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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KAL 진실 뒤집으려 김현희씨 테러해 온 국정원․TV들,” 조선일보, 2008. 11. 27, A31쪽.]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씨는 지난달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에게 73쪽의 자필 편지를 보내 “노무현 정부 때 국가정보원이 MBC․KBS․SBS 방송 3사를 동원해 KAL기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부풀리는 공작을 꾸몄다”고 밝혔다. 김씨는 “방송과 인터뷰하라는 국정원 지시를 거부한 뒤 살던 곳에서 추방돼 5년째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2003년 11월 MBC PD수첩을 시작으로, SBS, 이듬해 KBS가 ‘김현희는 안기부가 조작한 인물’의 가능성을 담은 방송을 내보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같은 단체도 기자회견을 갖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편지에서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10월 국정원 모 직원으로부터 ‘국정원 내부가 시끄러우니 외국으로 이민가라’고 권고받았는데, 국정원 담당관으로부터 수차례 MBC PD수첩에 출연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완강히 거부한 게 큰 화근이 됐다”고 했다. 김씨는 “방송 3사 기자들이 일제히 집 주변을 취재하기 시작했고 결국 사는 곳이 노출돼 어느 날 새벽 아이들을 업고 피신해야 했다”고 밝혔다.

MBC PD수첩은 2003년 11월 18일 ‘16년간의 의혹, KAL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을 내보내며 ‘김현희는 북한 공작원이 아니다’고 주장해 온 사람들에게 수백 만 시청자들 앞에 서는 무대를 만들어줬다. 지난 4월 미국 쇠고기의 광우병 의혹을 만들어낼 때와 비슷한 선동방식이다. PD수첩이 나간 지 닷새 뒤인 11월 23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기자회견을 갖고 이른바 ‘7대 의혹’을 제기했다. 11월 29일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같은 내용을 다뤘고 KBS는 이듬해 5월 ‘일요스페셜’에서 2부작으로 다른 방송들이 전한 내용을 확대해서 보도했다. 김씨를 향해 국정원과 방송 3사, 각종 단체들이 총공세를 편 것이다.

김씨는 “MBC와 SBS는 나의 출연 거부가 못마땅했는지 거주지를 촬영해 노출시켰다”고 했다. 그는 신분과 거주지가 노출되면 언제든 북한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처(前妻) 성혜림의 언니 아들로 남한에 귀순해 북한 체제를 공개 비판했던 이한영씨는 1997년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살해됐다.

노무현 정부가 만든 각종 과거사 위원회도 김씨를 가만두지 않았다. 2005년 국정원 ‘과거사발전위’, 2007년엔 ‘진실화해위원회’가 김씨를 조사하려 했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이미 사법부가 세 번이나 재판한 것을 과거사발전위가 4심을 하고 진실화해위가 5심을 하는 행위는 인민재판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1987년 사건 당시 김씨를 집중 조사했고 이후 줄곧 김씨를 보호 감독해 온 국정원이 정권 코드에 맞추겠다며 지난 5년 동안 이런 일을 벌여 왔던 것이다.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벌어진 ‘과거사 뒤집기’의 광풍이 남긴 부끄러운 흔적이다.

김씨가 편지에서 주장한 내용이 사실인지를 규명하는 작업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막대한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정원과 노무현 정권 등장 이래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돋아나 국민 세금을 빨아먹었던 과거사위원회가 정권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연약한 한 여성을 박해해 왔던 ‘권력 테러’의 진실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총대를 앞장서 메 온 방송 3사는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사과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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