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파묘’의 800만 흥행을 보며 시부야 스카이를 떠올린 까닭

도쿄의 글로벌 경쟁력 올리며 미래 제시한 아자부다이힐스
상생의 철학 바탕으로 공공·민간 협업한 개발의 결정판
쇠말뚝 소재로 日 혈괴 물리치는 영화 ‘파묘’의 씁쓸한 흥행
일본 트라우마 언제나 벗어날까


[김윤덕, " ‘파묘’의 800만 흥행을 보며 시부야 스카이를 떠올린 까닭," 조선일보, 2024. 3. 12, A34쪽. 선임기자]

영화 ‘파묘’가 흥행에 시동을 걸고 있을 때, 도쿄 미나토구에 있었다. 팝아트의 거장 ‘키스 해링’전을 보러 모리미술관을 찾아가던 길인데, 지하철역 출구를 잘못 나온 바람에 뜻밖의 장소에 도착했다. 모리미술관이 있는 모리타워가 아니라 그 사촌 격인 모리JP타워, 그러니까 요즘 세계 건축계와 부동산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도시 속의 도시’ 아자부다이힐스로 입성한 것이다.

이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영국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이 설계에 참여했다는 아자부다이힐스는, 330m 높이의 모리JP타워를 비롯해 3개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 고밀도 복합 단지다. 1400가구가 거주하는 아파트에 오피스, 호텔, 쇼핑몰은 물론 병원과 학교, 미술관과 음식점까지 입주해 10분 이내 거리에서 일하고 배우고 먹고 잠자는 일상이 가능한 ‘콤팩트 시티’다. 뭣보다 두 발로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살바도르 달리의 출세작 ‘기억의 지속’을 모티브 삼았다더니 층과 층, 건물과 건물로 이어지는 동선이 초현실적이었다. 평지를 걷나 했더니 오르막이고, 지하 3층에서 문을 여니 지상이었다.

백미(白眉)는, 초고층 빌딩 사이의 여백을 점령한 7000평의 녹지였다. 가파른 언덕 지형을 그대로 살린 계단식 정원엔 320종의 나무가 자라고, 중앙 광장엔 시냇물이 흘렀다. 행인들은 5000원짜리 크레이프를 하나씩 물고 요시토모 나라와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조각을 감상했다. 낮에는 2만명이 근무하고, 밤에는 3500명이 저녁밥 지어 먹고 잠드는 금싸라기 사유지를 일반 시민들이 공유하는 현장이었다.

뉴욕의 허드슨 야드와 함께 미래 도시의 모습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아자부다이힐스는, ‘상생의 개발’을 모토로 삼은 일본 부동산 개발 업체 모리빌딩 컴퍼니가 완공했다. 도시 과밀화 해법을 50층 이상의 수직 빌딩과 녹지 확보라는 투 트랙으로 풀어낸 모리컴퍼니는, 롯폰기힐스를 시작으로 도라노몬힐스, 아자부다이힐스를 탄생시키며 버블 경제 붕괴로 침체돼 있던 도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30년 걸린 개발 기간의 대부분을 원주민을 설득하고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쏟아부었다는 사실이 가장 경이로웠다. 롯폰기힐스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모리 미노루 회장이 무릎을 꿇고 “한 분이라도 재개발 때문에 눈물 흘리는 일 없게 하겠다”고 호소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모리의 신화를 가능케 한 진짜 주역은 따로 있었다. 과감한 규제 혁파와 제도 개선을 단행한 일본 정부와 도쿄도(都)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도심 주요 지역의 고도 제한을 없애고 용적률을 두 배로 올린 것이 그 시작이었다. 국가전략특구 프로젝트도 주효했다. 장기간 진행되는 도시 개발이 예상치 못한 규제와 금융 리스크로 중단되지 않도록 국가가 전폭 지원했다. 이전 주택과 새로 개발한 주택을 일대일로 맞교환하게 하는 ‘시가지 재개발법’은 대자본의 공세로부터 원주민을 보호했다. 롯폰기힐스, 아자부다이힐스 원주민의 대부분이 선대부터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나지 않고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서울대 김경민 교수에 따르면 “공공과 민간이 협업한 도시 개발의 결정판”인데, 우리는 이걸 해내지 못해 ‘한국판 롯폰기’를 외쳤던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쓰라린 파산을 맛본 적이 있다.

