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족’만 무성하고 ‘민주’는 없다
2021.07.13 14:09
‘민족’만 무성하고 ‘민주’는 없다
[김영수, "‘민족’만 무성하고 ‘민주’는 없다." 조선일보, 2021. 7. 6, A34쪽; 영남대 교수, 정치학.]
중국은 국가를 넘어 하나의 문명으로서, 역사가 유구하다. 하지만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구에 의해 깊은 좌절을 겪었다. 민족적 자부심도 큰 상처를 입었다. 지난 1일 시진핑 중국 주석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사에서, 아편전쟁 이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중국 인민의 가장 위대한 꿈이 됐지만, 이제 굴욕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과연 지난 40년간 중국의 대국 굴기는 무서웠다. 10년 안에 미국을 추월할 거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런 중국이 허울뿐이라는 중국인이 있다. 201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이다. 중국 헌법 제정 100년,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이한 2008년 그는 벗들과 ’08헌장'을 발표했다. 여기서 1949년 세운 ‘신중국’은 이름만 인민공화국이고, 실질적으로는 ‘일당독재’라고 비판했다. 또한 “법률은 있지만 법치는 없고, 헌법은 있지만 헌정은 없는 게 중국 정치의 현주소”라고 개탄했다.
사실 시진핑의 기념사는 ‘민족’만 무성하고 ‘민주’가 없다. 아울러 그는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으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류샤오보는 자유와 평등,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며, 민주와 공화체제, 헌정이 현대 정치제도의 기본 구조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빠진 중국의 현대화는 “인권을 박탈하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재앙의 과정일 뿐”이라고 규탄했다.
류샤오보는 2017년 6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젊은 시절 마오쩌둥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베이징 사범대에서 공부하고, 노르웨이와 미국에서 중국 철학과 문학을 강의했다. 사람으로서, 학자로서 열심히 살자는 게 그의 소박한 꿈이었다. 그러나 35세인 1989년 톈안먼 사건이 발생했다. 전도유망한 그는 귀국하여, 자유와 민주, 인권을 요구하는 선언서를 발표했다. 시위는 탱크에 의해 유혈 진압되고, 많은 동지들이 중국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조국에 남았다. 국가전복선동죄로서 8년의 투옥 생활 중 간암 진단을 받았다. 삶의 마지막 날들을 그는 아내 류샤의 간호를 받으며 지냈다. 오랜 감옥 생활에서 그는 아내를 애절하게 그리워했다. “사랑하는 당신 / 어둠을 사이에 두고 당신에게 말합니다 / 무덤으로 들어오기 전에 / 유골로 나에게 편지 쓰는 걸 잊지 마세요.”(’감당' 1996)
지난달 13일,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은 중국에 인권과 기본적 자유, 자치를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일관되게 전 세계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확산을 국가적 사명으로 천명해왔다. 이에 대한 시진핑의 답변은 “중국을 괴롭히는 세력은 강철 만리장성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는 거친 경고이다.
조셉 나이 교수에 따르면, 진정한 강대국은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소프트파워를 갖춰야 한다. 그래서 중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 공자를 등장시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를 외치게 했다. 세계 곳곳에는 공자 학원(Confucius Institute)을 세웠다. 문명 대국을 알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로서의 중국은 별 매력이 없다. 긴 중국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다. 근대 이전의 중국은 유교, 도교, 불교 등 보편 이념을 공공재로 공급해 왔다.
중국에 더 심각한 문제는 국가 이념의 공백이다. 대부분의 중국 국민은 사회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믿지 않는다. 말만 사회주의이기 때문이다. 1인당 GDP가 1만달러를 넘었지만, 월 수입 1000위안(약 16만9000원) 이하인 사람이 6억명에 달한다.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 이념의 공백을 민족주의와 유가 사상으로 메꾸고 있다. 창당 100주년 연설이 온통 중화 민족주의로 채워진 것도 이해가 간다. 국가 이념은 이상한 혼합물이 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봉건제를 깨고, 14억 인구의 의식주를 해결했다. 그러나 미완의 과업도 있다. 1919년 5⋅4운동이 제시한 근대 중국의 비전으로서, ‘과학’과 ‘민주’가 그것이다. 지난 100년간 중국은 그 절반만 성취한 셈이다. 홍콩과 대만은 목적지에 도달했다. 싱가포르는 연성 권위주의이다. 중국은 아직 그럴 의사가 없고, 민족주의와 유가 이념으로 일당독재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이 상황이 우려스러운 것은, 힘은 항우인데 정신은 아큐(阿Q)이기 때문이다. 에런 프리드버그 교수는 “아시아의 미래는 유럽의 과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아시아도 유럽처럼 세계대전 같은 참상을 겪은 뒤에야 겨우 평화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지금 동북아는 민족주의 열기로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인류 보편의 가치로 열기를 식혀야 한다. 이웃 나라 중국의 정치를 걱정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