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한수원 “원전 폐지하라니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다”
2021.09.03 10:46
한수원 “원전 폐지하라니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다”
[사설: "한수원 “원전 폐지하라니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다”" 조선일보, 2021. 8. 26, A35쪽.]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 재판에 제출된 검찰 공소장에는 산업부와 한수원 실무자들이 청와대 등의 집요한 압력에 시달리는 모습이 적혀 있다. 산업부는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네 차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보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해 10월 청와대에 불려간 산업부 과장 두 명은 채희봉 당시 산업정책비서관에게 에너지기본계획부터 바꾼 후 월성 1호기 폐쇄를 추진하자는 방안을 보고했지만 묵살됐다. 산업부 방안도 말이 안 되는 것인데 그마저 시간이 걸린다고 거부된 것이다. 그러자 산업부 공무원들은 “못 해먹겠다” “절차 지키며 추진하는 게 좋겠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실무 공무원이 청와대에 반발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그러려면 청와대에 오지 말라”는 답이었다.
탈원전 압력은 직접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수원에도 가해졌다. 한수원 본부장은 실무진에게 “출근하면 (탈원전) 지시를 받게 되니 아예 휴가를 가라”고 했고 이에 한 명은 휴가를, 다른 한 명은 해외 출장을 갔다. 실무자는 지인에게 “우리 보고 원전 폐지 계획을 세우라니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잘못된 길로 내몰리는 고립무원의 심정이 느껴진다.
2018년 4월 ‘월성 1호 즉시 가동 중단 계획을 세우라’는 청와대 지시를 전달받은 산업부 과장은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가야 되는 거라 좀 힘들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이거(월성 1호기 가동 중단)는 대통령 머리 깊이 박혀 있는 거다”라고 했다. 담당 과장은 청와대 지시를 백운규 당시 산업부장관에게 보고하면서 ‘2년 반 더 가동’을 말했다가 “너 죽을래?”라는 협박까지 받았다. 그는 조기 폐쇄 계획 확정 뒤 청와대의 한 행정관에게 “이건 나하고 국장하고 책임질 수밖에 없게 됐다. 산업부도 퇴로가 끊겼다”고 했다는 내용도 공소장에 담겼다.
결국 대통령 지시를 이행했던 산업부 국장과 실무자는 구속기소, 과장은 불구속기소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의 101쪽 분량 공소장에는 ‘대통령’이 46번, ‘문재인’이 3번 등장한다. 모든 책임은 문재인 한 사람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 한 명 때문에 고초를 겪는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