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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민주 투사'들이 만드는 공포의 공수처


[류근일, "왕년의 '민주 투사'들이 만드는 공포의 공수처," 조선일보, 2019. 5. 14, A34쪽.]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란 이름만 들어도 으스스하다. 권위주의 시대가 연상돼서다. 그 시절 무서운 '에비'가 많았다. 합동수사본부, 혁명검찰소, 혁명재판소, 비상군법회의, 남산(중앙정보부) 6국, 남영동 분실, 빙고 하우스 등. 그들이 떴다 하면 산천초목이 떨었다.

이른바 '진보' 한철에 큰소리깨나 친다는 사람들도 그때 그 '에비'들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그들도 권력을 잡더니 어느 날 갑자기 공수처를 만들겠다고 한다. 국정원과 기무사를 무력화한 '민주 투사'라면서 자기들도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염라대왕처(處)를 만들겠다니, 세상은 정말 변하는 게 아니라 돌고 도는 모양이다.

40년 전 장면이 눈에 선하다. 1974년 여름, 서울 필동의 남산 6국 유치 시설에 수많은 당시의 시국 사범이자 훗날의 실권자들이 온종일 책상다리를 한 채 고통스럽게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수사기관과 비상군법회의에서 숱한 곤욕을 치른 다음 일부는 그해 9월 안양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이감 첫날 저녁, 교도소 역사상 아마 한 번도 있어보지 않았을 법한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안양교도소 한 동을 꽉 메운 그들은 창문을 열어놓고 "오락회 하자"고 소리쳤다. 돌아가며 목청껏 각자의 애창곡을 불렀다. 교도소 당국은 그걸 저지하기보다는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렇던 '민주화 운동'이 그 후 어떻게 되었기에 이제 와선 권위주의 뺨치는 '그들의 에비'를 만들겠다고 한다. 알베르 카뮈가 말한 대로 '한때의 수형자가 처형자로 변한 것'인가?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렇게 될 만한 사상적 변곡점은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서울대 강의실 책상 위엔 유인물이 한 장씩 놓여 있었다. '자유주의 타도' '개량주의 타도' 격문이었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제헌 정신을 타도하려, 본격 전체주의인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제3 세계 민족·민중 혁명으로 '운동'이 급격히 바뀌고 있었다. 그 주도자들이 386 NL(민족 해방) 계열이었고 그들의 '운동'에서 자유주의는 혁명의 적(敵)으로 규정되었다.

일각에선 이런 현상을 좌파 독재라고 부른다. 사실이라면 그건 386 일부의 그런 반(反)자유주의 천년왕국(millenarian) 신앙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천년왕국 신앙이란 미국 칼러튼 대학 교수 월러 뉴웰이 저서 '폭정의 새로운 해석'에서 쓴 말이다. 폭정·독재·전체주의 중에서도 프랑스 혁명기의 자코뱅당 공포정치, 히틀러 나치즘, 스탈린주의, 마오쩌둥 사상, 폴 포트 학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는 현세의 종말, 최후의 심판, 구세주 출현, 천년왕국 도래를 공통적으로 읊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 계몽사상에 뿌리를 둔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존 로크의 견제와 균형,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을 중요시한다. 영국 명예혁명과 미국 독립혁명이 그것을 구현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은 1793~94년의 자코뱅 공포정치를 고비로 장 자크 루소의 독재로 갔다. 구체제를 타도하고 순수 민중 유토피아(이상향)를 만들려면 자유주의, 개인주의, 물질주의, 불순물을 무자비하게 숙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천년왕국의 적, 귀족·부르주아·제국주의·자본주의·유태인·쿨라크(kulak·부농) 등 적폐를 청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격화는 모든 군중 혁명, 홍위병 혁명, 영구 혁명의 숙명인지 모른다. 1789년에 프랑스에서 군중 혁명의 물꼬가 일단 터지자 사태는 하루가 다르게 과격해져 자코뱅 독재로 갔다. 러시아혁명 때도 케렌스키의 자유주의 기간은 볼셰비키 혁명 독재로 급전직하, 먹혀버렸다. 아랍의 봄 때도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자 사태는 급속히 이슬람 극단주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민주화가 군중 직접 행동과 광장 권력으로 이행하면서 촛불이 우상으로 섰다. 촛불 초기에 휩쓸렸던 일반 시민이 철수한 자리에 한 국판 자코뱅이 들어선 건 아닐지? 그리고 공수처는 그들의 과격을 집행할 '자코뱅 공안위원회'가 아닐지? 울산지법 김태규 부장판사는 물었다. "경찰, 검사, 판사들이 공수처에 무릎 꿇으면 견제는 고사하고 눈 한번 흘겨볼 수 있겠나?" 사법(司法)이 '운동'의 시녀가 되면 그것도 자의(恣意)적 지배다. 또 다른 권위주의가 또 다른 민주화 운동을 부르는 시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3/20190513026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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