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미·북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은 세계사에 중요한 사건"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화자찬은 귀국길에도 이어졌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트위터를 통해 "정말로 놀라운 방문 후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용감한 자만이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화염과 분노'나 '핵 버튼' 같은 단어를 김정은과 주고받았던 상황을 생각하면 이번 회담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미국 언론들은 자국 대통령이 이끌어낸 회담 결과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미국 CNN은 헤드라인을 '역사적인 정상회담'으로 시작했지만 "비핵화에 대해선 공허한 약속만 남았다"고 했다. 합의문에 구체적 비핵화 방법론 없이 '완전한 비핵화'라는 추상적 단어만 들어갔다는 것이다. NBC 기자는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가족과 국민, 미 국민을 죽인 김정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재능이 있다'고 한 건 무슨 의미인가"라고 쏘아붙였다. AP통신은 회담 자체가 "실패했다(fall flat)"고 했다.
'반(反)트럼프 정서' 등 미국 내 진영 논리가 이런 보도들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미 주요 언론 매체들의 평가는 트럼프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알맹이 없는 회담'이라는 게 대체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서 한·미 연합훈련을 '도발적'이고 '돈이 많이 든다'며 중단하겠다고 한 데 대해서도 우려가 줄을 잇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한·미 훈련은 양국 동맹의 핵심적 부분이다. 북한이 실제 핵무기를 폐기도 하기 전에 미국이 양보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했다.
반면 중국·러시아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한·미 훈련을 일종의 '도발'로 인정한 것은 북한과 중국·러시아가 거둔 전략적 승리"라고 했다.
외신들의 이번 회담을 보는 시각은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한 청와대와 국내 여권(與圈)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한국 언론들도 '평화의 문 열다' '한반도 해빙' '대전환' 같은 제목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네이버·다음 등 인터넷 포털에서도 미·북 합의 사안을 철저히 분석하고 한계점을 짚는 보도는 화면 구석에 배치되거나 비판
댓글에 파묻혔다. 상당수 전문가가 "CVID가 빠진 미·북 회담 결과는 실망스럽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 또한 언론의 주목을 받진 못하고 있다.
미 언론들의 냉혹한 평가가 맞는지, 한국 언론·포털의 보도가 맞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1~2년 혹은 몇 달 후면 이번 싱가포르 미·북 회담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