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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안 통하는 '깜깜이 바이러스'

경제적 피해 예측 현재로선 거의 무의미… 금리인하 등 실탄 대부분 소진
국가간 공조도 기대 어려워… 강력한 방역체계 구축이 증시 안정에 특효약


[안동현, "돈이 안 통하는 '깜깜이 바이러스'," 조선일보, 2020. 3. 18, A34쪽.]    → 코로나 19
                            

미국 현지 시각으로 16일, 개장하자마자 서킷 브레이커(주가가 급락할 때 주식 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것)가 발동되더니 다우지수가 무려 12.93%나 폭락해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낙폭도 낙폭이지만 더 우려되는 건 폭락 시점이다. 일요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긴급회의를 열고 4년 3개월 만에 제로 금리 복귀와 양적 완화 재소환을 선언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준으로서는 지난 3일 0.5%를 낮춘 지 12일 만에 한꺼번에 1%를 인하하는 '빅 컷(big cut)'이란 최대 화력을 퍼부었는데, 초연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시장은 더 가공할 모습으로 재반격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말 처음 우한에서 발병한 지 3개월 만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와 이란, 이탈리아를 거쳐 이제 유럽과 미국까지 본격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방역에 실패해 뚫린다면 그야말로 세계경제가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민간 소비가 성장의 70%를 차지한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면 미국은 세계의 '소비처'다. 중국 문제가 세계적 공급망을 훼손해 혼란을 야기한다면, 미국 문제는 수요 쪽에 중대한 공백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자칫하면 수급의 양 날개가 모두 훼손되어 글로벌 경제가 양력(揚力)을 잃게 될 우려가 있다.

문제는 과연 미국 경제가 얼마만큼 피해를 볼지 가늠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바이러스는 궁극적으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숙주가 필요한 만큼 그 확산력은 생태적 요소와 함께 사회적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더군다나 나라마다 방역 체계와 능력이 다르다 보니 경제적 피해를 예측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거의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불확실성이 미 연준의 금리 인하에도 주식시장이 폭락을 거듭하는 주된 이유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 네 가지 정도 요인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빅 컷은 시장에 사안의 심각성을 전달하는 신호 효과(signaling device)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치료제가 아니라 오히려 시장에 경종을 울린 각성제가 된 격이다. 특히 지난 3일의 0.5% 인하가 그랬을 개연성이 높다. 둘째, 일단 이렇게 투자 심리가 냉각된 상태에서 금리 추가 인하를 단행할 경우 시장의 공포를 더 자극할 위험이 있다. 2008년 리먼 사태 때 주가가 폭락하자 연준은 10월 두 차례에 걸쳐 0.5%씩 전격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했으나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만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셋째,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인데 이번 1% 빅 컷과 7000억달러 규모의 양적 완화 시행으로 이제 미 연준의 실탄은 대부분 소진되었다. 이제 남은 실탄은 양적 완화를 추가 진행하는 정도다. 문제는 2008년 당시에는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부족이 위기의 본질이었기 때문에 타깃이 분명하고 이러한 '돈 살포' 전략이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잠재적 피해자가 확진에 상관없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전 국민과 기업들이고 또한 경제 전체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학습 효과 때문에 양적 완화는 이제 '그 나물에 그 밥'으로 기대감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기댈 것은 재정 정책인데, 이미 트럼프 행정부에서 부양책으로 도입한 법인세 및 소득세 인하로 더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사회보장세나 실업보험 등의 급여세 감면과 푸드 스탬프나 격리자 임금 보전 정도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미국뿐 아니라 영국, 호주, 홍콩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나 양적 완화 행렬에 동참하면서 통화 정책의 공조는 긴밀히 이루어지는 반면 재정 정책은 나라마다 처한 사정이 다르다 보니 공조가 쉽지 않다. 금융 위기 당시에는 G20 공조를 통해 주요국 간 긴밀한 정책 공조가 이루어졌다. 반면 최근에는 포퓰리즘의 부상으로 국가 간 적대감을 정책에까지 악용하다 보니 최근 유가 폭락에서 보듯 국가 간 공조가 취약해졌다.

바이러스는 유동성을 풀어 대응할 게 아니라 소독제를 뿌려 대응해야 한다. 경제 정책을 통해 사후 피해를 수습하는 '청소(clean up the mess)' 정책보다는 바이러스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강력한 방역 체계 구축이 오히려 증시 안정에는 더 특효약일 것이다.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 예측이 쉽지 않은 만큼 투자자는 현금을, 정부는 정책 실탄을 최대한 비축해야 할 시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8/20200318000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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