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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할매와 신영복

신구 시대의 성격을 선명하게 대비한다
세련된 위선보다 투박한 진실을,
부수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을 나는 응원한다

[선우정, "칠곡 할매와 신영복," 조선일보, 2023. 1. 18, A30쪽.]

새벽 146번 버스를 타는 청소원들의 숙원 하나가 해결됐다. 승객의 출근길 편의를 위해 첫차 출발을 15분 앞당긴 일이다. 한덕수 총리가 새해 새벽 버스에 올라 해결을 약속한 지 보름 만에 실현됐다. 서울시, 버스회사, 운전기사의 협조가 있었다. 새벽 노동자들에겐 선물이었다. 그런데 노동자 정당이라는 정의당이 “정치 쇼 그만하라”라고 했다. “더 빨리 운행되는 버스를 타고 더 긴 노동을 하는 것은 기업의 바람”이라는 것이다. 호의를 착취로 읽었다. 아직 세상을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었다.

새벽 버스는 정의당의 상징이다. 2012년 노회찬 의원의 ‘6411번 새벽 버스 투명 노동자’ 연설은 지금 들어도 뭉클하다. 이후 정의당은 ‘6411 정신’을 내세웠다. 그런데 10년 동안 노동자의 15분 숙원을 해결하지 못했다. 힘이 없어서 그런가 했는데 아니었다. 그들에게 15분 호의는 노동을 더 뽑아내려는 자본주의의 당근이다. 세계관이 이러니 정의당엔 재벌 해체, 노동 해방처럼 뜬구름 잡는 구호만 넘친다. 그러면서 실질적으로 돕는 사람을 비난한다.

외교부가 징용 판결 문제를 풀기 위해 해법 일부를 발표하자 민주당이 성토 대회를 열었다. “저자세 굴종 외교.” “자해적, 반민족적, 반역사적 외교.” “일본을 위해 간도, 쓸개도 다 내줄 수 있다는 자세.” “국익과 동떨어진 무면허 폭주.” 모두 이재명 대표에게서 나온 말이다. 해법은 일본과 대결해서 이기자는 게 전부였다.

한일 과거사에 대한 논의 과정을 보면 한국 정치의 본질 일부를 알 수 있다. 보수·진보는 철 지난 구분에 불과하다. 미래를 만드는 자와 부수는 자의 대결이 한국 정치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한일 국교 정상화 때 박정희 정부는 유무상 5억 달러를 일본으로부터 받아냈다. 고도성장의 출발점이었다. 노태우 정부는 별도의 일본 자금을 받아 한인 원폭 피해자 지원과 사할린 잔류 한인의 영구 귀국 사업을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는 일본의 위안부 사죄를 담은 고노담화를 이끌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이들 문제에 침묵했다. 차라리 이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해결되지 않았다”며 이들 문제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런데 말만 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다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소송을 당했다.

이 짐을 이명박 정부가 떠안았다. 일본과 해법을 모색했으나 실패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룬 ‘한일 위안부 합의’는 노 정부가 물려준 난제를 해결한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갖은 악담을 퍼붓고 합의를 깼다. 징용 판결 문제는 죽창가를 부르면서 국내 정치에 이용했을 뿐이다. 이 짐을 윤석열 정부가 물려받아 ‘대리 보상’이라는 해법 일부를 냈다. 이번에도 똑같은 반응이다. 다시 망치 들고 달려들었다. 이 패턴이 끝없이 반복된다.

노동·교육·연금 개혁은 젊은 세대를 위한 것이다. 한국이 존속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문 정권은 손대지 않았다. 민노총, 전교조, 사교육 시장 등 자신의 지지 기반이 개혁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표가 떨어진다고 연금 개혁을 안 한 유일한 정권도 그들이다. 윤 정부가 짐을 떠맡으려고 하자 다시 이재명 대표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국정”이라고 했다.

문 정권 때 ‘정부 서체’처럼 쓰인 글씨가 신영복체다. 신영복의 유명한 문장이 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15분 당긴 첫차, 징용 해법을 그가 말한 ‘우산’에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선 안 된다고 한다. 함께 비를 맞아야 진정한 도움이라고 한다. 말뿐이다. 과문한 탓인지 ‘6411 정신’을 말하는 정의당 의원들이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한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민주당은 대리 보상을 바라는 다수 징용 피해자를 무시한다. 전장연에게 당하는 수십만 지하철 출근 노동자의 손실과 불편, 분노를 외면한다. 무슨 비를 함께 맞았다는 것인가.

요즘 신영복체처럼 유명해진 서체가 칠곡 할매체다. 경북 칠곡군 성인문해교실에서 뒤늦게 한글을 깨친 어르신들 글씨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들이 낸 시집 ‘시가 뭐고?’는 늦공부의 고충을 말한다. ‘80 너머가 공부할라카이/ 보고 도라서이 이자부고/ 눈 뜨만 이자분다.(공부·곽두조)’ 문해교실은 할매들에게 ‘우산’이었을 것이다. 신영복 문장에 나오는 ‘비’에 관한 시도 있다. ‘비가 쏟아져 오면 좋겠다/ 풍년이 와야지대겠다/ 졸졸 와야지/ 고구마, 고추, 콩, 도라지/ 그래야 생산이 나지.(비가 와야대겠다·김말순)’ 세계관이 다르면 비의 의미도 달라진다.

