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손을 잡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군사경계선의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기념 촬영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지금까지 남북 관계가 이랬다면 이산으로 인한 슬픔도, 그토록 많은 '금쪽 아들'들의 횡사(橫死)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4월 27일 남북 정상의 만남과 판문점 선언에서 가시지 않는 '조선반도 비핵화'의 망령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불길한 기운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국제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북한의 평화 공세를 있게 한 하나의 배경인 줄은 알지만, 서울에 우파(右派) 정부가 있었다면 북한이 그토록 대담한 변신을 엄두 냈을까?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대한민국에 복(福)일까 화(禍)일까? 후일 역사가 어떤 평가를 할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판문점 선언에서 핵 문제와 관련한 부분은 '완전한 비핵화는 공동의 목표'라고 한 것이 전부다. 북한은 한반도에서 핵우산과 전략 자산 전개를 포함한 미국의 모든 핵 영향력을 일소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이 동등한 핵국(核國) 자격으로 핵 군축 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를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야릇한 표현으로 포장해왔다. 그래서 '북핵 폐기'라는 정확한 표현이 실종된 것이 마음에 걸린다.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 관계 개선과 긴장 완화를 위한 다양한 합의들도 포함되었다. 이산가족 상봉 재추진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납북자 관련 내용은 실종되었다. '기존 남북 합의 철저 이행'과 같은 황당한 내용도 있다. 북한이 1992년의 비핵화 공동 선언을 이행했다면 수십 개의 핵무기도, 여섯 번에 걸친 핵실험도 없었을 것이다. 판문점이 아닌 개성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는 개운치 않은 내용도 있고, 확성기 방송이나 전단 살포와 같은 한국의 소중한 비대칭 수단들을 앞질러 포기한 부분도 있다. 그래도 북한의 평화 공세에 진정성이 실려 있다면 이런 문제들은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금년 중 종전(終戰) 선언 및 평화협정 추진'이라는 대목에서는 불길한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종전 선언이란 6·25전쟁을 마감하는 것이므로 이론상 문제가 없다. 하지만 평화협정은 적대 관계 청산과 상호 불가침을 약속하는 것이어서 한·미(韓·美) 동맹, 연합 훈련, 유엔사령부 등의 존재 이유를 소멸시킬 수 있다. 즉, 안보의 틀을 바꾸는 엄청난 변화를 의미한다.
그래서 평화협정은 핵 폐기를 넘어 북한의 변화와 연계하여 협상해야 하는 대상이며,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를 수용하는 경우 제재 해제, 미·북 수교, 대북 경협 등의 반대급부가 주어져야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해서 대남(對南) 도발과 외부 긴장을 통해 내부를 단속하는 인권(人權) 부재(不在)의 '수령 독재' 체제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화협정과 핵 해결을 맞바꾼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수밖에 없다. 완전한 핵 해결도 아닌 핵 동결과 맞바꾸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체제 변화는커녕 핵 폐기 진정성도 확인되지 않은 시점에 평화협정이 마구 논의되는 현실에 불길함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핵 해결 이후 진정한 안보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핵 해결 축제 무드와 트럼프 대통령의 경솔함이 결합되어 곧바로 평화협정으로 이어진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좌파(左派) 세력들의 선전전(宣傳戰)이 펼쳐지고 철없는 젊은이들은 열광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하고 한·미 동맹과 주한 미군도 필요 없다고 외칠 것이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는 중에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급난지붕(急難之朋·급하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을 지켜야 한다는 현자(賢者)들의 충고는 이들의 환호 속에 매몰될 것이다. 그리고 흑심(黑心)을 품은 당사국이 포함된 평화협정은 예외 없이 파기되었고, 많은 평화협정이 상대국의 안보 장치를 해체하는 수단이자 '전쟁의 전주곡'이었다는 역사의 교훈도 외면될 것이다. 역사의 교훈을 외면하는 나라는 망국(亡國)을 면치 못했다. 정부는 이런 이치를 몰라 평화협정을 서 두르는 것일까?
육식동물과 초식동물 간의 평화협정은 지켜질 수 없다. 송아지는 늑대를 잡아먹지 못하지만, 늑대는 배가 고파지면 송아지를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북한이 초식동물로 바뀐다면 즉 인권을 존중하고 정권의 안전보다 주민의 삶의 질을 중시하고 도발보다 상생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는 체제로 변신한다면 평화협정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들어줄 수 있다.
