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일 국가정보원장에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을 내정했다. 청와대 안보실장은 서훈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은 이인영 의원, 외교·안보특보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정의용 안보실장을 각각 내정했다. 북핵 폐기보다 거의 무조건적인 대북 유화책을 주장해 온 사람들 일색이다.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밀사로 북한 측과 첫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고, 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김정일에게 뒷돈 4억5000만달러를 건네는 역할을 맡았다. 그 지원으로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 위기를 넘기고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해 6년 뒤 첫 핵실험에 성공했다. 박 내정자는 노무현 정권 시절 특검 수사를 받고 수감됐다.
국정원은 북한을 포함한 모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안보 최일선 기관이다. 군은 전시에 싸우는 기관이지만 국정원은 평시에도 싸워야 하는 기관이다. 언제부턴지 대통령들은 국정원을 국가의 안전을 책임진 정보기관이 아니라 자신의 어젠다를 수행하는 밀사로 여기고 있다. 정보 업무는 결코 수월하지 않다. 아무나 시켜도 되는 자리일 수가 없다. 북한은 물론 해외·사이버·대테러와 관련해 쏟아져 들어오는 첩보 속에서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경험과 식견이 있어야 한다. 수십년 국내 정치에만 몰두해온 박 내정자에게 김정일을 접촉했던 경험 말고 어떤 정보 전문성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더구나 국정원은 우리가 취약한 첨단 장비를 갖춘 미국과 일본과의 정보 교류에 의존해 왔다. 이들 우방국이 박 내정자의 대북 입장과 처신을 어떤 시각으로 볼지 의문이다. 이 국가들이 민감한 대북 정보를 국정원과 얼마나 공유하려 할지 걱정이다.
국정원은 판문점 정상회담 한 달 전 김정은이 특별 열차로 방중(訪中)했는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하노이에서 트럼프가 가짜 비핵화 판을 박차고 나오기 전까지 백악관 움직임도 몰랐다. 이 정부 들어 북한 간첩을 잡았다는 얘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북이 신형 ICBM을 쏜 날 간
첩 수사는 다른 곳에 넘긴다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북핵을 없애려면 북 집단과도 협상해야 한다. 그러나 북은 남북 정상회담을 연 직후에 우리 경비정을 기습해 장병들을 죽인 집단이다. 협상의 와중에도 누군가는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국정원뿐이다. 그런데 국정원장이 정보기관 수장이 아니라 대북 밀사라면 안보는 누가 지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