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냐, ‘인민공화국’이냐
2006.02.08 15:43
[류근일, “‘대한민국’이냐, ‘인민공화국’이냐,” 미래한국, 2005. 11. 21, 5쪽; 11월 12일 신반포중앙교회에서 열린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의 강연 및 토론을 요약.]
시국진단에 앞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나마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나는 서울대 56학번이다. 당시는 자유당 말기,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매일 연탄가스로 죽는 사람, 복어 알 먹고 죽는 사람, 동사(凍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사화됐다. 중고교시절에는 교복을 입는다지만, 대학가면 입을 옷도 없었다. 상당수 남학생들은 미(美)군복을 꺼멓게 물들여 입고 다녔다. ‘치솔부대‘라 해서 하숙할 돈이 없이 없는 지방생들은 칫솔만 들고 다니며 남산 벤취 등에서 숙식을 했을 정도였다.
많은 젊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불평불만이 자라났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독일 사회민주주의와 영국 민주사회주의 서적을 탐독케 됐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신문에 쓴 글 때문에 결국 법정까지 갔다. 1심, 2심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글에 실린 사회민주주의나 민주사회주의가 위헌(違憲)이라 보기 어렵다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5·16 직후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2년형을 선고했고, 다시 군사법원은 4·19이후 남북학생회담추진 건(件)에 대해 소급입법을 적용해 15년형을 선고했다. 결국 8년 간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74년 무렵 유신당시에는 유신반대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이유로 2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국내외 여론의 압박으로 10개월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넋두리는 지난날 내가 두 가지와 싸워왔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하나는 군사정권, 다른 하나는 극좌(極左)파였다. 운동권 내부에서 극좌파와 피나는 싸움을 벌여왔다. “진보 좋다! 그러나 친북(親北)은 아니다!” 일찍부터 나는 극좌와 사이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전에는 극좌와 공개적으로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 당시 가졌던 도덕적 철칙 중 하나였다. 그러던 나에게 87년 6·29는 20년 넘게 닫아 온 말문을 열게 했다.
‘6·29이후 어차피 정치폭력으로서의 권위주의는 망한 것이었다. 국민소득이 만불을 향해 가는데 무슨 권위주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남아있는 아성(牙城)은 점진적으로 바꿔가면 된다. 이제 문제는 NL주사파이다. 새로운 독재와의 싸움이 중요해진 것이다.‘ 싸우다보니 3자(者)의 눈에는 ‘천하용공분자‘ 류근일이 ‘우익 공적(公敵) 1호‘로 비쳐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의 우리나라를 돌아보자. 주사파가 정권을 장악하고, 사회중추를 장악해버렸다. 이건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
나는 운동권 특유의 순발력 탓인지 너무 빨리 느껴서 탈인 사람이다. 이상하게 이데올로기적 촉수가 발달해 사람들보다 먼저 내다본다. 80년대 중반에 NL주사파가 천하통일하는 것을 보고 ‘아 이젠 공산당이다!‘싶었다.
낙관론자들은 북한은 다 망했는데 일부에서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한다. 북한은 이미 끝났으니까 아무리 퍼줘도 걱정없다고 생각한다. 걱정하는 사람들은 6·25를 겪은 선배세대의 기우(杞憂)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이미 다 먹혔다‘고 본다. 그 이유를 들어보겠다. 우선 조총련을 포함한 북한 매체들이 ‘남조선에서 다 이겼다‘고 쓰고 있다. 반공보수세력이 ‘다‘ 밀리고 진보개혁세력이 ‘다‘ 잡았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사회 내부 담론을 봐도 그렇다. 6·25가 통일전쟁이니, 맥아더가 침략군이니 하는 얘기는 미쳐서 한 말이 아니라 때가 돼서 나온 것이다. 꺼풀을 벗고 지상에 나올 때가 됐다는 것이다.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북한 신년사설도 올해를 미군철수원년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통일전선 맨 뒷줄에 있던 것이 맨 앞줄로 나온 것이다. 통일전선의 마지막 단계까지 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비관론의 또 다른 이유는 보수세력이 전투태세가 안돼 있다는 데 있다. 적은 항상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적보다 강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이다. 자금, 조직, 선전선동, 미디어 장악, 시민사회단체 장악, 집행부·입법부는 물론 내년 4~5월이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도 장악된다.
