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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2%' 확률 뚫고 성공…전쟁 흐름 바꾼 세기의 전투였죠


①시작된 1950년 9월15일 유엔군 총사령관인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가운데)이 배 위에서 전투 상황을 살피고 있어요. ②작전 중 미 해병대 발도메로 로페즈 중위가 앞장서서 사다리를 걸치고 해안에 상륙하는 모습. 그는 상륙 직후 북한군 총에 맞아 손에 있던 수류탄이 떨어지자 자기 몸으로 감싸 다른 대원들을 살렸어요. 그는 후에 미 정부로부터 명예훈장을 받았어요. ③인천상륙작전 당시 인천 해안가 모습.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①시작된 1950년 9월15일 유엔군 총사령관인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가운데)이 배 위에서 전투 상황을 살피고 있어요. ②작전 중 미 해병대 발도메로 로페즈 중위가 앞장서서 사다리를 걸치고 해안에 상륙하는 모습. 그는 상륙 직후 북한군 총에 맞아 손에 있던 수류탄이 떨어지자 자기 몸으로 감싸 다른 대원들을 살렸어요. 그는 후에 미 정부로부터 명예훈장을 받았어요. ③인천상륙작전 당시 인천 해안가 모습.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뉴스 속의 한국사: "'0.02%' 확률 뚫고 성공…전쟁 흐름 바꾼 세기의 전투였죠" 조선일보, 2021. 9.2, A31쪽.]

오는 15일은 1950년 6·25전쟁의 흐름을 바꿔 놓은 '인천상륙작전'이 일어난 지 71주년이 되는 날이에요. 상륙 작전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 공격하는 작전을 말합니다. 세계 전쟁사에 한 획을 그은 전투라는 인천상륙작전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알아보기로 해요.

"성공 확률 '5000분의 1'"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기습 남침(북쪽이 남쪽을 침범함)했어요. 소련으로부터 '전쟁을 일으키라'는 승인을 받고 무기를 지원받은 북한은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국군은 남쪽으로 후퇴해 낙동강 전선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군의 남침을 불법이라 선언하고 유엔군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16국 군대로 이뤄진 유엔군의 총사령관은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1880~1964) 장군이었습니다.

북한군이 한반도 남쪽까지 진격한 상황에서 맥아더 장군은 적 주력 부대의 뒤쪽을 공격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서울과 가까운 인천에서 상륙작전을 펼친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유엔군 참모와 미 해군 본부는 반대했습니다. "인천은 조수 간만의 차(밀물과 썰물 때 바닷물 높이의 차이)가 심해서 상륙이 어렵고, 인천 앞 월미도가 작전의 장애물이 된다"는 얘기였어요. "성공할 확률이 500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란 말도 나왔고, 많은 사람은 "인천보다는 군산이 낫지 않으냐"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적이 방심하고 있을 것이고, 서울로 들어가는 지름길이어서 적의 보급로를 끊고 병력을 포위해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며 인천 상륙을 강행했다고 합니다.

중국은 북한에 '인천 상륙'을 경고했대요

그런데 왜 북한은 인천상륙작전을 대비하지 못했을까요? 당시 연합군은 북한군에 비해 압도적인 해군력을 지니고 있었어요. 중국은 북한에 "유엔군이 후방에 상륙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상륙 장소로는 남포·군산·원산 등을 예상했다고 해요. 훗날 문화대혁명 때 권력 투쟁 끝에 사망한 군인 린뱌오(林彪)는 "내가 맥아더라면 인천을 공격하겠다"는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인천을 조심하라"는 중국 측 정보에 깜짝 놀란 북한의 김일성은 서해안에 새로운 부대를 배치하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고 해요. 하지만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의 치열한 항전으로 전투가 길어지자, 이 병력조차 빼서 남쪽으로 보내 버리는 결정적 실수를 했습니다. 그 결과 인천상륙작전 당시 북한의 인천 방비 태세는 무척 엉성했다고 해요. '소련 육군 장교 출신인 김일성이 육상전에 집착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전쟁을 일찍 끝낼 수 있었다는 아쉬움 있어요

9월 15일 새벽, 배 261척과 병력 7만5000명을 동원한 유엔군과 국군의 상륙작전이 시작됐습니다. 먼저 인천 앞바다의 방패 역할을 해 주는 월미도부터 공격해 작전 2시간 만에 점령했습니다. 이어 오후 2시 30분부터 인천항과 인천 남동부 상륙을 펼쳐 성공했죠. 김포 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한 유엔군과 국군은 4일 뒤인 19일 한강을 건너 서울을 공격했고, 마침내 28일 북한군에게 함락당한 지 3개월 만에 서울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9·28 서울 수복(收復·잃었던 땅을 되찾음)'이라고 해요. 이로써 (1)월미도 점령 (2)인천항 주변 확보 (3)서울 수복까지 3단계에 걸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북진을 통해 평양과 원산을 점령한 뒤 압록강까지 진격했고, 중공군의 개입 전까지만 해도 통일을 눈앞에 둔 상황에 이를 수 있었죠.

하지만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은 인천상륙작전 성공 직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서울을 수복한 후 곧바로 동쪽으로 진격해 한반도의 '허리'를 장악했더라면 남쪽에 있던 북한군 주력 부대의 퇴로를 차단해 섬멸할 수 있었고, 그랬더라면 곧바로 전쟁을 끝낼 수도 있었을 거란 얘기예요. 하지만 맥아더는 그 대신 동해안으로 상륙하는 원산상륙작전을 계획했습니다. 이 작전은 계획보다 늦어져 10월 25일이 돼서야 상륙을 진행할 수 있었는데, 그사이 남쪽의 북한군은 태백산맥을 따라 후퇴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만약 인천상륙작전이 없었거나 실패했더라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됐을까요? 당시 국군은 북한군에 밀려 부산과 대구 정도만 간신히 지키며 전투를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많은 사람이 '곧 북한군이 승리해 한반도를 적화통일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었죠. 정말 그렇게 됐더라면 대한민국은 또다시 해외에 임시정부를 세워야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어디에 임시정부를 마련했을까요? 인천상륙작전 땐 그런 계획을 세운 적이 없지만, 이후 세운 계획을 참고할 수 있어요. 인천상륙작전 성공 몇 달 후인 1950년 11월 말부터 이듬해 1월까지 중공군의 공격으로 다시 국군이 후퇴한 1·4 후퇴 사건이 벌어졌어요. 상황이 안 좋아지자 1951년 4월 3일 미국 극동군사령부는 '전쟁이 매우 불리해질 경우, 한국 정부와 주요 인사 등 50만명을 사이판과 티니언으로 이송한다'는 작전 계획을 세웠죠. 태평양 서쪽의 미국령 섬인 사이판과 티니언은 면적이 각각 115㎢, 101㎢ 정도로 현재 대한민국 면적(10만401㎢)의 0.1% 정도입니다. 괌·서사모아·팔라우·파푸아뉴기니 등도 이전 후보지로 거론됐어요.

유엔군이 인천으로 모인 경로를 보여주는 지도.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유엔군이 인천으로 모인 경로를 보여주는 지도.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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