도쿄에서 돌아와 영화 ‘파묘’를 봤다.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의 ‘좌파 영화’라는 비판엔 동의하지 않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심정이 이해가 됐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만든 오컬트 장인이라더니, ‘파묘’는 허위로 판명 난 쇠 말뚝 낭설을 토대로 한반도 정기를 끊은 사무라이 혈괴를 때려잡는 친일 청산 스토리로 흘러갔다. MZ 무당 화림이 “일본 요괴는 한국 귀신과 달리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인다더라”고 했을 땐 실소가 터졌다. ‘귀멸의 칼날’도 아니고. 그런데도 파죽지세 흥행을 이어간다.

시부야 스카이에서 내려다본 도쿄의 야경이 떠올랐다. 섬뜩할 만큼 활력이 넘쳤다. 일본 정부와 모리가 성공시킨 롯폰기 모델은 시부야, 신주쿠, 니혼바시 등 교통의 요지로 확장되며 도쿄를 천지개벽 시키고 있었다. 엔저(低)로 외국 관광객이 2000만을 돌파했다는 뉴스, 일본이 반도체 강국으로 부활하고, 부동산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보도엔 더더욱 주눅이 들었다. ‘모두를 위한 예술’을 선포한 키스 해링처럼 도쿄는 ‘모두를 위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미래로 달려가는데 우리만 과거에 얽매여 신음하는 건 아닌지. 파내야 할 건 친일파의 무덤이 아니라 우리 안의 일본 트라우마였다.

