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에게 사살당한 우리 공무원을 정부 여당이 ‘월북자’로 몰아가고 있다. ‘빚 많은 도박 중독자의 현실 도피’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북한군에게 죽은 것도 억울한데 자기 정부에서 이런 손가락질을 당하니 정말 눈을 감지 못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그에 대해 또 ‘피살’ 아닌 “사망”이라고 했다. 북한이 살인범이라는 것을 흐리는 것이다. 사자(死者) 명예훼손이란 게 이런 것인가 싶다. 그가 실제 월북을 시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많다. 평생 바다에서 살아온 사람이 낮은 수온에 그 먼 거리(38km)에서 월북하려 했을까. 정말 월북하려 했다면 훨씬 좋은 조건을 찾을 수 있었다.


대통령과 정부는 죽은 공무원을 ‘국민’이 아니라 ‘월북자’로 만들면 여론 비판을 피할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런데 월북자로 만들면 북한의 만행이 더 부각된다. 대체 어떤 야만적 체제이길래 자진 월북한 사람을 6시간 동안이나 바다에 내버려 두고 있다가 구명 밧줄 대신 총탄 세례를 안기느냐는 것이다. 거기에다 시신 소각까지 했다니 경악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북한을 두둔하는 이 정부는 해경을 동원해 시신 수색을 하고 있다. 유족에게 시신이라도 돌려주려는 수색은 물론 아니다. ‘시신 소각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연평도 바다를 뒤지는 것이고, 불에 타지 않은 시신을 찾아내 ‘북한은 야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제 38일째다. 이 블랙코미디 같은 수색에 동원된 해경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정권 사람들이 숨진 공무원을 ‘월북자’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문재인 정권은 운동권 정권이다. 운동권의 주류는 NL(민족 해방) 계열이었다. 이른바 ‘주체사상파’다. 개중에는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 운운하면서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도 있었다. 유사시 한국 내 주요 기간 시설 파괴를 모의한 이석기 일당이 바로 NL파다.


한때의 철부지 행동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자신들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이 북한을 옹호, 대변했다. 북이 핵실험을 해 한반도에 먹구름을 드리운 몇 달 뒤에 북한 관계자들을 만난 민주당 지도부가 춤을 췄다. 이들은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면 감격하고 눈물을 흘린다. 문 정권은 국민의힘, 북한 정권 중 누구와 더 가까운가. 하나 마나 한 질문일 것이다.


같은 나라 전(前) 정권 사람들을 사람 사냥하듯 털고 털어 징역 합계 100년 이상을 때리면서 북한 정권의 온갖 만행은 다 덮고 변호하는 NL 운동권 출신들을 ‘정신적 월북자들’이라고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핵 미사일 도발, 개성의 우리 재산 폭파, 평양의 무관중 폭력 축구,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 암살, 우리 GP에 대한 사격 등 북의 모든 행태를 변호한다. 청와대 비서관은 김정은이 베트남까지 66시간 열차를 타고 간 이상한 행동에 대해 “탁월한 판단과 선택, 역사에서의 사열”이라고 했다. 민주당 중진은 “북한 주민은 부러움 없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런 생각을 ‘내재적 접근법’이라고 한다. 북한 정권과 북한 사람 처지에서 북한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정신적 월북이다.


북한 변호만이 아니다. 이제 중국 공산당까지 변호한다. ‘중국 공산당이 김일성과 공모해 6·25 남침을 일으켰다’는 명백한 사실까지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3불(不)로 중국에 안보 주권까지 내줬다. 정치적 이익 계산만으로 이러는 것이 아니다. 같은 편이라는 ‘동질감’이 바탕에 있다. 그러니 올림픽에서 태극기 아닌 한반도기를 드는 데에 아무런 거부감이나 불편함이 없다. 정권 사람들이 탈북자들을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진심이다. 이들에게 한국 야당은 경쟁자 아닌 적(敵)이고 탈북자는 탈출해온 귀순자 아닌 ‘우리 편’을 등진 배신자다.


정신적 월북자들의 속마음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미군만 없었으면 6·25 때 통일됐다’ ‘북한이 못사는 건 체제 때문이 아니고 미국 때문이다’ ‘3대 세습은 불가피하다’ ‘북한은 못살아도 건강하고 남한은 잘살아도 썩었다’ ‘북한 체제에서 자유 인권은 필요 없다’ ‘북한 핵은 미국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용이다’ ‘북한이 남한에 핵을 쓸 리가 없다’ ‘북한 핵은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남북이 손잡고 남한 보수를 없애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들이 숨진 공무원을 ‘월북자’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인지 부조화 같은 혼란을 느낀다. 자신들의 정신 월북은 의로운 통일 투쟁이고 육체 월북은 총 맞아 죽고 불태워져도 어쩔 수 없다는 건가.


이승을 떠도는 고혼(孤魂)이 있다면 이 공무원도 그럴 것 같다. 총탄 수십 발을 난사당하고, 소각되고, 그리고 자신의 정부에서 매도당했다. 만약 그가 월북이 아니고 실족이나 다른 이유로 북한까지 떠내려간 것이라면 그 한(恨)을 어찌 해야 하나. 유족들의 억울함, 원통함은 어찌 해야 하나. 누가 책임지나. 한국 땅에서 누릴 것 다 누리는 정신적 월북자들이 이 질문에 한번 답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