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뚫린 전방, 지금 軍에 정상 작동하는 게 있기는 한가," 조선일보, 2020. 11. 5, A31쪽.]
북한 민간인 1명이 강원도 전방 지역에서 우리 군 철책을 넘어 내려왔다고 합참이 밝혔다. 귀순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군은 이 남성이 2일 군사분계선(MDL)에 이어 3일 저녁 남측 철책을 넘는 모습을 열상감시장비(TOD)로 확인했지만 14시간 넘게 우리 측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을 붙잡지 못했다. 북한군이 아닌 민간인에게도 전방 철책이 뚫린 것이다.
비무장지대 우리 측 철책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닿기만 해도 센서가 울리는 ‘과학 경계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군은 ‘멧돼지 한 마리도 넘어올 수 없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한 주민이 철책을 타고 넘었는데도 아무런 경고음이 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군은 “작동 안 된 이유를 확인 중”이라며 “보완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5월 북한군의 GP 총격 때도 우리 군의 기관총 원격 사격 체계가 먹통이었다. 지금 우리 군에 정상 작동하는 게 있기는 있나.
지금 우리 군의 ‘경계’는 허울뿐이다. 3일 대침투 경계를 ‘진돗개 하나’로 격상하고도 14시간 넘게 못 잡은 건 “어두워서” “지형이 험해서”라고 했다. 실제 전쟁이 나도 이런 변명을 할 건가. 지난해 북한 목선이 동해 삼척항에 입항할 때까지 까맣게 몰랐고 발견 장소도 ‘부두’가 아닌 ‘인근’으로 속였다. 올해 소형 보트들의 서해 밀입국은 주민 신고를 받고서야 알았다. 진해 해군기지는 치매 노인에게, 수도방위사령부 방공 진지는 취객에게 뚫렸다. 제주 해군기지는 철조망을 끊고 들어간 시위대의 놀이터가 됐다. 평택 탄약고 인근에선 거동 수상자가 달아나자 가짜 범인을 만들어 사건을 은폐·조작한 일도 있었다. 적군이 들어왔다면 그대로 몰살당했을 것이다.
군은 경계에 실패할 때마다 “반성한다”며 “특단 대책”을 다짐했다. 이젠 그 말을 국민은 물론이고 군인들 자신도 믿지 않을 것이다. ‘양치기 군대’가 돼가고 있다. 지금 군은 ‘군사력이 아니라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군대다.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는 생각이 장군부터 사병까지 지배한다. 가장 중요한 한·미 연합훈련은 안 한 지 오래됐다. 미군이 해외로 나가 훈련해야 할 지경이다. 한국군 자체 훈련이라도 제대로 하고 있나. 북한 눈치 보면서 흉내만 내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