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월성1호 폐쇄 결정뒤 근거 조작한 정권, 한밤에 증거 444개 삭제," 조선일보, 2020. 10. 21, A35쪽.]


산업통상자원부가 감사원 감사를 받는 와중에 현 정권 탈원전 정책과 관련한 청와대 보고자료 등 444개 파일을 삭제한 사실이 드러났다. 탈원전 관련 각종 조작이 들통날 것이 우려되자 산업부 공무원들이 회의를 갖고 자료 삭제를 결정했다고 한다. 조직적인 증거 인멸, 명백한 감사 방해 행위다. 자료 삭제는 담당 공무원이 일요일이던 작년 12월 1일 밤 11시에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2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파일 복구가 되지 않도록 원래 파일명 등을 수정해 다시 저장한 뒤 삭제하는 방법까지 동원됐다고 한다. 파일 삭제로는 모자라 파일이 든 폴더까지 통째 삭제하기도 했다. 공무원들이 이렇게 대담하고 철저하게 증거 인멸을 했다. 독재 정권 시절에도 보기 힘들었던 일이다.


감사원은 자료 삭제가 산업부 국장급 공무원 주도하에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를 누가 믿겠나. 공무원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본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청와대 지시 없이 이런 범죄행위가 자행됐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월성 1호기 억지 폐쇄는 청와대 요구에서 비롯됐다는 정황이 감사원 감사 자료에 그대로 나온다. 증거 인멸 역시 산업부 실무진 판단이 아니라 ‘근거 자료를 다 없애라’는 청와대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감사원은 한수원이 애초 월성 1호 조기 폐쇄가 아닌 계속 가동을 희망했다고 밝혔다. 산업부 실무진도 조기 폐쇄보다 한수원 이사회 의결 후 일정 기간 연장 가동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을 2017년 12월과 2018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 비서실과 백운규 당시 장관에게 보고했다. 청와대 비서실도 처음엔 산업부 방침에 호응했다고 한다. 중대한 사실이다. 누군가 압력을 가해 이를 즉각 폐쇄로 뒤집은 것이다. 누구겠나.


이 기존 방침이 180도 달라진 것은 한 달 뒤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2일 ‘월성 1호의 영구 가동 중단’을 언급하며 “언제 결정할 계획인지" 질문했고, 그러자 청와대 담당 비서관이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중단하는 것으로 산업부 장관까지 보고해서 확정된 보고서를 받아보라”고 청와대 행정관에 지시했다고 한다. 이튿날인 4월 3일 이 지시가 산업부에 전달되자 백운규 당시 장관이 산업부 실무진에게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쇄 결정과 동시에 즉시 가동 중단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결정된 것은 2018년 4월 2일 문 대통령이 지시한 바로 이날이었던 것이다.


이때는 월성 1호의 폐쇄 시기 등을 결정하기 전에 한수원이 먼저 수행하기로 했던 외부 전문 기관의 경제성 평가가 착수되기도 전이었다. 경제성 평가가 시작도 안 됐는데 결정은 이미 내려진 상황이었다. 대통령 지시에 이어 백운규 당시 장관의 ‘즉시 가동 중단’ 지시 이후 이뤄진 한수원의 경제성 평가와 6월 15일 이사회 의결은 순전히 요식행위였다. 거기에 필요한 근거 자료는 왜곡 조작으로 만들어졌다. 그랬는데 예상치 않게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되자 청와대는 이 자료들을 없애라고 지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감사원은 “자료 삭제와 관련해 수사기관에 수사 참고자료를 송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감사원 감사로는 자료 삭제 경위를 명확하게 규명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검찰에 수사를 하도록 요청한 것으로 봐야 한다. 산업부 공무원이 삭제한 파일 444개 가운데 120개는 감사원이 복구에 실패했다. 이 120개 파일에 청와대 개입 여부를 규명할 단서가 포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제성이 있는데도 없다고 둔갑시킨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물론 신한울 3·4호기를 비롯한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등 이해할 수 없는 탈원전 정책의 전모가 여기에 들어있을 수도 있다. 파일을 삭제한 담당 공무원도 “중요하고 민감하다고 판단되는 문서를 우선적으로 삭제했다”고 감사원에서 진술했다.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자료를 삭제하고 자료가 든 폴더까지 삭제한 것도 단순히 산업부 차원의 비리 은닉, 증거 인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 관련성을 지우기 위해서였기 때문일 수 있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월성 1호 조기 폐쇄뿐 아니라 탈원전 정책 전반에 걸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