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일 논란은 이제 무익하다. 건강한 논쟁의 한계를 넘어섰다. 뺄셈의 논리로 분열과 미움을 키운다.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라 하면 이내 비난이 쏟아진다. 독립운동을 인정하지 않고 친일파를 옹호하는 수작이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을 독해하지 못하는 '얼빠진 주장'이라고 비난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김구도 임시정부 수립 자체를 건국이라 생각지 않았다. 건국은 임시정부의 목적이었다. 임시정부 김구 주석은 1941년 11월 28일 '건국강령'을 공포했다. 임시정부를 세우고 적(敵)과 혈전을 벌여 나라를 회복하는 과정인 '복국(復國)'을 거쳐 적의 통치 기구를 박멸하고, 중앙정부와 의회의 활동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건국(建國)'을 최종 목표로 선언했다. 좌익 계열 독립운동가 여운형이 해방 무렵 만든 조직 이름도 건국준비위원회였다.
그럼에도 1919년 4월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이라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뺄셈의 논리가 숨어 있다.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내가 있다. 그러나 건국일을 어떻게 잡는다 해도 이승만은 '건국 대통령'이라 해야 옳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며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단정(單政)에 대한 평가, 3선 개헌과 부정선거에 대한 비판은 별개 문제다. 건국 대통령 기념관이 아직도 없는 현실은 뺄셈의 정치, 배제의 논리가 깊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이승만 대통령은 '포용'에 방점을 두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축하 연설에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나라가 새로 탄생한 것을 축하하러 이 식을 거행합니다. 동양의 오래된 나라가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되길 바라며 40여년을 두고 꿈꾸며 투쟁해온 노력이 결실을 맺는 날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새 나라 대한민국이 이날 탄생했다고 천명하면서도 그해를 '대한민국 30년'이라 규정했다. 임시정부가 투쟁해 온 노력이 모여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결실을 맺었다고 평가한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은 뺄셈이 아닌 덧셈의 결실이다.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김일성주의자가 아니라면 이승만도 김구도 여운형도 조소앙도 힘을 합칠 수 있다. 네 분은 모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바다는 강물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양쪽에서 돌이 날아온다. 우리 사회에선 '사이'에 설 때 더 몰매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