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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 못 구한 정부가 ‘수칙 위반 무관용’ 국민 탓만

[사설: "백신 못 구한 정부가 ‘수칙 위반 무관용’ 국민 탓만"  조선일보, 2021. 4. 6, A31쪽.]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4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해 “코로나 수칙 위반 업소는 무관용 원칙으로 엄벌에 처하겠다”고 했다.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도 5일 “집중 단속에 들어간다”고 했다. 코로나 확진자 수는 하루 400명 수준에서 오르내리다가 1주일 전부터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면서 평균 500명을 넘어섰다. 정부가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선 백신 확보에 실패한 정부가 국민 탓만 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백신을 충분히 확보한 나라들은 서서히 정상 생활 복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누적 접종률 116%를 넘은 이스라엘은 5일 군인들부터 마스크 벗기를 허용했다. 54%대의 영국은 조만간 축구 경기, 공연 등의 관람 제한을 해제할 예정이다. 미국도 국민 1억명이 접종을 완료했다. 우리는 4일 현재 접종률 1.85%로 세계 98위로 뒤처져 있다. 접종률이 앞서가는 나라들 사이에선 접종을 증명하는 백신 여권을 지닌 상대국 국민에게 입국 시 자가 격리를 면제해주는 조치를 논의하는 상황이다. 이러다 한국은 교류가 막힌 ‘외딴 섬'처럼 될 수도 있다.

이 상황에 몰린 건 전적으로 무슨 이유에선지 백신 확보를 소홀히 한 정부의 오판 때문이었다. 다른 선진국들은 백신마다 효과·안전성·유통 조건이 제각각인 걸 감안해 선구매 방식으로 여러 종의 백신을 인구의 몇 배씩 확보했다. 한국 정부는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놓고 국민에겐 “남들 먼저 맞는 걸 보고 접종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터무니없는 자기 합리화를 해왔다. 그러고선 백신 부족 티를 안 내려고 며칠이면 다 맞힐 양(量)을 갖고 매일 찔끔찔끔 맞히는 보여주기 쇼를 하고 있다. 집단면역을 확보하려면 백신을 먼저 맞은 사람들의 면역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나머지 사람들이 접종을 끝내야 한다. 지금 진행 속도로는 올 11월 집단면역 형성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 자칫 내년 이맘때도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방역 수칙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백신도 못 구한 정부가 반성 한마디 없이 ‘수칙 안 지키면 엄벌, 무관용’이라고 국민 탓만 할 수 있는 건가. 정부가 ‘거리 두기 2주 더 연장’을 반복해온 것이 벌써 몇 달이다. 국민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무조건 단속, 금지 아닌 합리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이나 하고 있나. 국민이 백신 못 구한 정부에 ‘무관용'이라고 나서면 정부는 뭐라고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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