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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 62만명, 이제야 걷히는 이념 전쟁의 장막 뒤

한강 다리 끊고 도망간 ‘런(run)승만’이라고?
전시 외교 올인하고 망명정부 거부하면서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고 머리맡에 권총 놔둔 ‘건(gun)승만’이었다


[강경희, "‘건국전쟁’ 62만명, 이제야 걷히는 이념 전쟁의 장막 뒤," 조선일보, 2024. 2. 19, A34쪽. 논설위원]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개봉 17일 만에 관객 60만명도 넘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황당하게 와닿았던 장면은 한강다리 끊고 도망간 ‘런(run)승만’으로 조롱받고 폄하되고 있다는 대목이었다. 김덕영 감독이 3여 년간 제작하면서 101분 필름에 다 보여주지 못한 미반영 분량이 훨씬 많을 것이다.

김일성과 스탈린의 6·25전쟁 계획은 한국을 침략하자마자 서울을 점령하고 한강 이남을 차단해 국군을 격멸한 다음, 남한에 있던 20만명 이상의 ‘인민 봉기’로 정부를 전복하고 한 달 내 전쟁 종결을 목표로 했다. ‘북한 남침 이후 3일간 이승만 대통령의 행적’을 군사학자 남정옥(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씨가 논문으로, 소책자로 기술한 게 있다. 정부 수립 2년밖에 안 된 신생 국가가 조직도 미비하고 전차와 전투기도 한 대 없는 심각한 전력(戰力) 열세 속에 침략을 당했는데, 국제 정세에 혜안 있던 75세의 노(老)대통령이 어떤 전시(戰時) 외교로 미국과 유엔의 지원과 참전을 신속하게 끌어내 대한민국을 수호했는지를 볼 수가 있다. 간추려 소개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군의 대대적 남침이 시작됐다.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것은 오전 10시경.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미국 본토에서 군함을 구입해 하와이에 머물던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의 즉각 귀국을 지시하고(25일 오전 11시), 무초 미국 대사를 회동하며(오전 11시 35분), 장면 주미 대사에게 미국 원조를 빨리 받아내도록 지시하고(오후 1시) 비상 국무회의를 주재했다(오후 2시). 미국의 지원이 공식화되지 않자 밤늦게 무초 대사를 다시 경무대로 불렀다(밤 10시). 밤을 꼬박 새우면서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에게 전화했지만 전속부관이 깨울 수 없다고 하자 “한국 있는 미국 시민도 죽어가는데 장군 잘 재우라”고 호통치고는(26일 새벽 3시), 무초 대사에게 전화해 대포와 전투기 지원을 요청했다(새벽 4시 30분). 이튿날 오전 치안국을 방문해 전황을 확인하고 경무대로 돌아가는 길에 서울 상공에는 북한의 야크 전투기가 맴돌았다(26일 오전). 전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의정부가 함락되고 북한군의 서울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섰다. 대통령은 서울에 남겠다고 했지만 “국가 원수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더 큰 혼란”이라는 설득에 피란을 결정한다. 서울역을 출발(27일 새벽 3시 30분)하기 직전까지 주미 대사에게 전화해 트루먼 대통령 면담을 지시하고 맥아더 장군과의 통화를 시도했다.

27일 낮 대구에 도착했는데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내 평생 처음 판단을 잘못 했다”며 열차를 돌려 도로 올라갔다. 대전역에 도착한 시각이 27일 오후 4시 30분. 수원까지 가서 자동차로 서울에 들어갈 작정이었다. 미 대사관 참사관이 유엔 결의 소식과 트루먼의 긴급 무기 원조 명령을 알려오면서 대전에 머물게 된다. 29일 맥아더 장군의 방한 소식에 미군 조종사가 모는 경비행기를 타고 수원으로 가 소령 때부터 알던 맥아더와 극적인 상봉을 했다. 대전으로 돌아오는데 대통령이 탄 비행기는 두 번이나 야크기의 추적을 받았다. 맥아더의 한강 방어선 시찰 이후 미국은 지상군 참전을 전격 결정했다. 6·25전쟁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대전으로 내려간 뒤부터 전쟁 내내 이승만 대통령은 권총 한 자루를 침실 머리 맡에 놓고 자는 습관이 생겼다.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에게는 “최후의 순간 공산당 서너 놈을 쏜 뒤 우리 둘을 하나님 곁으로 데려다 줄 티켓”이라고 말했다(프란체스카 회고록).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린 7월 29일 밤 프란체스카 여사를 불러 “적이 대구 방어선을 뚫고 가까이 오면 제일 먼저 당신을 쏘고 내가 싸움터로 나가야 한다”면서 도쿄의 맥아더 사령부로 떠나라고 했다. 여사는 “절대로 대통령의 짐이 되지 않겠다”며 함께 있겠다고 했고, 대통령은 “우리 아이(병사)들과 여기서 최후를 마치자”고 했다.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갈 때 미국은 해외나 제주도 망명 정부를 계획했지만 거부했다. 더우나 추우나, 적의 박격포가 떨어지는 상황에도 매주 전선을 방문하는 고령의 이승만을 보면서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정치가·애국자’라고 평가했다.

6·25전쟁 내내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北進) 통일의 의지를 피력했다. 맥아더 후임의 매튜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은 확전론에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이승만 때문에) 내 머리털이 많이 빠지게 됐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북이 먼저 무력으로 38선을 파괴했으니 존속시킬 이유도 없다면서 국익과 통일에 단호했는데 한국 내 일부 세력은 한강다리 끊고 남쪽으로 도주한 ‘비겁한 런승만’ 이미지로 뒤집어 폄하해왔다.

생각의 자유라는 외피를 쓰고 갖가지 궤변과 왜곡이 독버섯처럼 번져 젊은 세대의 역사관까지 흐려놓는 이념 전쟁이 우리 사회에 소리 없이 확산됐는데 너무 오래 눈 감고 입 닫아왔다. 미화할 필요도 없다. 1875년에 태어나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엄혹한 시기를 살아온 초대 대통령의 90평생 궤적을 직시하는 것 자체가 역사의 교훈이다. 대중적 각성의 101분을 제공해준 김덕영 감독의 용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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