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주의 결말은 이미 亡한 사회주의
2005.09.15 10:18
[유광호, “진보주의 결말은 이미 망한 사회주의,” 미래한국, 2005. 5. 14, 6쪽; 유광호 한국전략연구소장, 5월 7일 자유지식인선언 시국토론회 발제요약.]
좌익세력은 이념의 시대는 끝났으며 이념을 묻는 질문에 대해 ‘또 색깔론을 들고 나오느냐’며 벌 떼같이 들고 일어난다. 그러나 이념 혹은 사상 없이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정치시장에서 색깔을 따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결론적 상품이자 무기가 색깔인 것이다. 실제 좌익은 보수·진보를 사용하며 큰 재미를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사상 내지 철학으로서의 보수·진보의 본 개념은 좌익들이 사용되는 보수·진보의 어의적 개념과 다른 것이다. 우선 진보주의는 200여 년 전 서양 계몽주의 시절 탄생했다. 진보는 그때까지의 ‘신본(神本)주의’를 부정하고 소위 이성을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이성지상주의’로서 ‘유물론’과 ‘무신론’을 취했다.
진보는 인간이 현세에서 완전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주의로 치달았고, 이는 결국 계몽주의의 적자라 불리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낳게 된다. 한마디로 계몽주의 좌파계보의 결정체가 사회주의인 것이다.
반면 보수주의는 진보주의의 산물인 ‘혁명’에 반대해 자신을 정립한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인간이성의 불완전함을 철저히 인식한 뒤 자생적 질서와 전통·경험을 소중히 여기며 사회문제에 개량적으로 대응해 가려는 것으로 낙착됐다. 진보주의의 결말이 사회주의기 때문에 실패하고 망한 사회주의가 그 본질을 밝혀줘야 하는데도 ‘진보’가 갖는 단어의 이미지는 이를 괴리·왜곡·호도해왔다. ‘진보’라는 단어는 애초부터 ‘가치롭다’는 평가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익세력은 진보를 자칭하며 이 같은 프리미엄 극대화를 위해 선전해왔다. 특히 좌경이 많은 서구지식인들은 좌경*용공을 진보주의라는 간판으로 가린 일종의 ‘배운 자들의 일탈적 사고’를 드러냈고, 여기에 언론매체의 편의주의가 더해져 지적 혼란이 야기된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liberal(자유주의)이나 중도를, 자칭하는 지식계나 언론에서 liberal(자유주의) 내지 그 동의어인 progressive(진보주의)라고 표현할 뿐, 우파는 이들을 ‘the left’(좌파)라 직선적으로 호칭한다. 좌익·우익이라는 말은 프랑스 혁명 초기에 의회의 좌석 배치에서 생겨났다. 로베스삐에르의 국민공회(평등지향)를 혁명의 핵심이자 꽃으로 본다면 좌익, 그런 지향을 비판적으로 보면 프랑스우익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한국의 좌우익은 자유민주체제로의 대한민국 건국과 불가피한 분단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확립됐다. 결국 역사관의 문제이고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이다.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 후 일본과 중국, 노령을 통해 ‘신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유입돼 계급혁명, 사회혁명을 통해 조선독립도 이룬다는 전략의 좌익진영이 성립됐다. 반면 사회혁명은 받아들일 수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입장이 우익으로 자리 잡게 되고 민족문화보존과 근대문명의 학습, 자유체제의 민족독립을 준비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우익국가 건립 후 대한민국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정하는 좌익들은 지하로 들어가거나 세상사 참여를 포기하게 된다. 이후 이 후예들이 우익 헤게모니가 흔들리는 역사적 순간마다 사상적·혈연적으로 좌익용출의 인재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들 좌익들은 친일·친미문제에서 민족주의를 선동해 국민을 분열·대립시켜왔다. 민주주의 문제에는 관념적 기준을 들이대고, 민주정치 토대를 만들어 내기 위한 권위주의(자유지향 권위주의: authoritarianism for liberalism)전략의 성취와 불가피성을 배척하며, 자유민주주의의우월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해왔다.
남북한이 한창 냉전 중인 것을 고려하면 좌익과 속물적 리버럴 파의 몸에는 반역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이 나라 정치문화계 또는 언론계 실무일꾼들의 대부분은 1980년대 좌익학생운동의 간부들이거나 그 동조자들이다. 사상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 선전기관운영의 헤게모니 장악이다. 그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의 사상이나 거기서 파생된 관념*용어는 한 사회 지배적 또는 보편적 사상, 관념*용어가 되고 그에 반대되는 사상, 관념*용어는 비정상적인 것이 된다.
지금은 이념의 종언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이념전·사상전이 실로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국민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게 될 것이고, 그에 기반한 정상적 정치가 이뤄질 것이다.
좌익정권이 들어서고, 좌익국가가 돼도 계속 혁명을 요구하고 세상을 뒤집어엎기 위한 공격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좌익이 인간세상 이치에 비춰 반체제적이란 얘기이다. 좌익이 역천자(逆天者)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국가권력을 차지하고 있으나 잃으나 인간세상의 이치, 천리(天理)는 우익적이다. 고로 우익은 순천자(順天者)이며 결국 이길 것이다. 좌익에게 권력을 넘겨 준 지금이 오히려 기회이다. 옳은 체제로의 건국, 세계사적 기적, 성취의 근대화 등 숱한 성과를 우리 손으로 싸워 얻어야 온전히·확실히·안정되게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 무임승차·무노동 상속은 쉽게 빼앗길 수 있다. 우리는 싸워 획득하여 자수성가를 이루자. 그게 진짜 우리의 것이다. 진리는 우리 편이다. 싸우기만 하면 된다. 우익 운동을 통해 승리해야 한국의 자유민주화·선진화를 이룰 것이고, 선진통일의 관건이 될 것이다.
