없는 자연운동과는 달리 사회역사운동은 주체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에 의해 발생·발전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즉 인류 역사가 민중의 주체적 힘에 의해 발전하여 왔다는 것이다.
또 주체사관이 인류 역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인류 역사가 인민대중의 자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자연과 사회적 관계에 대해 투쟁하는 가운데 발전해 왔다는 것을 뜻한다.
자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사회적 관계란 공산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지배계급의 사회적 착취관계를 말한다. 그런데 식민지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수탈(자본가가 노동자를 수탈하는 것―이를 계급모순이라고 말한다)과 민족적 수탈이 중첩되었다는 것이다. 민족적 수탈이란 제국주의의 식민지적 지배(이를 민족모순이라고 말한다)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의 역사관에 의한 역사 기술은 민중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자본가 계급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역사 발전은 민중이 주체가 되어 온갖 자주성을 가로막는 제국주의와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에서 동력을 가지고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민중사관에 따른 역사 기술이 민중의 투쟁사가 주를 이루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조갑제닷컴에서 출판한 <대한민국 교과서가 아니다>를 보면 좌편향 교과서는 현대 역사를 정부에 대한 저항운동과 시위의 역사로 서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건강과 가정을 위한 학부모연합’(건학연)은 ‘현재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남한의 시위 장면 지속 반복
“(비상출판) 4·19 혁명 당시 수송초등학교 학생들의 시위 사진을 수록.
- <우리는 왜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는가?>로 시작하는 궐기문도 수록.
- 제6장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라는 현대를 기술하는 첫 페이지부터 광주 시위를 말하면서 63페이지에 걸쳐 무려 17개의 시위 내용을 반복해서 수록.
- 신탁 및 반탁시위, 4·19 시위, 교수 시위, 학생 시위, 한일회담 반대 시위, 5·18 광주 시위, 이한열 영결식과 수입개방 반대 시위, 농민 시위, 6·10 민주화 시위 등”
이런 역사 서술 방식은 북한의 주체사관에 의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북한 역사서인 <현대조선역사>는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미군정, 5·10 총선거,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미제의 식민지 예속화 정책을 반대하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미 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민족을 분열시키는 정책을 실시하면서 남조선에서 식민지 예속화 과정을 다그쳤다. …미제 침략자들은 남조선 인민들의 온갖 민주주의적 자유와 권리를 말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악법들을 만들어냈다. …미제는 특히 남조선에서 공산당을 파괴하려고 광분하였다. 미제는 1946년 5월에는 이른바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날조하여 공산당 본부를 습격하였으며 당 기관지인 ‘해방일보’를 강제 폐간시켰다.(217면)…
남조선 인민들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미제의 식민지 예속화 정책과 민족분열 정책을 반대하며 북반부에서와 같은 민주개혁의 실시와 조국의 자주적인 통일독립을 요구하여 과감한 투쟁을 일으켰다.(219면)…
미군정의 유혈적인 탄압은 인민들의 분격과 반항을 더욱 격발시켰다. 미제의 야수적 탄압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은 대중적인 시위투쟁으로 넘어갔으며 10월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전인민적인 반미 구국항쟁으로 발전하였다. 10월 1일 대구에서 군중들에 대한 무장경찰들의 발포를 계기로 폭발한 인민항쟁은 점차 남조선 전 지역으로 확대되었다.(220면)…
남조선에서의 5·10 단선과 친미정부 조작…
전체 조선인민은 망국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유엔임시조선위원단’의 입국과 망국 단선을 반대하는 2·7 구국투쟁이 남조선 전역에서 벌어졌다.(226면)…
제주도를 비롯한 남조선의 여러 곳에서 무장투쟁이 일어났다. 제주도 인민들은 무장으로 반동경찰을 제압하고 ‘선거’를 완전히 분쇄해 버렸다.(227면)…
남조선 정부 조작 후 남조선 인민들의 반미 반정부 투쟁(240면)…
1948년 10월에 여수 주둔 ‘국방군’ 제14연대의 애국적 병사들의 폭동이 일어났다.
제주도 인민항쟁을 진압하라는 동원령을 받은 14연대 병사들은 동족살육에 내모는 정권의 배족행위에 분격하여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단연 촉동에 궐기하였다.(241면)”
이런 내용들은 북한의 역사서술 방식은 민중의 투쟁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4·19 혁명은 4월 인민봉기
북한 역사서는 1960년 4·19 혁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제4장 남조선 인민들의 구국투쟁
제1절 4월 인민봉기(452면)…
미제와 이승만 정권을 반대하는 남조선 인민들의 이러한 투쟁은 1960년 4월에 이르러 이승만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대중적 봉기로 발전하였다.