무엇보다 문화를 빼앗겼다. 서점을 돌아보라! 좌파서적 일색이다. 보수세력에게 청년들을 격동시키는 노래가 있는가? ‘노찾사‘같은 노래패가 있는가? 웰컴투동막골같은 영화가 있는가? 배우와 코메디언이 있는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아이들을 다 뺏겼다. 교장선생님 한 분을 만났다. 도서관 관리는 유독 전교조 소속교사들만 자청을 한다고 말했다. 거기서 학생들에게 읽을 책을 권장하고 사야 할 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220억 예산을 가진 전교조는 로마에 포교하는 사도(使徒) 바울처럼 자신들의 이념을 열정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반면 보수세력에는 싸움꾼이 없다. 반면 체제를 지키기 위해 투자하지 않는 ‘기회주의 보수‘는 너무 많다. 온갖 출세 다 누리며 귀공자로 살아오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이어지니까 자기는 ‘보수‘가 아니라 ‘중도우파‘입네 하는 부류다. 김정일에게 미움 안 살려고 애쓰고 있는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김정일이 남한을 먹어도 총애받겠다 싶다.
다른 나라처럼 대의(大義)를 위해 살고, 대의(大義)를 위해 죽는 ‘우익‘, 체제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보수‘가 드물다. 보수나 우익이란 엄청난 철학, 역사, 사생(死生)관을 가진 이들인데 우리나라엔 그런 세력이 없다.
단지 생활인들이 있을 뿐이다. 욕할 건 없다. 인생을 즐기겠다는 데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체제가 위기에 빠지면 정신을 차려 전사(戰士)를 만들고, 투자(投資)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부족하다.
상대방은 어떠한가? 40년 내공(內功)으로 조직, 자금, 미디어를 총동원해서 사립학교를 먹고, 국가보안법을 폐지시키고, 대한민국 50년 역사를 깡끄리 없애버리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나라, 없애야할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1948년 체제‘를 무효화(null and void)시키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전시작전통제권을 회수해서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제2의 6·15선언을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올 연합제나 연방제와 같은 민족통일의 ‘성(聖)스런 합의‘에는 사대매국세력, 즉 보수세력은 제외시키겠다고 나올 것이다. 그 다음은 남북 제(諸)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를 만들려 할 것이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얼마 전 언급한 국민통합연석회의는 예사롭게 안 보인다. 왜 뚱딴지 같은 연석회의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聯政)론도 의심스럽다. 뭔가 쫓기는 게 아닐까? 남북 제(諸)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와 같이 국회를 능가하는 무언가를 만들 필요성에 쫓기면서 나온 게 아닐까?
현재 경기침체, 재보선참패, 강정구사건 등 민심이 돌아서니까 힘차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을 뿐 ‘코스‘는 이렇게 정해져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승승장구하는 듯 하지만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대(對)좌파 싸움은 뉴라이트나 올드라이트에 아웃소싱하고 약간 좌파로 가자는 말을 하고 있다. 조금 나아지다가 내부에 정체성 혼선이 생기는 것이다. 막상막하의 완충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것은 학계·연예계·문화계·언론계·대학과 운동권 등 분야별로 빼앗긴 진지를 롤백(roll-back)으로 구축해가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남은 2년 반 동안 해내기엔 역부족이다. ‘진지 롤백‘은 항상 해야하는 일이지만 너무 늦는다. 진지전(陣地戰) 이전에 기동전(機動戰)이 돼야 한다. 건곤일척(乾坤一擲)으로 한 번 붙어보는 것이다. 결국 2007년 정권교체에 타겟을 둘 수밖에 없다. 생사를 건 싸움을 벌여보는 것이다.
2007년의 관건이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좌(左)가 우(右)보다 유리한 것은 광범위한 중간지대가 좌(左)에 가산점을 두고 있다는 데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골수 좌익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좌익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 대학교수·학원강사·언론계에 진출해 386투사들에 ‘부채(負債)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중간지대에 있다.
35세까지가 전교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탈(脫)이념·무(無)이념·개인주의자라 하지만 우파적 시각에서 한국현대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은 감점하고 북한에는 가산점을 주는 데 세뇌당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또한 중간지대에 있다.
