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이 중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동맹국 간에도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고 해법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맹의 성격과 목적에 이견이 있고 그 이견이 동맹의 틀 내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공개적으로 표출되는 일이 잦아지면 동맹이 고장 난 신호다. 지난 10일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간 회담에서 ‘동맹 대화’를 위한 국장급 실무 협의체를 신설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한미 관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양국 정부 내에 동맹 대화를 담당하는 상설 조직이 있고 외교·국방장관이 참석하는 2+2 협의체가 창설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정상급이든 국장급이든 만날 때마다 동맹 현안을 논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동맹 대화를 위한 실무 협의체를 만들어야 할 만큼 한미 간 불통이 심각하다는 말인가? 양국 간 고위급 협의가 이루어지면 그 결과에 대한 발표 내용의 진위를 두고 종종 벌어지는 논란도 불통이 빚은 촌극이다. 한미 동맹이 이 지경으로 망가지게 된 원인 세 가지만 짚어보겠다.


첫째는 동맹 간 신뢰 상실이다. 신뢰는 동맹의 생명이다. 신뢰가 무너진 동맹 간에는 전략적 소통과 공조는 차치하고 민감한 정보의 공유조차 불가능하다. 트럼프의 편협한 동맹관이 한미 간 신뢰를 흔드는 데 큰 몫을 했다. 상업적 거래의 관점에서 동맹을 대해왔고 미국이 동맹국들에 호구 노릇만 해왔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줄이는 데 과도하게 집착해왔다.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약속할 때 매티스 국방장관과 일언반구 상의도 없었고 그의 머릿속에서 동맹은 없었다. 볼턴 회고록과 지난주 출판된 밥 우드워드의 신작 ‘격노(Rage)'가 이를 확인해 주고 있다.


한미 간 불신을 키운 데는 문재인 정부의 몫도 작지 않다. 한미 동맹과 연합방위체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을 결정하면서 미국과 사전 협의를 소홀히 함으로써 동맹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중국과의 ‘사드 3불(不) 합의’는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지킬 자위권을 제한당하는 치욕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주한 미군과 유사시 한반도로 전개될 미군 증원 전력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그만큼 미국이 방위 공약을 지키기 어렵게 되는 원리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판문점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에서 북한에 대한 감시 정찰을 제한함으로써 북한의 기습공격을 용이하게 만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적대 행위의 범위를 육해공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의 근원이 되는 일체의 행동으로까지 확대하여 이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것도 미국의 불신을 자초할 자해 행위였다. 한미 연합훈련을 북한이 적대 행위로 규정하여 이를 비난할 근거를 마련해주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연합 방어를 더 어렵게 만드는 독소 조항에 합의하면서 미국과 협의하지 않은 것은 동맹의 정신에 어긋난다.


둘째는 동맹의 성격과 목표에 대한 동상이몽이 동맹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일 한미 관계를 군사 동맹과 냉전 동맹으로 규정하고 평화 동맹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은 정부의 그릇된 동맹관의 일단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미 동맹은 북한의 평화 파괴를 억지하고 억지가 실패하면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존재해왔는데 평화 동맹으로 전환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정부가 북한이 핵을 내려놓지 않더라도 남북 간 교류 협력과 민족 공조로 온전하고 지속적 평화가 가능하다는 자기기만과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있다면 미국과의 동맹 대화는 동문서답이 될 수밖에 없다.


끝으로 한미 동맹에 기대하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감소하면 동맹에 대한 미국의 국내 정치적 지지 기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지난 67년간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국가의 생존 보험으로 한미 동맹의 효용 가치를 입증한다. 미국도 동아시아의 전략적 균형과 안정 유지라는 이득을 누렸다. 그러나 중국의 공세적 팽창 정책이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한국이 동참할 의지가 없고 미국이 일본, 인도, 호주, 베트남 등과 연대를 통해 전략적 이익을 지킬 방도가 있다면 미국에 한미 동맹의 가치는 줄어들 것이다. 한일 간 과거사를 둘러싼 반목과 대결도 미국 조야에 한미 동맹의 유용성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이러한 동맹의 근본적 문제가 집권 운동권 세력의 사상적 전향 없이는 당장 해결될 가망이 없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위협이 핵무장한 북한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에서 온다는 착각과 한미 동맹은 청산해야 할 적폐라는 망상에서 탈피하고, 친중 사대주의와 반일 근본주의에서 깨어나야 냉혹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현실이 바로 보이고 고장 난 한미 동맹을 고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