그럼에도 4월 27일 남북 정상의 만남과 판문점 선언에서 가시지 않는 '조선반도 비핵화'의 망령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불길한 기운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국제 제재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북한의 평화 공세를 있게 한 하나의 배경인 줄은 알지만, 서울에 우파(右派) 정부가 있었다면 북한이 그토록 대담한 변신을 엄두 냈을까? 문재인 정부의 등장은 대한민국에 복(福)일까 화(禍)일까? 후일 역사가 어떤 평가를 할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판문점 선언에서 핵 문제와 관련한 부분은 '완전한 비핵화는 공동의 목표'라고 한 것이 전부다. 북한은 한반도에서 핵우산과 전략 자산 전개를 포함한 미국의 모든 핵 영향력을 일소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이 동등한 핵국(核國) 자격으로 핵 군축 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를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야릇한 표현으로 포장해왔다. 그래서 '북핵 폐기'라는 정확한 표현이 실종된 것이 마음에 걸린다.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 관계 개선과 긴장 완화를 위한 다양한 합의들도 포함되었다. 이산가족 상봉 재추진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납북자 관련 내용은 실종되었다. '기존 남북 합의 철저 이행'과 같은 황당한 내용도 있다. 북한이 1992년의 비핵화 공동 선언을 이행했다면 수십 개의 핵무기도, 여섯 번에 걸친 핵실험도 없었을 것이다. 판문점이 아닌 개성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는 개운치 않은 내용도 있고, 확성기 방송이나 전단 살포와 같은 한국의 소중한 비대칭 수단들을 앞질러 포기한 부분도 있다. 그래도 북한의 평화 공세에 진정성이 실려 있다면 이런 문제들은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금년 중 종전(終戰) 선언 및 평화협정 추진'이라는 대목에서는 불길한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종전 선언이란 6·25전쟁을 마감하는 것이므로 이론상 문제가 없다. 하지만 평화협정은 적대 관계 청산과 상호 불가침을 약속하는 것이어서 한·미(韓·美) 동맹, 연합 훈련, 유엔사령부 등의 존재 이유를 소멸시킬 수 있다. 즉, 안보의 틀을 바꾸는 엄청난 변화를 의미한다.
그래서 평화협정은 핵 폐기를 넘어 북한의 변화와 연계하여 협상해야 하는 대상이며,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를 수용하는 경우 제재 해제, 미·북 수교, 대북 경협 등의 반대급부가 주어져야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해서 대남(對南) 도발과 외부 긴장을 통해 내부를 단속하는 인권(人權) 부재(不在)의 '수령 독재' 체제가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화협정과 핵 해결을 맞바꾼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수밖에 없다. 완전한 핵 해결도 아닌 핵 동결과 맞바꾸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체제 변화는커녕 핵 폐기 진정성도 확인되지 않은 시점에 평화협정이 마구 논의되는 현실에 불길함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핵 해결 이후 진정한 안보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핵 해결 축제 무드와 트럼프 대통령의 경솔함이 결합되어 곧바로 평화협정으로 이어진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좌파(左派) 세력들의 선전전(宣傳戰)이 펼쳐지고 철없는 젊은이들은 열광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하고 한·미 동맹과 주한 미군도 필요 없다고 외칠 것이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는 중에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급난지붕(急難之朋·급하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을 지켜야 한다는 현자(賢者)들의 충고는 이들의 환호 속에 매몰될 것이다. 그리고 흑심(黑心)을 품은 당사국이 포함된 평화협정은 예외 없이 파기되었고, 많은 평화협정이 상대국의 안보 장치를 해체하는 수단이자 '전쟁의 전주곡'이었다는 역사의 교훈도 외면될 것이다. 역사의 교훈을 외면하는 나라는 망국(亡國)을 면치 못했다. 정부는 이런 이치를 몰라 평화협정을 서 두르는 것일까?
육식동물과 초식동물 간의 평화협정은 지켜질 수 없다. 송아지는 늑대를 잡아먹지 못하지만, 늑대는 배가 고파지면 송아지를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 북한이 초식동물로 바뀐다면 즉 인권을 존중하고 정권의 안전보다 주민의 삶의 질을 중시하고 도발보다 상생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는 체제로 변신한다면 평화협정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들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