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어느 노병의 마지막 소원
2022.10.13 14:07
어느 노병의 마지막 소원
[김은중, "어느 노병의 마지막 소원," 조선일보, 2022. 10. 8, A26쪽.]
북한 인권 단체 ‘물망초’ 관계자들은 찬 바람 부는 계절이 오면 걱정 근심이 더 앞선다. 평소 돌보고 있는 고령의 탈북 국군 포로 어르신들이 가을이나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유엔이 추정한 6·25전쟁 국군 포로 숫자는 약 7만명. 이들 중 1994년 고(故) 조창호 중위를 시작으로 2010년까지 81명이 탈북해 고향 땅을 밟았다. 현재는 14명만이 생존해있다.
북한에서 수십 년을 최하층민으로 살다 사선(死線)을 넘은 이들의 증언을 통해 “강제 억류 중인 국군 포로는 공화국에 한 명도 없다”는 북한의 궤변이 타파됐고, 비인도적 만행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국가는 한때 성대한 전역식을 열어 명예로운 여생을 약속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보수 정부는 입으로만 호국과 보훈을 말했고, 진보 정부에선 ‘한반도 평화’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없는 사람 취급을 해 우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지난 8월 8일 별세한 고(故) 이규일씨는 6·25가 터지자 열여덟 살에 자원 입대했다. 두 달 만에 중공군에게 붙잡혀 북한의 협동 농장에서 평생 중노동을 하다 2008년 탈북했다. 서울 동북 지역에 터를 잡았지만 집 근처 국군 포로 쉼터가 사라진 뒤엔 마음 붙일 곳이 없었고, 한때 사기 사건에도 연루돼 수천만원을 잃었다. 5월에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참석이 생전에 누린 최고 호사(豪奢)였을 것이다.
반면 북송(北送)된 ‘비전향 장기수’들은 북한 땅에서 호사를 누렸다. “혁명적 지조를 끝까지 지켰다”고 칭송받았다. 이달 1일 조선중앙통신이 “90세 생일을 맞아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생일상을 받았다”고 보도한 ‘통일애국투사’ 김용수씨가 대표적이다. 2000년 북으로 돌아간 그는 재회한 배우자와 37년 만의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아 대학 교단에 섰다. 남쪽에 있을 때도 대접이 나쁘지 않았다. 좌파 단체와 일부 정치인이 이런 사람들을 ‘선생’이라 부르며 집안 살림부터 상사(喪事)까지 알뜰살뜰 챙겼기 때문이다.
3년 전 폐암으로 세상을 뜬 신모(89)씨는 남한에 정착한 손녀딸이 도서관 사서로 취직하자 ‘우리 손녀가 준 돈’이라며 후원금 10만원을 물망초에 기탁했다. 눈을 감기 한 달 전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는 구토로 사흘 내내 숙소에 머무르면서도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혈족을 고사포로 잔인하게 쏴 죽이는 북에서도 하는 대우를 그동안 우리는 하지 못했다. 평생 광산에서 일하며 유독 가스를 마신 탓에 만성 기관지 질환을 앓고 있는 유영복(92)씨의 마지막 소원은 “북한에서 힘든 노동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은 수많은 국군 포로 실상을 국민이 알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북한에 문제를 제기하고, 전쟁기념관에도 기록을 전시하는 게 이 영웅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