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사태] 사설: '나는 5·18을 왜곡한다'며 5·18법 질타한 항변과 역설
2020.12.15 15:55
“나는 5·18을 왜곡한다”며 5·18법 질타한 항변과 역설
[사설: “나는 5·18을 왜곡한다”며 5·18법 질타한 항변과 역설. 조선일보, 2020.12.14, A35쪽]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엊그제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제목으로 담시(譚詩) 형식의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최 교수는 52행 분량의 이 시에서 “지금/ 나는/ 5·18을 저주하고,/ 5·18을 모욕한다”면서 “그들에게 포획된 5·18을 나는 저주한다/ 그 잘난 5·18들은 5·18이 아니었다./ 나는 속았다”고 토로했다. 전남 함평 출신으로 광주광역시에서 중·고교를 다녔던 최 교수는 1980년 5월 5·18 당시 스물한 살이었다.
이 글은 정부·여당이 지난 9일 국회에서 처리한 5·18 민주화운동 역사왜곡 처벌법을 비판한 것이다. 이 법은 5·18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해 명예훼손을 할 경우 최대 징역 5년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있다. 이 법은 여권에서 발의(發議)가 추진된 지난봄부터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우리 헌법상 가장 핵심적인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위헌(違憲) 논란이 있었다.
한 진보 논객은 “6·25에 대해서는 북침, 유도 남침, 국지전의 전면전 비화설 등도 처벌받지 않는데, 5·18에 다른 견해를 말하는 것을 법으로 처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고,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인사도 “(나는) 5·18 왜곡을 막기 위해 싸우겠지만 5·18 왜곡 처벌법 제정에는 반대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어제 ‘나는 5·18을 왜곡한다를 발표하고 나서'라는 글을 올리고 5.18왜곡 처벌법을 재차 비판했다. 그는 “나는 5·18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5·18을 폄훼하는 사람들을 폄훼한다”면서 “5·18은 민주화 투쟁인데, 민주당의 전유물이 되었다. 정치인들에게 포획되었다”고 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입에 막무가내로 재갈을 물리는 정권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 지식인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최 교수는 그들을 대표해서 ‘나는 대놓고 5·18을 왜곡한다고 밝혔으니 나부터 처벌해보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