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9개월을 지나면서 적지 않은 국민 입에서 "기대를 접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만난 한 전직 공기업 대표는 피 토하듯 말했다. "애당초 잘하고 잘못하고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이 정권 핵심의 생각이 뭐고 무엇을 하려는지 더 분명해졌다."
신호탄은 좌파적 경제정책 등장이었다. 무조건 비정규직을 없애라더니, '분수 효과'를 보겠다며 최저임금을 과격하게 올렸다. 민간인이 국정원 서버를 뒤지고, 전(前) 정부가 했다는 이유로 외국과 한 협상의 치맛자락을 마구 들쳤다. 공기업 대표를 몰아내고 자기 사람 심는 과정에서 완장 찬 이들의 어깃장은 과거 정권을 뺨쳤다.
한·미·일 동맹이 근본부터 흔들린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북한과의 평화 무드도 어리둥절하다. 사태 본질인 북핵은 제쳐둔 채 눈 가리고 아웅식(式) 평화만 외친다. 이젠 헌법까지 왼쪽으로 뜯어고칠 기세다. 우파를 비롯한 국민은 현 정권의 일관된 방향성이 무섭고, 그 속도가 두렵다. 이제 브레이크 밟고 핸들을 틀 때가 됐다. 그대로 뒀다간 가드레일을 뚫고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칠까 봐 겁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선거를 통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더 무섭고 두려운 일은 제동을 걸 수 있는 야당의 부재(不在)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둔 진보 진영이 지금 야권 꼴이었다. 노무현 정부 실패로 대선을 내준 뒤 갈라져 있었다. 지방선거 패배도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뭉쳤고 이명박 정부를 견제하며 소생의 기회를 잡았다. 그게 민주주의고 선거다.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권력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면 투표로 균형을 맞춰왔다.
6월 지방선거는 문 정부 1년에 대한 평가의 장(場)이다. 그러려면 유권자들이 투표용지를 받았을 때 '문재인 대(對) 반(反)문재인' 구도가 선명하게 와 닿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야권 사정으론 그런 투표용지를 아예 못 만들 것 같다. 탄핵 사태 이후 갈라선 우파 진영 분열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분열도 모자라 이번 선거에서 서로를 망가뜨리려 작정한 듯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방선거에서 안철수·유승민 대표를 확실히 밟아버리겠다고 했다. 안철수·유승민 대표는 한국당을 패배로 몰아 홍 대표를 쫓아내겠다고 한다. 이쪽에선 '배신자들', 저쪽에선 '반(反)개혁'이란 비난이 오간다.
홍수가 밀려오는데 땅뙈기 더 차지하겠다고 아옹다옹하는 격이다. 13일 바른미래당의 출범으로 야권 내 간극은 더 깊고 넓어진 듯하다. 이들이 4개월 뒤 지방선거에서 손잡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제각각 후보를 내면 수도권은 물론 영남에서조차 여당에 승리를 헌납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의 비교적 높은 지지율 때문도 아니고, 여당 후보 경쟁력이 있어서도 아니다. 선거 구도는 선거 결과의 8할을 좌우한다. '1여다(多)야'로 갈라진 선거 구도에선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표심이 한곳으로 모이기 힘들다. 여권으로선 어부지리(漁夫之利)가 따로 없다.
홍·안·유 세 사람은 지난 대선 때도 '좌파 정권 탄생을 막기 위해 연대하라'는 고언을 귓등으로 흘렸다. 세 사람은 이번에도 자기 앞길을 따져 우파를 위시한 국민 바람을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이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한다면 대대적인 객토(客土)가 있을 것이다. 그때 우파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바람을 두 번이나 외면한 홍·안·유에게 더 이상 설 땅을 내주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