좌익세력은 이념의 시대는 끝났으며 이념을 묻는 질문에 대해 ‘또 색깔론을 들고 나오느냐’며 벌 떼같이 들고 일어난다. 그러나 이념 혹은 사상 없이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정치시장에서 색깔을 따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결론적 상품이자 무기가 색깔인 것이다. 실제 좌익은 보수·진보를 사용하며 큰 재미를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사상 내지 철학으로서의 보수·진보의 본 개념은 좌익들이 사용되는 보수·진보의 어의적 개념과 다른 것이다. 우선 진보주의는 200여 년 전 서양 계몽주의 시절 탄생했다. 진보는 그때까지의 ‘신본(神本)주의’를 부정하고 소위 이성을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이성지상주의’로서 ‘유물론’과 ‘무신론’을 취했다.
진보는 인간이 현세에서 완전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주의로 치달았고, 이는 결국 계몽주의의 적자라 불리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낳게 된다. 한마디로 계몽주의 좌파계보의 결정체가 사회주의인 것이다.
반면 보수주의는 진보주의의 산물인 ‘혁명’에 반대해 자신을 정립한 사고방식이다. 그것은 인간이성의 불완전함을 철저히 인식한 뒤 자생적 질서와 전통·경험을 소중히 여기며 사회문제에 개량적으로 대응해 가려는 것으로 낙착됐다. 진보주의의 결말이 사회주의기 때문에 실패하고 망한 사회주의가 그 본질을 밝혀줘야 하는데도 ‘진보’가 갖는 단어의 이미지는 이를 괴리·왜곡·호도해왔다. ‘진보’라는 단어는 애초부터 ‘가치롭다’는 평가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익세력은 진보를 자칭하며 이 같은 프리미엄 극대화를 위해 선전해왔다. 특히 좌경이 많은 서구지식인들은 좌경*용공을 진보주의라는 간판으로 가린 일종의 ‘배운 자들의 일탈적 사고’를 드러냈고, 여기에 언론매체의 편의주의가 더해져 지적 혼란이 야기된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liberal(자유주의)이나 중도를, 자칭하는 지식계나 언론에서 liberal(자유주의) 내지 그 동의어인 progressive(진보주의)라고 표현할 뿐, 우파는 이들을 ‘the left’(좌파)라 직선적으로 호칭한다. 좌익·우익이라는 말은 프랑스 혁명 초기에 의회의 좌석 배치에서 생겨났다. 로베스삐에르의 국민공회(평등지향)를 혁명의 핵심이자 꽃으로 본다면 좌익, 그런 지향을 비판적으로 보면 프랑스우익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한국의 좌우익은 자유민주체제로의 대한민국 건국과 불가피한 분단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확립됐다. 결국 역사관의 문제이고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이다.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 후 일본과 중국, 노령을 통해 ‘신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유입돼 계급혁명, 사회혁명을 통해 조선독립도 이룬다는 전략의 좌익진영이 성립됐다. 반면 사회혁명은 받아들일 수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입장이 우익으로 자리 잡게 되고 민족문화보존과 근대문명의 학습, 자유체제의 민족독립을 준비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우익국가 건립 후 대한민국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정하는 좌익들은 지하로 들어가거나 세상사 참여를 포기하게 된다. 이후 이 후예들이 우익 헤게모니가 흔들리는 역사적 순간마다 사상적·혈연적으로 좌익용출의 인재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들 좌익들은 친일·친미문제에서 민족주의를 선동해 국민을 분열·대립시켜왔다. 민주주의 문제에는 관념적 기준을 들이대고, 민주정치 토대를 만들어 내기 위한 권위주의(자유지향 권위주의: authoritarianism for liberalism)전략의 성취와 불가피성을 배척하며, 자유민주주의의우월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해왔다.
남북한이 한창 냉전 중인 것을 고려하면 좌익과 속물적 리버럴 파의 몸에는 반역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이 나라 정치문화계 또는 언론계 실무일꾼들의 대부분은 1980년대 좌익학생운동의 간부들이거나 그 동조자들이다. 사상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 선전기관운영의 헤게모니 장악이다. 그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의 사상이나 거기서 파생된 관념*용어는 한 사회 지배적 또는 보편적 사상, 관념*용어가 되고 그에 반대되는 사상, 관념*용어는 비정상적인 것이 된다.
지금은 이념의 종언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이념전·사상전이 실로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국민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게 될 것이고, 그에 기반한 정상적 정치가 이뤄질 것이다.
좌익정권이 들어서고, 좌익국가가 돼도 계속 혁명을 요구하고 세상을 뒤집어엎기 위한 공격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좌익이 인간세상 이치에 비춰 반체제적이란 얘기이다. 좌익이 역천자(逆天者)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국가권력을 차지하고 있으나 잃으나 인간세상의 이치, 천리(天理)는 우익적이다. 고로 우익은 순천자(順天者)이며 결국 이길 것이다. 좌익에게 권력을 넘겨 준 지금이 오히려 기회이다. 옳은 체제로의 건국, 세계사적 기적, 성취의 근대화 등 숱한 성과를 우리 손으로 싸워 얻어야 온전히·확실히·안정되게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 무임승차·무노동 상속은 쉽게 빼앗길 수 있다. 우리는 싸워 획득하여 자수성가를 이루자. 그게 진짜 우리의 것이다. 진리는 우리 편이다. 싸우기만 하면 된다. 우익 운동을 통해 승리해야 한국의 자유민주화·선진화를 이룰 것이고, 선진통일의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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