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이게 정부냐'고 한다," 조선일보, 2017. 7. 14, A34쪽.]
사설 검문소를 차려 사드 부대를 봉쇄한 성주 사태를 보며 사람들은 "이게 나라냐"고 탄식했다. 사실 "이게 정부냐"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국가 정책에 저항하는 세력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불법을 방치하고 스스로 기능을 마비시키는 정부는 세상에 없다. 나라가 잘못된 게 아니라 비겁한 정부가 문제다. 이런 정부를 믿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답답한 것이다.
지난번 해외 순방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 위상이 달라졌다"고 했다. "세계가 우리를 대접해준다"며 가는 곳마다 '촛불 혁명'을 언급했다. 밖에서 보는 우리 위상이 올라갔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겪는 현실은 대통령 말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자부심은커녕 남 볼까 창피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다. 나라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게 정부냐"의 원조는 세월호 사태다. 세월호가 가라앉자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정부 공격에 올인했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최순실 스캔들 때도, 메르스 사태 때도 그랬다. 그렇게 일만 터지면 정부의 존재 이유를 따지던 이들이 이제 정권을 잡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게 나라냐"고 한다. 뭐가 달라졌느냐고 한다.
의정부시가 주한 미군 2사단을 위해 기획한 콘서트가 무산됐다. 민노총 등이 '규탄' 시위를 벌이며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천안시가 미군 가족을 초대하려던 축제도 취소됐다. '미군' 글자만 붙으면 반미 세력이 달려들고 거기에 굴복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안보를 걱정하면서 안보 지켜주는 군대를 냉대한다. 이런 나라가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난번 해외 순방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 위상이 달라졌다"고 했다. "세계가 우리를 대접해준다"며 가는 곳마다 '촛불 혁명'을 언급했다. 밖에서 보는 우리 위상이 올라갔다니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겪는 현실은 대통령 말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자부심은커녕 남 볼까 창피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다. 나라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게 정부냐"의 원조는 세월호 사태다. 세월호가 가라앉자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정부 공격에 올인했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최순실 스캔들 때도, 메르스 사태 때도 그랬다. 그렇게 일만 터지면 정부의 존재 이유를 따지던 이들이 이제 정권을 잡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게 나라냐"고 한다. 뭐가 달라졌느냐고 한다.
의정부시가 주한 미군 2사단을 위해 기획한 콘서트가 무산됐다. 민노총 등이 '규탄' 시위를 벌이며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천안시가 미군 가족을 초대하려던 축제도 취소됐다. '미군' 글자만 붙으면 반미 세력이 달려들고 거기에 굴복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안보를 걱정하면서 안보 지켜주는 군대를 냉대한다. 이런 나라가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청와대 앞길이 개방되자 금속노조가 점령했다. 인도에 불법 천막을 친 뒤 '밥차'를 부르고 차도에 침낭까지 깔았다. 그래도 공권력의 대응은 무디기만 했다. 건설노조의 1박 2일 노숙 투쟁 때도 그랬다. 술판을 벌이고 교통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도 경찰은 단속하는 시늉만 했다. 빚쟁이처럼 당당한 '노동' 앞에서 공권력은 주눅 든 듯했다.
모든 것을 정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 노조와 맹목적 반미 세력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폭주를 방치하는 것이 정부다. '밥차 농성'을 벌인 금속노조는 경찰과 구청을 고발하겠다고 한다. 반성은커녕 공권력을 한껏 조롱하고 있다. 정부가 물렁물렁하니까 떼쓰는 세력이 마음대로 활개친다. 이게 '세계에서 대접받는 나라'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 최종 책임은 정부에 있다.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도 아니다. 법 절차와 상식에 따르면 된다. 국정 운영이 법치와 상식을 벗어날 때 국민은 고개를 젓게 된다. 정부의 존재 의미에 의문을 품게 된다.
느닷없는 탈(脫)원전 선언이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몇 년은 토론해야 할 중차대한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어엎었다. 누가, 어떤 검토 과정을 거쳤는지조차 불투명하다. 허구투성이 원전 영화를 보고 대통령이 영감을 얻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책 추진이 아마추어처럼 즉흥적이고 거칠기 짝이 없다.