중간의 회색지대에 있는 이들 중 3분의 1은 데려와야 한다. 내가 뉴라이트 운동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통보수엔 굳이 내가 갈 필요가 없다. 소(小)아시아는 이미 예수님이 누군지 알고 있지만 로마는 그렇지 않다. 선교사는 그런 곳에 가는 것 아닌가? 젊은 사람들을 밀어줘 중간지대의 20~30대를 견인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싶다. 뉴라이트와 정통보수간에 있던 오해를 불식하고, 조갑제 기자가 말했듯 분진합격(分進合擊)해야 한다고 본다.
이 다음 선거도 좌익들에 정권을 빼앗기면 방법이 없다. 지금 싸움은 건국초기의 원점(原點)으로 돌아가 있다. 이승만 노선이냐, 김일성 노선이냐? 사실 좌우도 의미가 없다. 대한민국이냐 인민공화국이냐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1948년체제‘를 지키느냐, 허무느냐의 다툼이기 때문이다.
혼란한 세상에선 죽을 줄 아는 사람이 시대(時代)를 거머쥐는 것이다. 목숨을 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61년 박정희 장군은 목숨을 내던지고 한강다리를 건넜지만, 장면 총리는 두려워 달아나 버렸다. YS, DJ 같은 이들도 한번도 꺽이지 않고 일관되게 목숨을 던져 권력을 움켜쥐었다. 거기 비하면 보수세력, 한나라당에는 목숨을 거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칼에 맞아 죽을 각오로 목숨 던져 싸워야지, 적당히 싸우다가 안 되면 도망간다는 심리로는 백전백패(百戰百敗)이다. 우리에겐 결사(決死)가 부족하다. 북한문제에서도 이스라엘 같으면 비밀리에 북한주민을 위한 탈출통로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백의종군(白衣從軍)하지만 후배들을 보면 좌파와 싸우기에 너무 내공이 모자라고 결사(決死)의 정신이 없어보인다. 그런 게 아무래도 찜찜하다. 어쨌건 뉴라이트와 정통보수, 모든 우파는 각자의 영역에서 역할을 분담해 중간지대의 30%를 끌어와 나라를 구해내야 할 것이다.
시국진단에 앞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나마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나는 서울대 56학번이다. 당시는 자유당 말기,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매일 연탄가스로 죽는 사람, 복어 알 먹고 죽는 사람, 동사(凍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사화됐다. 중고교시절에는 교복을 입는다지만, 대학가면 입을 옷도 없었다. 상당수 남학생들은 미(美)군복을 꺼멓게 물들여 입고 다녔다. ‘치솔부대‘라 해서 하숙할 돈이 없이 없는 지방생들은 칫솔만 들고 다니며 남산 벤취 등에서 숙식을 했을 정도였다.
많은 젊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불평불만이 자라났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독일 사회민주주의와 영국 민주사회주의 서적을 탐독케 됐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신문에 쓴 글 때문에 결국 법정까지 갔다. 1심, 2심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글에 실린 사회민주주의나 민주사회주의가 위헌(違憲)이라 보기 어렵다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5·16 직후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2년형을 선고했고, 다시 군사법원은 4·19이후 남북학생회담추진 건(件)에 대해 소급입법을 적용해 15년형을 선고했다. 결국 8년 간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74년 무렵 유신당시에는 유신반대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이유로 2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국내외 여론의 압박으로 10개월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넋두리는 지난날 내가 두 가지와 싸워왔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하나는 군사정권, 다른 하나는 극좌(極左)파였다. 운동권 내부에서 극좌파와 피나는 싸움을 벌여왔다. “진보 좋다! 그러나 친북(親北)은 아니다!” 일찍부터 나는 극좌와 사이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전에는 극좌와 공개적으로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 당시 가졌던 도덕적 철칙 중 하나였다. 그러던 나에게 87년 6·29는 20년 넘게 닫아 온 말문을 열게 했다.
