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초음속 미사일
[유용원, "극초음속 미사일," 조선일보, 2022. 1. 7, A30쪽.]
“우리 신 무기로 미국이 이끄는 NATO의 미사일 방어가 무용지물이 됐다.” 2018년 3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정 연설에서 6종의 최신예 ‘수퍼 무기’들을 선보이며 큰 소리를 쳤다. 푸틴은 2시간에 걸친 연설 가운데 45분가량을 연단 뒤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에 동영상 등을 띄우며 그 무기들을 자랑하는 데 할애했다. 그 수퍼 무기 중 하나가 ‘아방가르드 ICBM’과 ‘킨잘 순항미사일’ 등 2종의 극초음속 무기였다.
▶푸틴이 공개한 동영상에서 아방가르드 미사일은 글라이더처럼 지그재그로 미국 미사일 방어망을 피해 미 본토를 타격했다. 영화 CG 같아서 푸틴이 허풍을 떤 것 아닌가 반신반의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방가르드와 킨잘은 2019년 이후 실전 배치에 들어선 것으로 밝혀졌다. 러시아는 마하 8(음속의 8배) 이상의 속도로 미 항모 등을 때릴 수 있는 ‘지르콘’ 극초음속 미사일 실전 배치까지 눈앞에 두고 있다.
▶극초음속 무기는 보통 최대 속도가 마하 5가 넘는 무기를 말한다. 1초에 1.7km 이상을 날아가는 데다 일부는 지그재그 회피 기동까지 해 기존 미사일 방어망으로는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두 종류가 있는데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은 스크램제트 등 특수한 엔진을 달고 크루즈 미사일처럼 날아간다. ‘극초음속 활공체’는 탄도미사일처럼 상승했다가 일정 고도에서 활공체가 떨어져 나와 글라이더처럼 초고속으로 비행한다.
▶미국은 군사력과 무기 기술면에서 압도적 1위 자리를 지켜왔지만 극초음속 무기 분야에선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에도 뒤지는 양상이다. 지난해 7월 중국이 시험한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해선 미군 수뇌부가 ‘스푸트니크 쇼크’를 거론할 정도다. 1957년 소련이 미국보다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먼저 발사했을 때 미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은 육·해·공군이 공동 또는 따로 4~5종의 극초음속 무기들을 개발 중인데 2023년 이후 단계적으로 배치될 전망이다.
▶우리도 순항미사일 방식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 중이지만 아직 시험 발사도 하지 못한 수준이다. 그런데 북한이 엊그제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해 700㎞ 떨어진 표적을 명중시켰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수십 배에 달하는 우리 국방비는 다 어디로 가고 있나. 극초음속 무기는 러시아·중국 등 공산권 국가들이 앞서가고 있다. 이들의 기술이 북한 극초음속 무기 개발에 직간접으로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