최저임금 54% 인상은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선의의 정책일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다른 쪽에서 선의의 피해자를 내고 있다. 영세 업체와 자영업자들이 망할 지경이다. 약자를 위한다면서 또 다른 약자를 죽이는 꼴이다. 치명적 부작용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한쪽 면만 보고 밀어붙인다. 선무당 칼춤 추듯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상식을 벗어난 정책의 폭주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더 치열하게 경쟁시켜도 모자랄 판에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를 합치겠다 한다. 청년을 위한다면서 미래 세대가 떠안을 나라 곳간을 대책 없이 축내고 있다. 공직 사회가 복지부동인데 성과급마저 없애기로 했다. 이제 사람들은 진지하게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나라가 옳게 가고 있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촛불 혁명 덕에 당선됐다"는 말을 자주 한다. 촛불 세력에 빚졌다는 생각을 감추지 않는다. 이런 부채 의식이 모든 상황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그걸 아는 민노총과 전교조, 좌파·반미 세력이 빚 갚으라 채근하고, 정부는 끌려가고 있다. 탈원전과 성주 사태, 노동 편향 정책 등은 다 그 결과다.
촛불이 정권 교체를 이뤘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부터 사실 착오다. 탄핵은 촛불 세력의 투쟁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내린 법률적 결정일 뿐이다. 그걸 정치적으로 해석해 의미 부여하니 국정 스텝이 꼬이고 정책이 폭주한다.
다가올 5년을 봐야 할 대통령이 지나간 촛불의 추억에 갇혀 있다. '이게 정부냐'는 실존적(實存的) 물음을 자초하는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 자신이다.
모든 것을 정부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 노조와 맹목적 반미 세력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폭주를 방치하는 것이 정부다. '밥차 농성'을 벌인 금속노조는 경찰과 구청을 고발하겠다고 한다. 반성은커녕 공권력을 한껏 조롱하고 있다. 정부가 물렁물렁하니까 떼쓰는 세력이 마음대로 활개친다. 이게 '세계에서 대접받는 나라'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 최종 책임은 정부에 있다.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도 아니다. 법 절차와 상식에 따르면 된다. 국정 운영이 법치와 상식을 벗어날 때 국민은 고개를 젓게 된다. 정부의 존재 의미에 의문을 품게 된다.
느닷없는 탈(脫)원전 선언이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몇 년은 토론해야 할 중차대한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어엎었다. 누가, 어떤 검토 과정을 거쳤는지조차 불투명하다. 허구투성이 원전 영화를 보고 대통령이 영감을 얻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책 추진이 아마추어처럼 즉흥적이고 거칠기 짝이 없다.
최저임금 54% 인상은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선의의 정책일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다른 쪽에서 선의의 피해자를 내고 있다. 영세 업체와 자영업자들이 망할 지경이다. 약자를 위한다면서 또 다른 약자를 죽이는 꼴이다. 치명적 부작용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한쪽 면만 보고 밀어붙인다. 선무당 칼춤 추듯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상식을 벗어난 정책의 폭주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더 치열하게 경쟁시켜도 모자랄 판에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를 합치겠다 한다. 청년을 위한다면서 미래 세대가 떠안을 나라 곳간을 대책 없이 축내고 있다. 공직 사회가 복지부동인데 성과급마저 없애기로 했다. 이제 사람들은 진지하게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나라가 옳게 가고 있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촛불 혁명 덕에 당선됐다"는 말을 자주 한다. 촛불 세력에 빚졌다는 생각을 감추지 않는다. 이런 부채 의식이 모든 상황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그걸 아는 민노총과 전교조, 좌파·반미 세력이 빚 갚으라 채근하고, 정부는 끌려가고 있다. 탈원전과 성주 사태, 노동 편향 정책 등은 다 그 결과다.
촛불이 정권 교체를 이뤘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부터 사실 착오다. 탄핵은 촛불 세력의 투쟁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내린 법률적 결정일 뿐이다. 그걸 정치적으로 해석해 의미 부여하니 국정 스텝이 꼬이고 정책이 폭주한다.
다가올 5년을 봐야 할 대통령이 지나간 촛불의 추억에 갇혀 있다. '이게 정부냐'는 실존적(實存的) 물음을 자초하는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