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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에서 일어난 일들

2018.06.26 16:39

oldfaith 조회 수:229

덕수궁에서 일어난 일들


[선우정, "덕수궁에서 일어난 일들," 조선일보, 2018. 6. 21, A34쪽; 사회부장.]                             
  •                             
  • 그제 문화재청이 덕수궁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일제에 의해 변형, 왜곡된 덕수궁의 제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보도 자료)는 것이다. '일제(日帝)'라는 단어의 무게가 모든 반론을 짓누른다.

    덕수궁 복원의 핵심은 옛 경기여고 터에 다시 선원전(璿源殿)을 짓는다는 것이다. 선원전은 역대 임금의 어진(御眞·초상화)을 둔 건물이다. 덕수궁의 선원전은 고종 승하 후 헐려 창덕궁으로 이전됐다. '왕실을 욕보이기 위한 일제의 만행'이라고들 하지만 '주인 없는 도심 궁궐의 근대적 재구성'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런 까닭에 지금 창덕궁엔 선원전이 두 곳이다. 6·25 직후 어진 대부분이 소실돼 제 기능도 못한다. 그런데 조선 왕조의 세 번째 선원전을 경기여고 터에 새로 만든다는 것이다.

    경기여고 터가 궁궐로 복원되면 덕수궁 넓이는 기존 6만㎡에 1만6000㎡를 더한다. 돌담길을 사이에 두고 영역도 세 곳으로 늘어난다. 대한문에서 시작되는 정전 영역, 중명전 영역, 선원전 영역이다. 덕수궁을 비롯한 서울의 조선 왕궁은 다섯 곳에 있다. 더하면 145만㎡에 달한다. 조선 시대엔 더 넓었다. 자금성(72만㎡)과 비교하면 조선의 왕궁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한양 도성 넓이(1660만㎡)의 10%에 가깝다. 당시엔 백성이 접근하지 못하는 왕실의 독점 공간이었다.

    조선 왕궁의 특징 중 하나가 말기에 더 커지고 화려해졌다는 점이다.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이 경제와 민생(民生)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알려졌다. 30년 후 경복궁을 버리고 덕수궁(당시 이름은 경운궁)을 확장했다. 궁궐 건축에 사용할 목재를 공급하기 위한 강원도 영월 백성의 고난이 역사책에 기록돼 있다. '조선은 궁궐 짓다가 망했다'고도 한다. 이 조선 궁궐 확장사(史)의 정점을 찍은 곳이 복원이 결정된 덕수궁 선원전 영역이다.

    덕수궁은 조선 궁궐 중 규모가 가장 작지만 교훈은 가장 큰 궁궐이다. 실패의 교훈이다. 그런데 '규모'만 복원될 뿐 '교훈'은 복원되지 않는다. '일제 탓'이란 말로 넘어갈 뿐이다.

    덕수궁은 세계 어느 나라 궁궐에도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다. 미 공사관(현 미 대사 관저)이 궁궐 안에 들어와 있었다. 북서쪽엔 러시아 공사관, 동쪽엔 영국 공사관이 붙어 있었다. 정동길 너머엔 프랑스 공사관이 있었다. 일제를 막기 위해 고종이 짜놓은 구조다. 열강의 보호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덕수궁은 '일제 탓에 완성된 궁궐이자 일제 탓에 해체된 궁궐'이 틀림없다.

    열강을 앞뒤 뜰에 배치한 고종은 궁궐 곳곳에 '중립(中立)' 의지를 담았다. 조선 궁궐의 정전은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처럼 선정(善政)을 다짐하는 이름을 붙인다. 덕수궁 정전만이 중립 의지를 담은 '중화전(中和殿)'이다. 중립은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만 가능하다. 고종도 부국강병을 위한 서구식 개혁의 필요성을 알았다. 그래서 그런 열망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정전을 만들었다. 서구식 궁전 '석조전'이다. 건물에 표현된 고종의 생존 의지는 이렇게 강했다.

    하지만 정책은 거꾸로 갔다. 선구적 관료를 배제했다. 왕권과 신권의 조화라는 조선의 전통도 이 시대에 숨통이 끊어졌다. 근왕 세력을 끼고 '대황제 폐하'가 모든 일을 통솔했다. 주조권을 비롯한 국가재정을 황실로 끌어왔다. 전근대적 '가산(家産) 국가'로 전락해 재정이 파탄 났다. 황권에 맞서는 이견(異見)을 용납하지 않았다. 서양식 근대국가와 정반대 길을 달려간 것이다. 부국강병은 꿈으로 끝났다. 남 탓이 아니다.

    고종이 일제를 피해 열강의 공사관 곁에서 새 궁궐을 만들 때 열강은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 영국은 일제와 동맹을 맺었고, 러시아는 일제와 조선 분할을 논했고, 미국은 일제의 조선 지배를 용인했다. 세상사를 뒤늦게 안 대한제국이 '전시(戰時) 중립'을 선언한 때는 러일전쟁 직전인 1904년 1월 21일이었다. 이 선언의 효력은 2월 23일 강압적 동맹(한일의정서)으로 끝났다. 33일 만이다. 이듬해 을사늑약이 미 공사관 옆 덕수궁 중명전에서 체결됐다. 외교권이 넘어가자 미 공사는 일제에 축하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선교사 호머 헐버트는 "미국은 작별 인사도 없이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가장 먼저 한국을 버렸다"고 했다.

    덕수궁 복원을 환영한다. 하지만 건물보다 기억의 복원이 더 필요하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힘없는 나라의 정치적 몸부림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증명하는 '덕수궁 시대'의 교훈이다. 모든 것을 '일제 탓'으로 돌리고 건물 공사에만 주력한다면 공원 한 조각을 더 늘리는 데 불과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0/20180620040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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