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金 核 무력 대놓고 과시하는데 “손잡자” 한마디에 靑 또 반색," 조선일보, 2020. 10. 12, A35쪽.]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세계 최대의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 종전 ICBM에 비해 탄두 중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며 2, 3개가량의 탄두를 탑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ICBM은 한 발로 워싱턴과 뉴욕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어 요격이 훨씬 어려운 ‘괴물’로 보인다고 미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 관리는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고 있어 실망스럽다”고 했다.


북한은 국제사회 제재가 몇 년째 계속돼온 데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국경 통제까지 더해지면서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정은이 열병식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맙다” “감사하다”를 반복하고 심지어 “면목 없다”고 자책하는 말까지 한 것도 북한 내부의 먹고사는 문제가 심상치 않은 상태임을 말해준다.


북한이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안은 간단하다.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비핵화만 하면 북한에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몇 차례나 설득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미 본토를 겨눌 수 있는 ICBM을 보란 듯이 공개했다.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든 임기가 시작할 무렵 도발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코로나를 막는답시고 바닷물에 떠밀려 온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고 시신까지 소각하는 만행을 저지를 때는 언제고 마스크 없이 거리 두기도 하지 않은 수만 군중을 한군데 모아놓고 함성을 지르게 만든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김정은은 이날 대남 타격용 신무기도 함께 선보이면서 “북과 남이 다시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한편으론 주먹 자랑하며 겁을 주면서 말로는 잘 지내보자고 한 것이다. 대통령이 제안한 공무원 사살 남북 공동조사에 대해서는 보름이 되도록 못 들은 척 응답이 없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남북 관계를 복원하자는 북한 입장에 주목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김정은 발언이 “이례적”이라며 “멈춰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복원하자는 우리 의지에 화답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국민을 잔인하게 죽여 놓고도 김정은이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니 감읍했던 그대로다. 북한이 무슨 일을 저지르든 남쪽을 향해 입 발린 소리 한 마디만 하면 만사 없었던 일이 된다. 김정은은 남쪽 다루기 참 쉽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