번호 제목 조회 수
공지 [전체] 현대사회문제--주제들 1503
공지 [전체] 현대사회문제--추천사이트들 1919
94 러의 대북 군사 지원에 비례해 우크라 지원을 22
93 "여기가 법정인가" 피의자 취급당한 국감 증인의 항변 20
92 韓 '괴물 미사일' 아버지의 건배사 12
91 부족 정치의 시대, 엄격한 법 집행이 답이다 20
90 박정희의 마지막 국군의 날, 그날의 일기장엔 32
89 북·중·러 모두 핵 폭주, 무력한 국제사회 22
88 갈 길 바쁜데 원전 가동 중단, 뼈 아픈 탈원전 자해 여파 23
87 25년간 화석연료 비율 '86→82%', 이것이 실상 28
86 김정은 믿자던 사람들 우라늄 공장 보곤 또 무슨 궤변 할까 24
85 간첩 혐의자 100명 적발하고도 수사 못했다 28
84 김정욱 선교사 北 억류 4000일... 美 "석방하라" 18
83 좌편향·우편향, 동시에 고쳐야 한다 17
82 몰락하는 김정은 정권을 위해 나팔 부는 사람들 16
81 안보 각자도생… 세계 국방비 3000조원 18
80 文 '진짜 혐의'는 건들지도 못했다 16
79 臨政 애국자들과 공산주의는 왜 실패했는가 13
78 광복회장과 '건국 부통령' 이시영 24
77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광복절에 이 소동을 벌이는가 19
76 제헌국회는 왜 헌법에 臨政을 명기하지 않았나 17
75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부르면 친일파라는 황당한 기준 23
74 국가별 핵탄두 보유현황 18
73 전기차가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17
72 전기차를 위한 약간의 변호 17
71 "北은 종교 자유 보장" 이런 사람을 대통령 부인이 만났다니 19
70 우리 바다에 10년간 유입되는 삼중수소 11
69 마지막 경고: 대한민국 성교육의 진실 36
68 오염수 괴담 1년, 거짓에 반성한 사람 아무도 없었다 19
67 이유도 없는 '대통령 탄핵' 40
66 또 탄핵 서바이벌 24
65 빨치산을 양민 희생자로 둔갑 시킨 과거사위 22
64 '文정부 때 댐 중단 안 했더라면' 20
63 1950 애치슨 라인, 2025 트럼프 라인 20
62 국민 세금 3조원으로 대잔치 벌인 문 정부 25
61 28년 만의 상속세 개편안 '현실감' 들지 않는 이유 23
60 대장동 일당과 가짜 뉴스 합작, 진짜 배후 있을 것 45
59 쳐다보기 민망했던 채 상병 청문회 30
58 막다른 길에 선 韓 안보 핵무장론 14
57 개정 헌법의 전문, 무엇을 넣고 뺄 것인가? 8
56 美 '핵 확대' 선회하면 韓 '핵 확보' 기회 찾아야 10
55 文, 잘린 아이 손목 앞에서 궤변 또 해보길 20
54 민주당, 또 "MBC 사수" 다시 "방통위원장 탄핵" 11
53 나랏빚 폭증시키며 그 실태는 숫자 조작으로 속였다니 6
52 위기의 대한민국 정통 세력, 되살아날 방도는? 15
51 객관적 사실보다 김정은 말을 더 믿는다는 전직 대통령 23
50 ‘민주 건달’ 개탄했던 어느 사회주의자의 訃告 26
49 서울도 학생인권조례 폐지, 학생·교사 권리 책임 균형을 22
48 北 6·25 때 학살한 종교인 1700명, 뒤집힌 진실 바로잡아야 20
47 헌법재판소 “사드 배치, 기본권 침해 가능성 없다” 29
46 헌재 “사드 배치 기본권 침해 안 돼” 이 결정에 7년 걸린 나라 23
45 천안함 음모론자 줄줄이 출마, 국민 상식 두렵지 않나 32
44 4·10 총선에 정권이 걸렸다 41
43 김성한, 대만해협과 한반도 안보는 불가분 관계다 29
42 中 대만 침공 땐 한반도 불붙는데 ‘무슨 상관 있냐’는 李 대표 26
41 ‘다 퍼주기’ 이 대표가 “아르헨티나 된다” 걱정한다니 25
40 1% 지지 종북 정당에 최대 5석 주고 정책까지 연대하는 민주당 21
» ‘파묘’의 800만 흥행을 보며 시부야 스카이를 떠올린 까닭 50
38 종북 세력 국회 진입으로 더욱 시급해진 대공수사권 복원 36
37 헌법 가치 훼손, 이젠 위험 수위다 20
36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 결과가 사기 천국”이란 판사의 개탄 22
35 위기감 나토 국가들 ‘참전’ 언급, 유럽에 번지는 불길한 조짐 15
34 저급 주사파 ‘경기동부’ 국회 대거 진출을 돕는 李대표 34
33 이승만과 박정희는 ‘진보 우파’ 혁명가… 기득권과 싸우며 건국·부국·호국 이뤄 37
32 국민을 역사의 까막눈으로 만든 ‘백년전쟁’의 침묵 31
31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수출 자제해야 하나? 24
30 우리의 소원은 자유·민주·인권·법치다 21
29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를 극복하려면 36
28 ‘건국전쟁’ 62만명, 이제야 걷히는 이념 전쟁의 장막 뒤 42
27 6·25때 “서울 남으라” 했다? 런승만 연설은 없었다 36
26 나발니 미스터리… 러 정보요원 교도소 방문 이틀 후 사망 28
25 차 마시고 의식 불명, 목 맨 시신… 푸틴에 맞선 인사들 2년새 50명 의문사 28
24 건국 전쟁의 바른 견해 29
23 尹 집무실 팻말 뒤편 36
22 납득 안 되는 국회의원 연봉, 평균 가구소득 수준으로 내려야 19
21 재판 지연 간첩 피고인들 무단 퇴정, 방치한 판사 탓 크다 55
20 서독은 끝까지 동독의 2국가 체제 요구를 거부했다 16
19 美, 15년 만에 英에 핵 재배치, 對韓 核정책도 유연해져야 9
18 한국보다 15배 규모인 미국 경제가 1.8배 성장한 비결 18
17 자유·민주 지킨 대만 선거, 한국 총선에 주는 의미 11
16 “남조선이 대한민국이라고?” 25
15 역사 왜곡한 픽션이 가득한 '서울의 봄' 21
14 우크라이나 전쟁과 ‘1938년의 순간’ 27
13 한국, 흑사병 때보다 인구 감소 심각 29
12 19~34세 청년층 82%가 미혼, 결혼 꺼리니 출생률도 급락 37
11 민심 잃은 시진핑 정권, 어디로 가고 있나 19
10 현진권, 상속세 논쟁, 팩트가 중요하다 15
9 30년 철벽 수능, ‘문어의 꿈’은 언제쯤 이뤄질까 18
8 4월 총선 대차대조표 28
7 툭하면 전산망 먹통, ‘무조건 대기업 배제’ 재검토해야 14
6 고쳐 쓸 수 없는 정당 19
5 그들의 새 질서 23
4 나라를 빚더미 만든 장본인이 野 됐다고 “국가 부도 우려 28
3 아웅산 테러 40년, 하나도 안 달라진 ‘깡패 국가’ 북한 36
2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미동맹 70년 19
1 교육에도 자유를 許하라 26

주소 : 04072 서울특별시 마포구 독막로 26 (합정동)ㅣ전화 : 02-334-8291 ㅣ팩스 : 02-337-4869ㅣ이메일 : oldfaith@hjdc.net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