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대한민국 수호] 국방·외교·경제를 다수결로 결정하는 게 옳은가
2023.06.22 11:55
국방·외교·경제를 다수결로 결정하는 게 옳은가
우리는 민주주의를 오해하고 있다, 선관위와 방탄 국회를 보라… 중우정치, 군중독재 유혹 점점 커져
민주주의 제대로 작동하려면 법의 지배, 공공선 지켜야
공화국 정신 파괴하는 ‘민주팔이’들에게 법의 철퇴를
[송재윤, "국방·외교·경제를 다수결로 결정하는 게 옳은가," 조선일보, 2023. 6. 14, A34쪽.]
공정 선거를 책임지는 중앙선관위가 북한 해킹을 당하고도 보안 점검을 거부하다가 불법 채용 의혹에 또 휩싸였다. 불체포 특권 포기를 공약했던 거대 야당은 자당 의원들의 구속엔 무조건 반대하는 ‘방탄 국회’를 연출했다. 몇 년 전 ‘국정 농단’ ‘경제 공동체’ 등 기묘한 법률 용어를 엮어 대통령을 탄핵했던 특검은 스스로 특대형 비리에 휘말려 있다.
이 정도면 법치의 붕괴다. 일부의 비위라면 법으로 처리하면 되겠지만, 선관위, 정당, 특검 등의 부정은 법만으론 치료될 수 없는 국가적 중병이다. 헌정사적 위기의 전조일 수 있다. 그 위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진단이 다르겠지만, 나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오늘날 한국 정치의 병인이라 생각해 왔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선 어떤 세력이든 다수 여론만 장악하면 헌법을 무시하고 무슨 조치든 자의적으로 취할 수 있다고 여기는 중우정치의 미망과 군중 독재의 유혹이 판을 쳐왔다. 사흘돌이로 쏟아지는 여론조사에서 잠시라도 여론이 한쪽으로 쏠릴 때면, 정치꾼들은 재빨리 ‘다수’를 선점한 후 ‘국민’을 사칭하는 여론몰이를 펼친다. 정권만 잡으면 모든 죄과가 씻겼기에 선거전에선 언제나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가 범람한다. 대권을 잡고 나선 대통령은 권력이 제 것인 것처럼 정부 요직에 코드가 맞는 제 사람들만 박아 넣는 파당적 행태를 과시한다.
상식적으로 국방, 외교, 치안, 교육, 경제, 전략 자산, 공공 사업 등 국가의 중대사를 가변적 여론에 맡기고 다수결로 결정하는 국가는 실패를 면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도 다수 의견만 좇는 ‘완전 민주정(pure democracy)’은 최악의 무정부 상태를 초래했다. 그 점을 잘 알기에 자유민주주의를 설계한 근대 정치사상가들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다수 독재, 군중 지배, 폭민 통치의 위험을 막기 위한 헌법적 제약을 명시했다. 국민주권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선 엄격한 감시와 감독, 관리와 통제가 필요함을 인류 정치사의 경험을 통해서 배웠던 까닭이었다.
실제로 오늘날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는 다수 여론만을 따르는 완전 민주정이 아니라 엄격한 법의 지배로 유지되는 입헌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와 보편 인권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시민의 정치적 참여를 독려하고 공공선과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민주공화제를 지향한다.
놀랍게도 한국 헌정사를 돌아보면, 너도나도 자나 깨나 민주주의만 강조할 뿐, 공화주의에 관해선 공적 논의조차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래 건설될 나라의 정체를 ‘민주공화제’로 정했다. 그 법통을 계승한 1948년 제정의회는 ‘민주공화국’을 천명했고, 그 결과 오늘날 헌법의 제1장 총강 제1조 1항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명기돼 있다. 무늬만 공화제일 뿐, 한국 정치가들은 공화주의를 전혀 모르거나 경시하거나 오해하고 있다. 한국 정치는 공적 가치와 공공 이익을 저버린 채 여론의 추이를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는 완전 민주정의 위험을 보인다. 한국 헌정사는 이미 인기가 급락한 대통령은 형식적인 절차만 거쳐 졸속하게 탄핵당할 수 있다는 불행한 선례까지 남겼다.
공화주의의 원칙에 따르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는 국가의 근본 가치와 공익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무엇보다 법의 지배를 구현해야 한다. 공화국이 존속하려면, 국가권력의 분립, 국가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 시민사회의 감시와 비판이 필수적이다. 국가적 중대사의 결정은 권력 집단의 독단이 아니라 전문가와 지성인 등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공적 담론을 거쳐야 한다.
그 점에서 공적 임무를 저버리는 선관위원들, 분파주의에 찌든 입법자들, 헌법을 농단하는 법률가들, 국가적 근간 산업을 허무는 행정가들은 공화국의 공적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여론을 들먹이며 ‘민주’를 팔며 도망 다니지만, 공동체의 가치를 허물고 공익을 파괴한 세력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망가뜨린 주역들이다. 인류의 정치사가 증명하듯, 민주주의는 공화국을 떠나선 단 하루도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기본 가치를 허무는 위헌 세력엔 한 치의 관용도 없이 엄중한 법의 철퇴를 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민주공화국에서 민주팔이로 연명하며 공화국을 망치는 정상배와 모리배를 영원히 추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