‘6·29이후 어차피 정치폭력으로서의 권위주의는 망한 것이었다. 국민소득이 만불을 향해 가는데 무슨 권위주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남아있는 아성(牙城)은 점진적으로 바꿔가면 된다. 이제 문제는 NL주사파이다. 새로운 독재와의 싸움이 중요해진 것이다.‘ 싸우다보니 3자(者)의 눈에는 ‘천하용공분자‘ 류근일이 ‘우익 공적(公敵) 1호‘로 비쳐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의 우리나라를 돌아보자. 주사파가 정권을 장악하고, 사회중추를 장악해버렸다. 이건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
나는 운동권 특유의 순발력 탓인지 너무 빨리 느껴서 탈인 사람이다. 이상하게 이데올로기적 촉수가 발달해 사람들보다 먼저 내다본다. 80년대 중반에 NL주사파가 천하통일하는 것을 보고 ‘아 이젠 공산당이다!‘싶었다.
낙관론자들은 북한은 다 망했는데 일부에서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한다. 북한은 이미 끝났으니까 아무리 퍼줘도 걱정없다고 생각한다. 걱정하는 사람들은 6·25를 겪은 선배세대의 기우(杞憂)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이미 다 먹혔다‘고 본다. 그 이유를 들어보겠다. 우선 조총련을 포함한 북한 매체들이 ‘남조선에서 다 이겼다‘고 쓰고 있다. 반공보수세력이 ‘다‘ 밀리고 진보개혁세력이 ‘다‘ 잡았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사회 내부 담론을 봐도 그렇다. 6·25가 통일전쟁이니, 맥아더가 침략군이니 하는 얘기는 미쳐서 한 말이 아니라 때가 돼서 나온 것이다. 꺼풀을 벗고 지상에 나올 때가 됐다는 것이다.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북한 신년사설도 올해를 미군철수원년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통일전선 맨 뒷줄에 있던 것이 맨 앞줄로 나온 것이다. 통일전선의 마지막 단계까지 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비관론의 또 다른 이유는 보수세력이 전투태세가 안돼 있다는 데 있다. 적은 항상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적보다 강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이다. 자금, 조직, 선전선동, 미디어 장악, 시민사회단체 장악, 집행부·입법부는 물론 내년 4~5월이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도 장악된다.
무엇보다 문화를 빼앗겼다. 서점을 돌아보라! 좌파서적 일색이다. 보수세력에게 청년들을 격동시키는 노래가 있는가? ‘노찾사‘같은 노래패가 있는가? 웰컴투동막골같은 영화가 있는가? 배우와 코메디언이 있는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아이들을 다 뺏겼다. 교장선생님 한 분을 만났다. 도서관 관리는 유독 전교조 소속교사들만 자청을 한다고 말했다. 거기서 학생들에게 읽을 책을 권장하고 사야 할 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220억 예산을 가진 전교조는 로마에 포교하는 사도(使徒) 바울처럼 자신들의 이념을 열정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반면 보수세력에는 싸움꾼이 없다. 반면 체제를 지키기 위해 투자하지 않는 ‘기회주의 보수‘는 너무 많다. 온갖 출세 다 누리며 귀공자로 살아오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이어지니까 자기는 ‘보수‘가 아니라 ‘중도우파‘입네 하는 부류다. 김정일에게 미움 안 살려고 애쓰고 있는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김정일이 남한을 먹어도 총애받겠다 싶다.
다른 나라처럼 대의(大義)를 위해 살고, 대의(大義)를 위해 죽는 ‘우익‘, 체제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보수‘가 드물다. 보수나 우익이란 엄청난 철학, 역사, 사생(死生)관을 가진 이들인데 우리나라엔 그런 세력이 없다.
단지 생활인들이 있을 뿐이다. 욕할 건 없다. 인생을 즐기겠다는 데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체제가 위기에 빠지면 정신을 차려 전사(戰士)를 만들고, 투자(投資)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부족하다.
