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금 몇 시인가? 어디에 와 있는가? 어제와 다름없어 보이면서도 확실하게 달라진 오늘-혁명이다. 이 혁명을 정확하게 인지(認知)하지 않고서는 지금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늠할 수 없다. 대한민국 70년사(史)를 긍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선호하는 처지에선 이 혁명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앞으로 제대로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혁명의 콘텐츠는 낭만적 민족주의와 민중주의가 뒤범벅된 정서다. 1960~70년대의 제3세계 혁명론, 1980년대의 종속이론, 주체사상, 2000년대의 반(反)세계화, 코뮌(주민자치 공동체) 사상, 직접민주주의, 체 게바라, 차베스 같은 것의 잡탕이다. 이 정서는 근대 문명, 세계시장, 도시화, 첨단 기술을 싫어하고 전(前)근대 농촌 공동체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이고, 서방세계를 제국주의 약탈자로 본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이며, 개인의 자유보다 작위적 평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민중주의다.
이런 정서는 8·15 해방 공간에도 있었다. 그 극단화한 사례가 박헌영(남로당수), 이현상(지리산 빨치산), 김달삼(제주 4·3 주동자)이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그들의 혁명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헛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산봉우리 봉우리마다 봉화불이 타올라 산줄기를 따라 불꽃 행렬을 이루었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 봉화불의 기세를 따라 다 같이 함성을 지르며 투쟁의 대열을 이루었던 때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 '불꽃 행렬'이 구(舊)소련, 동유럽, 북한에 남긴 건 무엇이었나? 황폐, 폭압, 몽매(蒙昧), 수용소, 빈핍이었다. 남로당을 종말 처리한 것도 김일성이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범람하는 '민족·민중' 파고(波高)는 물론 '70년 전'과는 다른 '70년 후' 현상이다. 그럼에도 1948년의 대한민국을 단독 정권이라고 왜곡, 폄하하는 점에선 '70년 전'과 '70년 후'가 다르지 않다.
일부에 의하면 "4·3 민중 항쟁은 미군정과 이승만의 남한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와 민족의 통일 독립을 열망한 민중의 자주적 투쟁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 놓으면 대한민국은 뭐가 되나? '태어나선 안 될 나라'밖에 더 되나?
광화문 광장에선 한·미 동맹 폐기, 미군 철수, 한·미 군사훈련 영구 중단 같은 외침도 나왔다. 여순(麗順) 반란 사건을 '여순 봉기'라고 부르자는 주장도 나왔다. 어쩌자는 것인가? 이게 이 시대 혁명의 귀착점인가?
진보를 자임하는 시대가 일정한 변화, 변혁, 혁파를 시도하리란 것은 예상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그게 일정한 범위 밖으로 폭주하면 그건 혁명 대상뿐 아니라 혁명 주체도 함께 파멸시킬 수 있다. 합리적·생산적 변화 아닌 급진 과격 혁명은 프랑스 자코뱅당(黨) 같은 파국을 되풀이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초기엔 합리적·생산적 변화를 지향했다. 그런데 그게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죽 쒀서 뭣 준 꼴'이 되었다. 운동의 주도권이 전체주의 혁명가들에게 넘어간 탓이다. 국민이 이 사연을 제대로 깨쳐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버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엔 대중에 대한 혁명의 선동이 너무 세다.
한때 "새는 양쪽 날개로 난다"고 하더니 요즘엔 아예 "새는 왼쪽 날개로만 날겠다"는 식이다. 혁명 독재의 발상이다. 내로남불, 뻔뻔스러움, 갑(甲)질, 사이버 공작이 일상화하고 있다. 방송 장악 과정, 김기식 현상, 댓글 조작이 그렇다. 21세기 한국을 1930년대 스페인, 1940년대 해방 공간, 1970년대 칠레의 내전(內戰)적 분열로 몰아갈 작정인가? 자유인들에게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