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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철벽 수능, ‘문어의 꿈’은 언제쯤 이뤄질까

‘킬러 문항’ 없앤다더니 올해 더 어려워진 수능
“이어령도 울고 갈 국어” 우스개까지 등장
기초 학력 테스트했던 초창기 수능으로 돌아가고 대학 선발권 강화해야


[김윤덕, "30년 철벽 수능, ‘문어의 꿈’은 언제쯤 이뤄질까," 조선일보, 2023. 11. 28, A38쪽. 선임기자]

문어의 꿈’은 대한민국 초딩들의 떼창곡이다. 동요 아니고 가요인데도 아이들은 ‘따라 하기’ 챌린지로, 밈 영상으로 재생하며 이 노래를 추앙한다. 반전은 노랫말에 있다. 무지하게 우울하다. ‘꿈속에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며 줄무늬로, 점박이로 변신해 육지를 여행하던 문어가 잠에서 깨는 순간 ‘춥고 어둡고 무섭기도 한 바닷속’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절망하는 노래다. 곡을 만든 가수 안예은도 “인생이 안 풀려 한탄하며 쓴 곡을 초등생들이 불러도 되나?” 걱정했을 정도. 고개를 까딱거리며 ‘문어의 꿈’을 부르는 꼬마에게 물었다. 공부가 그렇게 힘드냐고. 아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아줌마는 재미있었어요?” 열 살 아이는 학원 교재 잔뜩 실린 트렁크를 끌고 수학학원 버스에 올랐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지를 끙끙대며 풀다 ‘문어의 꿈’을 흥얼거렸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1분에 1개꼴로 풀려면 놀이터는 그림의 떡이겠다 싶었다. 1개만 틀려도 등급이 달라지는 대학 입시로 사교육비는 지난해 역대 최대인 26조를 찍었다. 대통령이 킬러 문항을 없애라 지시하고, 교육부 담당 국장을 경질하고, 대형 입시학원을 압수수색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능출제위원회는 ‘매력적인 오답’으로 변별력을 확보했다고 자평했으나, 대다수 수험생들은 “매력 넘치는 ‘섹시 킬러 군단’이 목을 졸라 5교시 내내 지옥을 오갔다”고 자조했다. 수능이 쉬워지면 교실에도 숨통이 트일까 기대했던 교사들도 실망하긴 마찬가지다. “이어령도 울고 갈 국어” “이창용(한국은행 총재)도 반타작할 경제”라는 우스개가 등장했다. 쾌재를 부른 건 사교육 시장과 일타강사들이다.

교육 당국이 내세우는 전가의 보도는 변별력이다. 그러나 변별을 목적으로 등장한 킬러 문항은 최상위권을 뺀 나머지 학생들에겐 학습 의욕만 떨어뜨리는 독(毒)이다. 변별을 위한 문제가 대단히 깊이 있고 창의적인 것도 아니다. 스탠퍼드대 석학 조너선 프리처드가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을 “사실상 풀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해 세계적 망신에다 법정까지 가는 촌극이 벌어진 게 불과 2년 전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수능에 대한 교육부의 집착이다. 정해진 시간에 누가 더 많은 문제를 푸는지 측정하는 ‘스피드 게임’이자 ‘문제풀이 기술자 배출 시험’으로 전락한 수능을 ‘기초학력고사’ 정도로 완화하자고 각계가 입을 모으는데도, 교육부는 꿈쩍도 안 한다. 보수든, 진보든 정권이 바뀌어도 요지부동이다. 벌써 30년째다.

수능이 제일 공정해서가 아니다. 수능으로 줄세우는 게 제일 쉬워서다. 수능의 비중을 높일수록 소득 높은 강남 지역 학생들의 서울대 합격률이 높아진다. 서울대 김세직 교수 연구에 따르면, 서울 안에서도 강남구 일반고 학생의 서울대 합격률이 강북구의 20배나 됐다. 그나마도 수시를 포함해서 그렇지, 강북에서 정시로만 서울대 가는 학생은 한 학교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수능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렸다.

AI가 진격해오는 시대에 입시를 개혁하는 방법은, 대학의 자율적 선발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본고사를 부활하자는 게 아니다. 성적은 낮아도 로봇과 게임에 미친 괴짜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카이스트처럼, 이미 많은 대학이 다양한 평가 기준을 만들어 원하는 인재를 뽑고 있다.

수능에 학생종합부까지 관리하려면 학생들 부담만 가중된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해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교직 28년 차인 한 베테랑 교사는 국·영·수로만 수능 과목을 제한해도 교실이 살아난다고 했다. 30여년 전 박도순 고려대 교수가 첫 설계한 수능 과목도 애초엔 국어, 수리뿐이었다. 다른 과목들은 각 대학이 생활기록부를 통해 지망학과에 필요한 교과목 이수와 내신 점수로 평가하면 된다. 국·영·수 아닌 과목만이라도 교사가 입시에 휘둘리지 않고 다양한 협업과 활동을 통해 수업을 꾸려갈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사교육 시장, 교재 업계가 아우성치겠지만 밥그릇 카르텔을 끊어내는 것이 교육부의 할 일이다. 대학에 자율권을 주되 입시 부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또한 교육부 몫이다. 밤하늘을 나는 오색찬란한 문어가 되고 싶은 아이들에게 ‘너도 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려면, 아이들 어깨에서 돌덩이 같은 책가방부터 내려줘야 한다.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사다리를 세워줄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국가는 소멸 위기로 접어드는데 애 낳아 키우는 부모를 괴물로 몰아가는 입시 구조가 30년째 철벽이라는 데 우리의 비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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