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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미친 바보일까

국내 정치용으로 창조된 괴담은
국경을 넘지 못한다...
음모론의 난장판에서 눈을 돌려 밖을 보면
무엇이 진실인지 분명해진다는 뜻이다

[박정훈, "일본은 미친 바보일까," 조선일보, 2023. 7. 8, A26쪽.]

‘괴담은 국경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것이 2008년 광우병 사태다. 당시 공포를 선동하던 세력에겐 논리 허점이 수두룩했지만 그중에서도 치명적인 자가당착이 있었다. 미국 소고기가 위험하다는데 정작 미국 사람들은 꿈쩍도 않더라는 것이었다. ‘뇌송송 구멍탁’이 될 수 있다는데 미국인은 왜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 미국인은 자기네 고기니까 그렇다 치고 수백만 재미 교포와 한국인 유학생·주재원들은 왜 가만 있나. 미국에 다녀오는 그 많은 여행객들은 햄버거·스테이크로 끼니를 때우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고 있단 말인가.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국정 감사차 워싱턴 한국 대사관에 가서 갈비·육개장으로 만찬한 사실이 알려졌다. 물론 미국 소고기였지만 이들이 식사를 거부했다는 말은 없었다.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겠다”던 여배우는 LA에서 촬영 중 햄버거를 즐기는 사진이 공개됐다. 같은 쇠고기가 미국에선 괜찮고 한국에 오면 위험해지는가. 이 기초적인 질문에 괴담 세력은 침묵하거나 또 다른 거짓 논리로 비껴갔다. 국내 정치 목적으로 창조된 괴담이니 국경을 넘는 순간 먹히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때와 똑같은 정당, 똑같은 단체들이 똑같은 수법으로 후쿠시마 문제에 달려 들었다. “핵 폐수” “독극물” “방사능 테러”라며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지만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대답하지 못하는 딜레마가 있다. 정작 일본은 조용하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문제의 핵심은 오염수가 다른 곳 아닌 일본 영해에 방류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후쿠시마 앞 1㎞ 지점이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오염수가 위험하다면 가장 직접적 피해를 입는 것이 일본이다. 이 물이 한반도 해역에 도착하려면 해류를 타고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4~5년이 걸린다. 반면 일본 주변 바다엔 바로 섞인다. 수도 도쿄는 방류 지점에서 불과 200여㎞ 떨어져 있다. 홋카이도를 비롯한 태평양 쪽 연근해는 다 영향권에 들어간다고 봐야 된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 오염수 방류는 이슈조차 아니다. 언론은 거의 보도하지 않고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일본 포털에서 ‘오염수’를 검색하면 한국발 뉴스를 번역·인용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중의원 의석 1석의 사민당을 빼면 방류를 막겠다는 정당도 없다. 수산물 타격을 우려하는 어민 단체가 ‘방류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이들 역시 행동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간간이 열리는 반대 시위는 참가자가 100여 명에 불과하다. 한국에선 ‘독극물’이 퍼진다고 난리인데 당사자인 일본은 동요도 없다.

일본 국민은 안전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 바보들일까. 관(官)의 방침을 잘 따르는 대세 순응적 국민성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순종적이라도 자기 목숨까지 희생할 국민은 세상에 없다. 자손 대대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인도 당연히 반발하고 저항한다. 그들이 오염수 방류를 받아들이는 것은 바보여서가 아닐 것이다. 과학적으로 문제없다는 공적(公的)인 설명을 믿기 때문이다. 정부를 신뢰하고 과학을 신봉한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는 자기 영해에 ‘독극물’을 뿌리는 미친 집단일까. 일본 지배층이 판단 착오를 범한 흑역사는 종종 있었지만 그들이 고의로 나라 망칠 작정을 할 리는 없다. 한국 괴담 세력의 음모론처럼 고작 몇천 억원을 아끼기 위해 위험한 해양 방류를 결정했다는 건가. 주변 나라를 괴롭히기 위해 자기 바다부터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는 자해 테러를 저지른단 말인가. 일본 과학자들은 다 겁쟁이들일까. 세계 5대 노벨상 수상국인 일본 과학계가 일제히 양심을 버리고 진실을 은폐한다는 건가.

오염수 방류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무언가 꺼림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능한 처리 방법 중 해상 방류가 가장 안전하다는 게 과학계의 공통된 결론이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콘크리트 고체화’ 방식은 기술적으로 불안정한 데다 방사능의 대기 전파를 막을 수 없어 더 위험하다고 한다. 괴담 진영은 일본이 돈 몇 푼 아끼려 자국민 생명을 희생시키는 미개한 나라라고 여기는 듯 하다. 일본을 허접한 후진국 취급하며 음모의 나래를 펼치는 무모함이 놀라울 뿐이다.

그들 논리에 따르면 미국 역시 이상한 나라다. 후쿠시마 방류수는 해류를 타고 동북 방향으로 이동해 미국 서해안에 먼저 도달하게 된다. 2011년 대지진 때도 후쿠시마에서 떠내려간 부표·어선·냉장고 등의 잔해가 캘리포니아·오리건·알래스카 해변에서 발견됐다. 그런데도 미국은 오염수 방류를 찬성한다고 한다. 미국도 후진국인가. 이 질문에 민주당과 괴담 진영은 대답하지 못한다. 어차피 정치 공세가 목적이니 다른 나라가 어떡하든 관심도 없을 것이다.

괴담은 결코 국경을 넘지 못한다. 허구와 거짓의 난장판에서 눈을 돌려 밖을 보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아닌지 분명해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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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차별금지법] 흑인시위를 통해 본 차별금지법의 이면 156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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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50년을 숨겨온 소련의 비밀… 1940년 폴란드인 2만명 대학살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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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한명숙은 양심의 법정에서도 유죄다 72
30 21세기 아마겟돈 '이들리브', 그곳에 또 다른 극단주의가 싹트고 있다 72
29 반미파의 '미국 선호' 62
28 '중국 올인' 현대차는 올스톱, 다변화 도요타는 정상 가동 50
27 지나친 중국 시장 의존, '중국 리스크' 갈수록 커질 것 39
26 인류가 세번 당했다, 최초 전파동물은 모두 박쥐 79
25 매초 히로시마 원폭 18발씩 터뜨리며 산다 87
24 李 前대통령 다스 실질적 소유자 맞는가 195
23 '武人'답지 않은 전직 국방장관과 장군 234
22 美 실리콘밸리 학교에선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248
21 또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252
20 권력의 단물은 다 받아먹는 참여연대 202
19 '가짜 진보'의 왜곡된 性 의식 243
18 선거 4개월 앞, 여전히 쪼개진 野 246
17 '댓글'의 轉禍爲福 842
16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은 정우상류를 멀리하라 884
15 남아프리카에서 흑인 공산주의자들이 백인 농부들을 살인하고 있다 1033
14 세속 정치에 대한 신자들의 자세 1058
13 선거 휘젓고 거짓 드러난 '나경원 1억 피부숍 출입' 1027
12 분노의 대상은 월가가 아니라 워싱턴 정부 1186
11 ‘軍부모’가 부대 앞에 드러눕는 날 1091
10 미디어법 개정, 모두가 패자(敗者)였다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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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의회와 정부가 ‘시민사회’의 중심이다 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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