《1960년 4월에 있은 인민봉기는 남조선 혁명운동 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어 놓습니다. 4월 인민봉기는 남조선 혁명운동 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어 놓습니다. 4월 인민봉기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식민지 통치 밑에서 오랫동안 쌓이고 쌓였던 남조선 인민들의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었으며 남조선 전역에서 수백만 명에 이르는 광범한 군중이 참가한 대중적인 반미 구국항쟁이었습니다.》(김일성 저작집)(457면)”
이어 박정희 장군에 의한 5·16 군사혁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제2절 군사파쇼독재의 수립,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인민들의 투쟁
미제에 의한 군사파쇼정권의 조작(461면)…
미제와 장면 정권은 남조선 인민들의 줄기찬 투쟁을 억제하려고 온갖 방법과 수단을 다 써가며 발광하였으나 투쟁은 시시각각으로 발전하여 ‘예상외의 사태’로 접근하였다.
이에 당황한 미제는 저들의 식민지통치를 유지 강화하기 위하여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등 군내의 극단적인 파쇼분자들을 내세워 ‘군사정변’을 도발케 하여 장면 ‘정권’을 밀어던지고 그 대신 가장 포악한 군사파쇼독재 ‘정권’을 조작하였다.(462면)”
북한의 역사 기술에 따르면 민중들의 반파쇼 민주화 투쟁이 격화되자 드디어 국가폭력의 최대 강력한 방식인 파쇼통치체제가 박정희 정부라는 설명이다. 당연히 여기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투쟁이 다음으로 서술된다.
“군사파쇼를 반대하는 투쟁
미제의 조종 밑에 군사 파쇼 무리들은 새 제도와 새 생활을 갈망하는 남조선 인민들의 혁명적 진출을 말살하고 심각한 위기에 처한 저들의 식민지 통치체제를 수습해보려고 전례 없는 야수적 탄압과 파쇼 테러통치를 더욱 강화하였다.(463면)…
6·3 봉기와 8월 투쟁(467면)…
《1964년의 6·3 투쟁과 올해 8월에 또다시 일어난 시위투쟁은 미일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정책을 반대하며 매국도당을 때려 부수기 위한 반제, 반파쇼 애국투쟁이었습니다.》(468면)…
반제 반파쇼 투쟁의 강화(475면)…
남조선에서의 반파쇼 민주화 투쟁은 군사파쇼 독재를 없애고 남조선 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이며 민족의 영구 분열을 막고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이다.(476면)”
이어 10월유신 체제의 등장과 유신을 반대하는 투쟁을 서술하고 있다. 북한의 <현대조선역사>는 혁명의 주력인 노동자와 농민들의 투쟁을 기술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남조선에서의 반파쇼 민주화 투쟁은 군사파쇼 독재를 없애고 남조선 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이며 민족의 영구분열을 막고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이다.(476면)”
<현대조선역사>는 이어 1979년 10월의 부마(釜馬)투쟁과 1980년 5월의 광주투쟁을 기술하고 있다.
“10월 민주항쟁은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투쟁을 발단으로 하여 시작되었다.(486면)…
광주인민봉기
《…지난 5월 수많은 인민들이 일제히 떨쳐 일어나 손에 무장을 들고 용감히 싸운 광주인민들의 영웅적 봉기는 남조선의 파쇼통치지반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으며 미제와 그 앞잡이 군사파쇼분자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였습니다.》(김일성 저작집)(488면)”
민중사관에 입각한 교과서는 대한민국 교과서가 아니라 북한 혁명론이다
앞서 소개한 건학연의 ‘현재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와 북한의 역사서인 <현대조선역사>를 비교하면 그 서술 방식이 놀랍도록 일치한다. 북한의 역사 기술과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의 기술 방식이 똑같은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순간이다.
정경희 교수는 민중사학은 대한민국이 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로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대립 구도로 파악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이라고 설명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 제국주의와 그와 결탁한 매판 자본가들의 수탈과, 이에 저항하는 한국 민중들 간의 투쟁의 역사라고 본 북한 주체사관을 철저히 추종하는 사관이 민중사관이다.
이런 기술 방식은 북한이 정식화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론에서 말하는 사회 성격과 혁명의 대상과 동력, 임무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역사 서술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성공은 세계사적 사건이다
대한민국을 저주하고 혁명을 꿈꾸는 주체사관을 대한민국 학생들이 배워서는 안 된다. 8·15 해방 직후 북한 보다 훨씬 못한 조건에서 대한민국은 출발했다. 70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과 북한은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북한은 유래 없는 3대 부자(父子) 세습과 경제적 실패로 세계가 조롱하는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어떤가?
대한민국은 북한의 저주와는 달리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 가운데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성공의 역사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과 같은 성공 스토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이 대한민국의 성공 스토리를 모방하고 있는 데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가지는 세계사적 지위를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대한민국의 성공을 넘어 아직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숱한 제3세계 국가들이 따라 배워야 할 모범이다.
아직도 가난과 정치적 인권적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3세계 국가들에게 대한민국의 성공경험을 설명하고 이들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하는 세계사적 책임이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 성스러운 책임과 역할을 누가 저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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