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나라 살린 다부동 승전, 73년 만에 세워진 백선엽 장군 동상

[사설: "나라 살린 다부동 승전, 73년 만에 세워진 백선엽 장군 동상," 조선일보, 2023. 7. 6, A35쪽.]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의 동상이 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졌다. 1950년 다부동 전투가 벌어진 지 73년 만에 승리의 주역을 현장에 모신 것이다. 국방부 장관과 한미연합사령관, 한미 양국 주요 인사 등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 정권은 그를 친일로 매도하고 홀대했다.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늦었지만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지켜낸 영웅을 제대로 평가하고 추모하게 된 것이다.

경북 다부동은 6·25 전쟁의 향방을 바꾼 최대 격전지였다. 백 장군은 제1사단장으로 8000여 명의 국군을 이끌고 북한군 3개 사단 2만여 명의 총공세를 막아냈다. 만일 다부동에서 무너졌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부하들이 후퇴하려 하자 백 장군은 “우리가 밀리면 나라도 끝장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물러서면 너희가 나를 쏴라”고 했다. 그가 권총을 뽑고 앞장서자 부하들이 적진으로 돌격해 빼앗긴 고지를 탈환했다. 유학산 고지는 아홉 번, 328고지는 무려 열다섯 번 주인이 바뀌었다. 하지만 백 장군의 1사단은 한 달 넘는 공방전에서 북한군을 물리치고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냈다. 6·25에서 한국군이 거둔 가장 중요한 승리였고 전세 역전의 결정적 발판이 됐다.

백 장군은 이후 북진해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했고, 1·4 후퇴 뒤에도 서울을 최선봉에서 탈환했다. 휴전회담 대표를 지내고 한국군 최초로 대장에 올라 두 차례 육군참모총장을 맡으며 군을 재건했다. 미군은 백 장군을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한국군 장교’ ‘최상의 야전 사령관’이라 불렀다. 주한미군사령관들은 취임하면 백 장군을 찾아 전입신고를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백 장군을 ‘독립군 토벌 친일파’라고 매도했다.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는 이유였지만 당시엔 만주에 독립군이 없었다는 게 정설이다. 문 전 대통령은 백 장군이 아니라 남침 공로로 북에서 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 민주당은 백 장군의 훈장을 박탈하자고 했고 현충원 안장도 막으려 했다.

그가 100세로 영면하자 미 백악관과 국무부, 전 주한미군사령관들은 모두 애도 메시지를 냈고 ‘한국의 조지 워싱턴’이라고 추앙했다. 시민분향소엔 수만명의 시민이 장대비를 맞으며 조문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조문은커녕 애도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6·25 참전 12만명의 전우가 묻힌 서울 현충원 아닌 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보훈처는 장례 다음 날 그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고 낙인찍었다.

백 장군의 명예 회복은 문 정권이 끝나고야 이뤄졌다. 이번 동상 제막식에선 다부동에서 포탄·식량 등을 실어 나른 민간인 ‘지게 부대원’들도 함께 조명받았다. 오는 27일엔 한미 동맹을 맺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동상도 다부동에 세워진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예우하지 않는 나라는 존립할 수 없다. 백 장군 같은 호국 영웅을 홀대하고 매도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번호 제목 조회 수
52 [6.25] 6·25, 기억의 고지 사수해야 12
» [백선엽 장군] 사설: 나라 살린 다부동 승전, 73년 만에 세워진 백선엽 장군 동상 27
50 [6.25] 어느 노병의 마지막 소원 32
49 [6.25전쟁] 6·25전쟁이 남긴 ‘자유의 의무’ 27
48 [6.25] 사후 2년 만에 제대로 모신 ‘6·25 영웅’ 백선엽 장군 30
47 [6.25전쟁, 인천상륙작전] '0.02%' 확률 뚫고 성공…전쟁 흐름 바꾼 세기의 전투였죠 258
46 [6.25전쟁, 중공] 김은중, "중국 대사를 당장 초치하라" 87
45 [6.25전쟁, 중공] “6·25 남침은 역사적 사실… 시진핑도 바꿀 수 없는 것” 65
44 [6.25전쟁, 중공] 노석조, "'6·25는 마오쩌둥 지원 받은 남침' 美국무부, 시진핑 발언 공개 반박" 57
43 [6.25전쟁, 중공] 中 “시진핑 연설, 美에 엄중한 경고… 항미원조 영원히 계승” 54
42 6·25 북한인민군은 사실상 중공팔로군이었다 101
41 스탈린 감독, 김일성 주연, 마오쩌둥이 조연한 남침(南侵) 전쟁 92
40 다부동 전투 승리·야전군 창설 韓美동맹까지 일군 위대한 장수 83
39 "김일성이라는 작자는 정치와 전쟁 구별이 안 되는가" 60
38 오늘의 대한민국은 70년 전 비극을 기억하고 있는가 86
37 대통령 비판 대자보에 '건조물 침입' 유죄, 민주국가 아니다 69
36 6.25는 내전(內戰)? 71
35 인민군 치하 서울의 석 달, 그 냉엄한 기록 [1] 237
34 '백선엽 죽이기' 161
33 6.25를 '위대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 했던 시진핑 490
32 대통령들은 6.25를 이렇게 말했다 764
31 북한군 전차 242대 vs 국군 0대 1008
30 현대史 전문가 강규형 교수가 들려주는 6․25의 진실 747
29 우리 사회에 만연한 親北․反대한민국 바이러스 863
28 스탈린과 6.25 864
27 흐루시초프의 회고록 1256
26 6․25 전쟁의 '불편한 진실 966
25 6.25는 '자유수호전쟁'이었다 931
24 ‘6․25, 美 도발 때문에 北이 침입’이라 가르치는 선생들 814
23 스탈린․김일성이 한국전쟁 일으켜 1241
22 ‘김일성에 전쟁 책임’--60代 이상 70%, 20代는 42% 1131
21 내 어릴 적 공산 치하 석 달 1376
20 6․25에 관한 '記憶의 전쟁' 1198
19 6.25전쟁의 역사 바로 전해야 1060
18 아는 것과 다른 맥아더의 한국전쟁 1386
17 초등생 1/3이 '6·25는 한국도발'로 알게 한 역사교육 1008
16 6.25 전쟁사진 화형식 1008
15 6.25를 생각한다 1004
14 청소년 51.3%, 6.25가 북한에 의한 남침인 것 몰라 1107
13 김형좌 목사의 6·25 증언 993
12 6·25당시 좌익, 양민 앞세워 관공서 습격 995
11 김일성 6·25작전계획, 소련에서 작성· 보천보전투 조작 사실 재확인 1164
10 美軍 6·25전쟁 때 人命손실 총 6만여 명 1125
9 6.25가 내전(內戰)이라니 1106
8 빨치산, 6.25사변 때 13만 주민 학살 1252
7 강정구교수의 ‘한국전’ 왜곡 941
6 주한 영국 대사의 공개서한 934
5 맥아더 양민학살 주장, 北선전戰 따라가는 꼴 925
4 의리도 모르는 국민이 되지 말자 962
3 ‘맥아더가 양민학살 명령’ 노래 근거있나? 1008
2 운동권, 왜 갑자기 ‘맥아더 동상’을? 884
1 미국의 6·25 참전의 의미 959

주소 : 04072 서울특별시 마포구 독막로 26 (합정동)ㅣ전화 : 02-334-8291 ㅣ팩스 : 02-337-4869ㅣ이메일 : oldfaith@hjdc.net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