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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과 6.25

2011.09.29 16:56

관리자 조회 수:862 추천:53

[출처--http://opentory.joins.com/Opentory 05.26]
김일성이 부랴부랴 모스크바에 나타난 것은 l949년말이었다. 스탈린과 회담할 대표단을 이끌고 온 것이다. 이때 김일성 일행이 스탈린 앞에서 브리핑한 내용은 두고두고 음미해 보게된다. 이 얘기는 바로 1970년 세계의 화제속에서 간행된『흐루시초프 회고록』에 나온다. 한 장에 걸쳐 6․25동란을 회상한 흐루시초프는 그 특유의 소탕한 인상대로 속에 있는 얘기를 꺼내놓았다. 그 무렵 흐루시초프는 모스크바지구 제1서기겸 당중앙위원으로 스탈린 가까이에 있었다. 바로 그 흐루시초프의 회고록 속에서 분명히 언급된 사실은 6․25동란은 김일성의 오판에서 비롯되었고 스탈린이 그것을 구두 결재함으로써 구체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스탈린앞에서 남한에 일격만 가하면 그 속(남한)에서 내란이 일어나게 되어 있고, 이때 북한인민의 힘이 남한으로 번진다고 호언했다. 스탈린은 물론 반대하지 않았다. “저희 민족들끼리 승부를 가리는 내부문제로 국한시킨다는 바람에 스탈린은 더욱 구미가 당겼다”고 흐루시초프는 회상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6․25동란 각본을 더 다듬어 가지고 오라고 일렀다. 스탈린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심사숙고한 구체적 계획안’을 요구한 것이다. 스탈린이 ‘심사숙고하라’고 타이른 것은 미국의 개입을 우려한 때문이다. 흐루시초프가 여기서 재삼 강조한 대목이 있다. 6․25동란은 스랄린의 발상이 아니고 ‘김일성 자신이 앞장서서 도발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스탈린의 역할은 ‘김일성의 전쟁도발 계획을 말리지 않은 것’이라고 흐루시초프는 말한다. 그러나 스탈린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잊지는 않았다. 김일성이 다시 모스크바를 찾아왔을 때 ‘그의  투쟁목표가 성취되는 날을 기대하면서’ 축배를 들어준 일이다. 드디어 동란은 벌어졌다. 그러나 김일성의 판단은 적중하지 않았다. 그는 남한내에 지하공산당 조직이 깔려 있어 당에서 버튼만 누르면 반정봉기가 일어날 줄 믿었다. 흐루시초프는 그런 봉기는 “끝끝내 일어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결국 모든 예언은 빗나간 채 동란은 진행되었다. 6․25동란 35년이지만 이 순간 그 김일성은 또 무슨 오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2의 6․25를 막는 길은 바로 김일성에게 오판의 자료나 심증을 주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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