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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편향 역사 교육 바꿀 가능성 보여준 새 역사 교과서


[사설: “좌편향 역사 교육 바꿀 가능성 보여준 새 역사 교과서,” 조선일보, 2016. 11. 29, A35.]


정부가 국정(國定) 역사 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28일 공개했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학생들이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교과서를 만들었다"며 "12월 23일까지 내용을 인터넷에 공개해 국민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검토본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며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자유선거에 의해 수립된 국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1948년 12월 12일 유엔은 총회 결의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코리아)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고 썼다. 기존의 검정 교과서들은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정부 수립', 북한에 대해서는 '국가 수립'이란 표현을 씀으로써 스스로 국가 정통성을 격하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을 놓고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수립'이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냐는 논란은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일이다. 검토본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마당에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썼다고 해서 임시정부의 의미가 축소된다고 볼 수 없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같은 흐름 속에 있는 건국(建國)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임시정부가 나라를 잉태한 것이라면, 대한민국 수립은 출산을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1948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이 국토와 국민과 주권을 가진 명실상부한 국가로 태어났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사학계에서도 오랫동안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을 써왔다. 역사학자 고 이기백 교수와 한영우 교수도 개설서에서 '대한민국 성립'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했고 진보 역사학계 원로 이만열 교수도 연표에서 '대한민국 수립 선포'라고 했다. 좌․우 헤게모니 논쟁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검토본은 "우리 경제는 세계 평균을 크게 웃도는 7-10%의 경제성장률을 40년간 지속해 왔다"며 대한민국이 이룬 발전을 평가했다. 세계 최빈국에서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나라,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것은 우리가 유일하다. 국민 대부분이 상식으로 알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만 검정 역사 교과서들에서는 이런 구절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유일한, 이병철, 정주영의 이름이 역사 교과서에 실린 것도 처음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주체사상과 자주 노선이 북한 3대 세습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다는 것을 명시했다. 그런 한편 대한민국의 어두운 역사에 대해서도 균형 있게 서술했다고 볼 수 있다. "이승만 정부의 독재로 인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됐다"고 했고 "(박정희의) 10월 유신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 체제였다"고 했다. 고속 성장의 대가로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었고 정경유착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다. '전태일 분신사건' '동일방직 사건' 같은 노동문제와 대기․수질오염 등의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등 민주화 운동의 성과도 다뤘다.


좌파들은 새로 나올 국정 역사 교과서에 대해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공격해왔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그동안 검정 교과서들이 깎아내렸던 우리 현대사의 긍정적 부분을 강조하고 그 그늘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서술하려 한 노력이 눈에 띈다. 개방 사회의 장점을 살려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고 그 결과 형성된 중산층의 시민의식이 민주화를 진전시켰다는 것이 검토본이 서술하는 현대사의 뼈대다.


정부가 1년 전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것은 기존 검정 교과서들의 좌(左)편향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로 정부의 권능이 붕괴되면서 야당과 진보좌파들의 공격을 무릅쓰고 국정화를 추진할 동력이 사라졌다. 야당 의원들은 이날 "국정교과서는 박정희 대통령 치적을 강조한 '박근혜 교과서'"라며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야권은 다음번 촛불집회에서 국정교과서 폐기를 핵심 의제로 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야당이 교과서 검토본을 제대로 읽어나 보고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반면 여당은 대통령 탄핵 국면에 처하면서 논쟁 자체를 피하는 눈치다. 최순실 사태에 관련 없는 역사교육까지 휩쓸려 넘어갈 수는 없다.


지금 분명한 것은 역사 교과서의 단일화․획일화엔 신중해야 한다는 국민도 정말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 믿을 수 있는 교과서로 우리 아이들에게 자긍심을 심고 역사교육을 정상화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정부가 만든 교과서와 기존의 검정 교과서들이 자유롭게 경쟁해서 국민의 선택을 받게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육부가 유연하면서도 중심을 잡았으면 한다. 좌편향 역사교육은 최순실 사태와는 별개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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