상대방은 어떠한가? 40년 내공(內功)으로 조직, 자금, 미디어를 총동원해서 사립학교를 먹고, 국가보안법을 폐지시키고, 대한민국 50년 역사를 깡끄리 없애버리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나라, 없애야할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1948년 체제‘를 무효화(null and void)시키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전시작전통제권을 회수해서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제2의 6·15선언을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올 연합제나 연방제와 같은 민족통일의 ‘성(聖)스런 합의‘에는 사대매국세력, 즉 보수세력은 제외시키겠다고 나올 것이다. 그 다음은 남북 제(諸)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를 만들려 할 것이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얼마 전 언급한 국민통합연석회의는 예사롭게 안 보인다. 왜 뚱딴지 같은 연석회의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聯政)론도 의심스럽다. 뭔가 쫓기는 게 아닐까? 남북 제(諸)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와 같이 국회를 능가하는 무언가를 만들 필요성에 쫓기면서 나온 게 아닐까?
현재 경기침체, 재보선참패, 강정구사건 등 민심이 돌아서니까 힘차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을 뿐 ‘코스‘는 이렇게 정해져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승승장구하는 듯 하지만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대(對)좌파 싸움은 뉴라이트나 올드라이트에 아웃소싱하고 약간 좌파로 가자는 말을 하고 있다. 조금 나아지다가 내부에 정체성 혼선이 생기는 것이다. 막상막하의 완충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것은 학계·연예계·문화계·언론계·대학과 운동권 등 분야별로 빼앗긴 진지를 롤백(roll-back)으로 구축해가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남은 2년 반 동안 해내기엔 역부족이다. ‘진지 롤백‘은 항상 해야하는 일이지만 너무 늦는다. 진지전(陣地戰) 이전에 기동전(機動戰)이 돼야 한다. 건곤일척(乾坤一擲)으로 한 번 붙어보는 것이다. 결국 2007년 정권교체에 타겟을 둘 수밖에 없다. 생사를 건 싸움을 벌여보는 것이다.
2007년의 관건이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서 좌(左)가 우(右)보다 유리한 것은 광범위한 중간지대가 좌(左)에 가산점을 두고 있다는 데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골수 좌익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좌익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 대학교수·학원강사·언론계에 진출해 386투사들에 ‘부채(負債)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중간지대에 있다.
35세까지가 전교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탈(脫)이념·무(無)이념·개인주의자라 하지만 우파적 시각에서 한국현대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은 감점하고 북한에는 가산점을 주는 데 세뇌당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또한 중간지대에 있다.
중간의 회색지대에 있는 이들 중 3분의 1은 데려와야 한다. 내가 뉴라이트 운동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통보수엔 굳이 내가 갈 필요가 없다. 소(小)아시아는 이미 예수님이 누군지 알고 있지만 로마는 그렇지 않다. 선교사는 그런 곳에 가는 것 아닌가? 젊은 사람들을 밀어줘 중간지대의 20~30대를 견인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싶다. 뉴라이트와 정통보수간에 있던 오해를 불식하고, 조갑제 기자가 말했듯 분진합격(分進合擊)해야 한다고 본다.
이 다음 선거도 좌익들에 정권을 빼앗기면 방법이 없다. 지금 싸움은 건국초기의 원점(原點)으로 돌아가 있다. 이승만 노선이냐, 김일성 노선이냐? 사실 좌우도 의미가 없다. 대한민국이냐 인민공화국이냐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1948년체제‘를 지키느냐, 허무느냐의 다툼이기 때문이다.
혼란한 세상에선 죽을 줄 아는 사람이 시대(時代)를 거머쥐는 것이다. 목숨을 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61년 박정희 장군은 목숨을 내던지고 한강다리를 건넜지만, 장면 총리는 두려워 달아나 버렸다. YS, DJ 같은 이들도 한번도 꺽이지 않고 일관되게 목숨을 던져 권력을 움켜쥐었다. 거기 비하면 보수세력, 한나라당에는 목숨을 거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칼에 맞아 죽을 각오로 목숨 던져 싸워야지, 적당히 싸우다가 안 되면 도망간다는 심리로는 백전백패(百戰百敗)이다. 우리에겐 결사(決死)가 부족하다. 북한문제에서도 이스라엘 같으면 비밀리에 북한주민을 위한 탈출통로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백의종군(白衣從軍)하지만 후배들을 보면 좌파와 싸우기에 너무 내공이 모자라고 결사(決死)의 정신이 없어보인다. 그런 게 아무래도 찜찜하다. 어쨌건 뉴라이트와 정통보수, 모든 우파는 각자의 영역에서 역할을 분담해 중간지대의 30%를 끌어와 나라를 구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