상징으로서 칠곡 할매와 신영복은 신구 시대의 성격을 선명하게 대비한다. 세련된 위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투박한 진실에 박수를 보낸다. 함께 비를 맞겠다는 사람보다 우산을 들어주는 사람, 부수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 비난하는 사람보다 노력하는 사람을 응원한다. 그런 이들이 미래 한국의 주역이 됐으면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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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새로운 야당의 출현을 주시하며 70
94 탄핵의 江이 사라졌다 95
93 성난 얼굴로 투표하라 78
92 '事實'만을 붙들고 독자 여러분 곁을 지키겠습니다 68
91 100년 前 그 춥고 바람 불던 날처럼, 작아도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겠습니다 82
90 세상이 광우병 괴담에 휩쓸릴 때… '팩트의 방파제'를 쌓았다 110
89 보수가 집권하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93
88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 "자유통일당의 이념과 정책을 말한다" 78
87 참 나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박정희 두번 죽이기 79
86 탄핵 이후 처음 보는 자유보수 진영의 희생과 헌신 97
85 힘이 없으면 지혜라도 있어야 한다 114
84 자유냐 전체주의냐, 그 사이에 중간은 없다 76
83 4·15는 국회의원 선거가 아니다 287
82 보수 통합의 열쇠는 국민에게 있다 105
81 죽느냐, 사느냐? 주사파 집권 대한민국 198
80 [자유대한민국 수호] 자유 우파가 무엇이고, 좌파가 무엇인가? 1426
79 야권이 넘어야 할 山 '박근혜' 141
78 좌파 10단의 手에 우파 1단이 맞서려면 179
77 조갑제, "김문수의 이 글은 대단하다. 진땀이 난다!" 167
76 '베트남판 흥남 부두'인 '십자성 작전'을 아십니까 205
75 굿 모닝~ 변희재! 159
74 변희재, 안정권과 김용호발 보수혁명 443
73 58년 전 오늘이 없었어도 지금의 우리가 있을까 171
72 홍준표의 박근혜, 황교안 논평 옳지 않다 132
71 김문수 대담 (2019년 4월 8일) 162
70 기승전 황교안 173
69 황교안의 정확하고 용감한 연설 172
68 나경원 연설의 이 '결정적 장면'이 좌익을 떨게 했다! 139
67 [자유대한민국 수호]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자들은 단합해야 1646
66 이런 인물을 한국당 대표로 뽑자! 197
65 한국당 전당대회, 보수대통합의 용광로가 되어야 177
64 '문재인 對 反문' 전선 246
63 대통령이 북한 대변인이면 한국 대변인은 누군가 310
62 자기 발등 찍은 文 정부, 판문점에서 절룩거리다 360
61 진보의 탈 쓴 위선과 싸워야 327
60 죽은 자유한국당 左클릭 하면 살까? 279
59 선거 압승하니 국민이 바보로 보이나 242
58 MBC의 문제 250
57 광장정치와 소비에트 전체주의 290
56 촛불의 반성 263
55 文정권 1년 214
54 '독재자 김정은' 집단 망각증 200
53 지식인으로 나는 죽어 마땅하다 230
52 혁명으로 가고 있다 229
51 서울-워싱턴-평양, 3色 엇박자 265
50 북이 천지개벽했거나 사기극을 반복하거나 273
49 대한민국의 '다키스트 아워' 342
48 현송월과 국립극장 277
47 교회는 북한에서 성도들이 당한 역사 가르쳐야! 390
46 강력한 압박을 통한 대화가 필요하다 295
45 남북대화, 환영하되 감격하지 말자 316
44 중국이 야비하고 나쁘다 310
43 돌아온 중국이 그렇게 반갑나 308
42 박정희가 지금 대통령이라면 347
41 청와대 다수도 '문정인·노영민 생각'과 같나 308
40 대통령 부부의 계속되는 윤이상 찬양 275
39 남과 북 누가 더 전략적인가 285
38 오래된 미래 322
37 도발에 대한 우리의 응전은 지금부터다 332
36 뺄셈의 건국, 덧셈의 건국 263
35 文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역사 265
34 망하는 길로 가니 망국(亡國)이 온다 269
33 네티즌도 화났다… 공연 파행시킨 反美 행태에 비판 쏟아져 242
32 7094명 戰死, 한국 지킨 美2사단에 고마움 표하는 공연이 뭐가 잘못됐나 337
31 성주와 의정부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장면들 291
30 북(北) 김정은의 선의(善意) 347
29 공산주의 신봉한 영국의 엘리트들처럼 412
28 야당의 정체성? 무슨 정체성? 340
27 안팎의 전쟁 492
26 하단 광고, 우리나라의 위기 988
25 좌파들의 사대 원수 927
24 ‘정신적 귀족’ 보수주의자의 길 그 근간은 기독교적 세계관 1375
23 좌파적인 보수정당 정치인들 1050
22 황장엽 선생이 본 '역사의 진실' 1086
21 독도가 한국 영토인 진짜 이유 1073
20 용서 잘하는 한국 정부 991
19 황장엽 조문까지 北 눈치 살피는 민주당 1166
18 유럽의회, '中, 한국 조치 지지하라 1294
17 얼마나 더 대한민국 망신시킬 텐가 1122
16 선거 때면 北 도발?… 착각 또는 거짓말 1252
15 목숨을 이념의 수단으로 삼는 풍조가 걱정된다 1164
14 '시국선언'은 정치편향 교수들의 집단행동 1233
13 너무 가벼운 시국선언 [1] 1082
12 "TV논평, 좌편향 인용 심각" 1134
11 '10·4남북정상선언' 이행될 수 없는 이유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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