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신, "대한민국의 主敵이 기업으로 바뀌었나," 조선일보, 2020. 10. 15, A31쪽.]


4·15 총선 후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기업 규제 법안이 300건에 육박한다. 치명적 독소 조항을 품고 있는 법안들이 하도 많아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이 북한에서 기업으로 옮겨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민주당에서 쏟아지는 법안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은 기업이란 소수를 때려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배 고프거나 배 아픈’ 다수의 환심을 사겠다는 셈법이 깔려 있다.


기업 대(對) 근로자, 대주주 대 소액주주, 대기업 대 중소협력업체, 대기업 대 소비자로 갈라치기를 해놓고 소수 세력을 벼랑으로 내모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수 쪽은 무얼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얻어맞는다. 굳이 죄를 찾는다면 그들의 표가 소수라는 것뿐이다.


지난주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반(反)기업의 결정판이라는 ‘기업 규제 3법’ 문제로 경총을 방문했다. 원내대표나 대변인이 마이크 잡고 “3법 그대로 간다”고 발표하면 그만인데, 당 대표가 직접 기업인들을 찾아가 설명하는 격식을 차렸다. 그래서 혹시 개선안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이 대표는 “3법을 늦출 수 없다”고 단언했다. 기업인들 면전에서 대못 박기 이벤트를 한 것이다. 집권당 대표가 직접 소수를 때리는 장면을 다수에게 보여줬다.


대기업 이익을 협력업체들에 강제 배분하는 이익공유제, 1개월만 일한 근로자에게도 퇴직금을 주자는 제도, 대형매장과 전통·골목상권 이격거리를 1㎞에서 20㎞로 늘리는 법안이 모두 다수 표를 얻기 위한 소수 때리기다. 기업에는 괴물과도 같은 이런 법안들이 줄줄이 국회를 빠져나올 기세다.


“설마?” 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과거엔 상상도 못 했던 많은 것들이 지난 3년여 동안 현실이 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수를 겨냥한 일련의 반기업·반시장 정책으로 수많은 사람이 실직과 소득 감소로 고통을 받는데도 정부는 꿈쩍하지 않는다. 도리어 소수를 더 옥죄고 세금을 무차별 살포해 다수를 권력의 편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반전(反轉)’을 보여줬다. 이것이 여당의 총선 압승으로 이어졌고 그 후 소수 때리기는 더 심해졌다. 온갖 법규를 고쳐 기업인을 감옥에 넣을 수 있는 조항이 2600개로 불어났다. 이 나라에서 기업 하는 사람은 ‘예비 범죄자’가 됐다.


며칠 전 세계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민주당(DPK)’을 언급했다. “4월 총선 압승으로 민주당과 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의석이 60%를 차지해 다른 정당의 지원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대 집권당에 의한 무리한 재정적자 확대를 우려했다. 이미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피치가 경고한 46%에 근접해가고 있다. 이 선을 넘으면 국가신용등급 강등 위기를 맞는다. 민주당엔 대형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이 상황을 피하면서 다수의 환심을 사는 재정 퍼붓기를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엄청난 세금을 내온 소수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는 것이다. 지금 정부는 기업의 유보 소득 과세, 3억원 대주주 양도세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또 다른 증세도 궁리하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오름세를 탔던 경제성장률이 문재인 정부 3년 내내 하락세다.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하다. 우리경제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무엇보다 노동 개혁과 규제 혁신이 필수인데 이 마저 외면하고 있다. 다수가 반대하기 때문이다.


지금 위기 역시 과거 위기 때처럼 기업이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 정부는 기업을 그런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적폐 몰이 대상’ ‘세금 자판기’로 이용할 뿐이다. 소수에게 관용은 결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