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대한민국보수] ‘가짜 좌파’가 죽어야 ‘진짜 진보’가 산다
2021.12.08 14:38
‘가짜 좌파’가 죽어야 ‘진짜 진보’가 산다
대선 앞두고 좌파 균열… 부패·타락에 수치 느끼는 ‘성찰적 좌파’ 나타나
反전체주의 합리적 진보가 좌파의 새 모델 된다면 내년은 숨통 틔는 시기일 것
[류근일, "‘가짜 좌파’가 죽어야 ‘진짜 진보’가 산다," 조선일보, 2021. 12. 6, A34쪽.]
2021 연말과 2022 연초의 갈등 주제는 물론 좌우 대결이다. 그러나 중요한 항목이 하나 더 있다. 오늘의 시국은 좌파 내부에 유의미한 논쟁의 계기를 촉발했다는 점이다. 좌파를 하려면 어떤 좌파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좌파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의 논점이 그것이다.
이 논점은 운동권 출신 변호사 권경애가 운을 떼었다. 그는 물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다하자고 언약하던 귀착점이 결국 이재명이냐?” 좌파를 해도 왜 굳이 이재명식이냐는 물음이다. 이 논쟁은 모든 혁명사에 등장한다. 구체제를 타도할 때까지는 모든 좌파가 일치한다. 그러나 그 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선 좌파들이 갈린다. 이 싸움에선 99% 엽기적인 마왕(魔王)들이 이긴다. ‘스탈린과의 대화’를 쓴 밀로반 질라스가 이 점을 체험적으로 설파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티토의 2인자였다. 그렇던 그는 티토의 독자 노선을 말살하려던 스탈린의 악마성을 발견했다. 그는 썼다. “스탈린은 성취를 위해선 무슨 짓이든 다 하는 괴물이다.”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란 뜻이다. 밀로반 질라스는 이 고발로 인해 자신이 함께 만든 체제의 정치범이 되었다. 그러곤 스탈린·레닌·마르크스 도식을 차례로 벗어던졌다.
한국 586 운동권의 문제점도 그런 것이다. 혁명을 위해선, 조직을 위해선, 성취를 위해선 무슨 짓이든 다 해도 괜찮다는 과대망상이 그들을 타락시켰다. 자기들은 어떤 부정부패, 일당 독재를 자행해도 그것은 위대한 혁명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무오류, 잘못된 게 없다는 것이다.
이 악마적 미신을 깨는 좌파 지성은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다. 좌파 집단 규율이 워낙 세기 때문이다. 이럼에도 조국 사태 후 좌파 권력의 타락에 수치를 느끼는 듯한 소수 좌파 개인들이 나타나긴 했다. 이런 수치심은 좌든 우든 다 갖춰야 할 문명 감각, 염치·절제·품격·양식(良識) 같은 것이다. 이걸 잃으면 좌도 우도 다 괴물이 될 수 있다.
민주화 운동은 본래 이 문명 감각에 기초해 왜 3·15 부정선거를 했느냐, 왜 마산 고교생 김주열 얼굴에 최루탄을 꽂았느냐, 왜 서울대생 박종철을 고문 치사하고 여학생을 성고문했느냐는 보편적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다 운동은 어느 틈에 보편성을 잃고 편향성과 편집증으로 흘렀다. 원인은 그들 안과 밖에 다 있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운동은 또 하나의 조악(粗惡)한 독선·독단·독재로 굳었다.
‘문재명 진영’도 그런 증상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낙연 참모였던 이상이 교수가 이재명을 ‘기본소득 포퓰리스트’ ‘대장동 당사자’라고 비판하자, 민주당은 그를 즉각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당원 게시판도 닫아버렸다. 떠들지 말라는 것이다. 스탈린이 부하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등 당내 이견(異見)을 숙청한 게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이재명은 국회 상임위원장들을 모아 놓고, 논란 있는 법안의 일방 통과를 압박하며 이렇게 말했다. “야당이 발목 잡으면 뚫고 가야, 패스트트랙에 한꺼번에 태워라, 여당이 방망이를 들고 있지 않은가?” 방망이로 패는 국회는 ‘좌파 히틀러’이지 자유 대한민국이 아니다. 이재명은 “공소시효 없는 역사 왜곡 단죄법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양심·표현·학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포고령이다. 중남미 수준의 법치 없는 민중민주주의 빅 브러더 시대가 코앞에 닥쳤다.
밀로반 질라스는 또 말한다. “스탈린은 로마 황제 칼리굴라의 범죄성,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모델 체사레 보르자가 지녔던 정예(精銳)의 자질, 그리고 제정 러시아 이반 뇌제(雷帝)의 포악성을 합친 존재다.” 한국 NL 운동권도 그 족보에 속한다. 스탈린·마오쩌둥·시진핑·백두 혈통, 그리고 남로당·경기동부연합·통진당·전대협·한총련 라인이다. 자유 민주를 없애려는 계열이다.
그렇다면 “그런 386이 죽어야 후대가 싹을 틔운다”고 울부짖는 ‘성찰적 좌파’가 정말 있다면, 그들은 지금 그 계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좌파를 해도 그런 식으론 하지 말자. 자유 사회의 합리적 진보가 되자”는 대안은 가능할까 불가능할까? 조지 오웰의 ‘반(反)전체주의 좌파’가 그들의 새 모델이 될 순 없을까? 그러면서 바람직한 시대 전환을 위해 그들 나름으로 그들 자리에서 순기능을 한다면, 2022년은 한결 숨통 틔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