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박정희는 ‘진보 우파’ 혁명가… 기득권과 싸우며 건국·부국·호국 이뤄
2024.02.29 11:23
이승만과 박정희는 ‘진보 우파’ 혁명가… 기득권과 싸우며 건국·부국·호국 이뤄
이승만연구원·박정희재단 주최 세미나서 김명섭 교수가 발표
“다른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과오도 있지만,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의 긍정적 연속성을 기억하지 않고는 세계를 향해 오늘날의 ‘K모델’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유석재, "이승만과 박정희는 ‘진보 우파’ 혁명가… 기득권과 싸우며 건국·부국·호국 이뤄," 조선일보, 2024. 2. 26, A18쪽. 기자]
두 전직 대통령 이승만(재임 1948~1960)과 박정희(재임 1963~1979)의 정치사적 연속성에 대해 분석한 연구가 발표됐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23일 이승만연구원(원장 양준모)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이사장 유영구) 공동 주최로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관에서 열린 세미나 ‘건국·부국 대통령, 이승만·박정희의 현대정치사적 의의’에서 ‘이승만과 박정희의 단층과 연속’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 사이에는 4·19와 5·16으로 인해 권력 구조가 바뀌는 혁명적인 단층이 존재했다고 했다. 소수의 독립운동가와 일제 시기 엘리트를 주축으로 했던 이승만 정부와는 달리, 박정희 정부에선 이승만 정부 때 국내 교육을 받았거나 해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가 충원됐다. 박정희는 ‘실체가 불분명한 독립운동 경력을 기반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자유당·민주당의 해방 귀족’을 인정하지 않았고, 하와이로 간 이승만의 귀국을 반대한 반면 김구(남산 동상 설립)와 안창호(도산공원 설립)의 선양 사업에 나섰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연속성이 존재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일관된 반공 사상 ▲세계 자본주의 진영에 편승한 반(反)식민주의 모델 구축 ▲한미 동맹에 기반한 한미 관계 발전 ▲세계 냉전 시기 정전(armistice) 체제 유지를 통한 평화 지속 ▲소박하고 근면한 인간성의 추구 등이라는 것이다. 또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에 국군 파병을 모색했던 이승만 정부의 노력은 박정희 정부의 베트남 파병으로 이어졌고, 통일 과업의 목표와 의지에서도 연속성을 보였다고 했다. 3선 개헌 이후 정치적 몰락, 집권 후반기의 소통 단절 등 부정적인 연속성도 있었다.
김 교수는 “이승만·박정희 시기는 호국(護國)의 연속성이 있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두 대통령 시기에 구축된 국가 안보에 기반해서 산업화와 민주화가 촉진된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현대사는 ‘호국’ ‘건국과 부국’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세 개의 흐름이 빚어낸 3중 나선형 상승 구조였다는 것이다.
전쟁의 시대를 살면서 리더십을 키웠던 이승만과 박정희는 스스로를 보수 기득권층과 싸우는 ‘혁명가’로 인식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변화를 추구했던 ‘진보 우파’에 가까웠다고 김 교수는 평가했다. 그는 “김일성, 박헌영, 마오쩌둥, 호찌민은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 이승만과 박정희는 공(功)을 뺀 과(過)만 취사선택해서 기억하도록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