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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집무실 팻말 뒤편

내가 누구고 왜 여기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든 대통령이 항상 물어야 하는 질문
용기 있게 결정 하고 용기 있는 결정 해야


[양상훈, "尹 집무실 팻말 뒤편," 조선일보, 2024. 2. 1, A30쪽. 주필]

윤석열 대통령이 ‘내가 다 책임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트루먼 미 대통령 집무실 팻말 문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할 때 같은 문구의 팻말을 윤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이 팻말은 지금도 윤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놓여 있을 것이다.

‘나는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라는 뜻이기도 한 이 팻말은 사실 트루먼 대통령이 만든 것이 아니다. 트루먼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부통령 취임 82일 만에 대통령이 됐다. 이때 미주리주 관리이던 트루먼의 친구가 미주리주 소년원 원생들이 만든 비슷한 팻말을 보고 이를 주문해 트루먼에게 선물했다. 문구가 마음에 들었는지 트루먼은 이를 집무실 책상 위에 뒀다.

트루먼은 대통령직을 이 문구 그대로 수행했다. 그가 대통령으로 내린 결정은 다른 대통령 열 명이 내린 결정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트루먼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라고 명령한 사람이다. 트루먼은 소련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세계를 지키겠다는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했다. 거침없던 공산주의 확산을 막은 첫 인물이 트루먼이다. 6·25 남침을 당한 대한민국을 위해 유럽 우방국들의 우려를 무릅쓰고 미군과 유엔군 파병을 결단해 우리를 구했다. 폐허가 된 유럽을 되살리기 위한 거대 지원 계획 ‘마셜 플랜’을 결정했고 서방 세계의 방패가 된 나토(NATO)도 그가 창설했다. 미국 내에선 백인들과 소속당(민주당) 당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흑백 차별을 없애는 조치를 잇달아 취했다. 모두 큰 용기를 필요로 했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결정이었다.

트루먼은 원자폭탄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오펜하이머가 자신 앞에서 핵 사용이 가져올 부정적 문제를 얘기하자 “손에 피 몇 방울 묻힌 xxx가 양손이 피투성이인 내 앞에서 징징댄다”고 경멸했다. 트루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일화다. 미국 대통령 중에 ‘The buck stops here’라는 문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꼽으라면 트루먼이 빠질 수 없다.

이런 트루먼이 대통령이 될 줄은 그 자신도 몰랐다. 꼬마 시절의 여자 친구와 결혼하면서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허세였다. 미국 정가에서 그는 대학도 못 나온 미주리 촌뜨기일 뿐이었다. 루스벨트가 트루먼을 부통령으로 지명한 것은 그가 이처럼 존재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대통령직을 승계한 다음 날 트루먼은 의회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기자들은 함께 포커를 치던 트루먼을 “친구 해리”라고 부르곤 했다. 트루먼은 모든 기자와 악수를 나누며 눈에 눈물이 맺혔다. 갑작스레 전쟁 중인 나라의 대통령이 돼 1200만 대군을 지휘하게 된 책임의 무게는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트루먼은 기자들에게 “여러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이어서 “혹시 여기에 짚 더미에 깔려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대통령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마치 달과 별과, 아무튼 모든 행성이 저를 덮치는 것 같았어요”라고 했다. “대통령님, 행운을 빕니다”라는 기자의 말을 뒤로 하고 백악관으로 떠났다.

이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트루먼과 윤 대통령의 ‘The buck stops here’ 팻말 얘기를 안다. 그런데 트루먼의 팻말 뒤편에 다른 문구가 쓰여 있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팻말 뒤편엔 ‘나는 미주리 출신이다(I’m from MISSOURI)’라고 쓰여 있었다. 이 문구가 원래 있었는지, 트루먼이 따로 주문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애용한 팻말이니 이 뒤편 글귀도 그의 신조였을 것이다.

‘나는 미주리 출신이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보았으나 알 수 없었다. 미 동부 엘리트들에게 미주리는 변방이다. 하지만 미주리 사람들은 근면 성실 정직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트루먼이 ‘나는 미주리 출신이다’라는 글귀를 8년간 매일 본 것은 자신이 출발했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뜻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고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것은 모든 대통령이 곱씹어야 할 질문이다. 윤 대통령은 트루먼 이상으로 자신이 대통령이 될 줄 몰랐던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충성 않고 나라에 충성하는 공직자로서 법치와 공정이 무너진 나라를 재건하라는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 여기가 윤 대통령의 출발점이자 초심이다.

달과 별과, 다른 모든 행성이 한꺼번에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덮쳐오고 때로는 그 압력이 너무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도 대통령은 결정을 내리는 용기를 가져야 하고,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그 결정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 법과 원칙 그리고 공정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지금 윤 대통령 앞에 여러 중요한 결정이 놓여 있다. 결정에 앞서 트루먼 팻말의 뒤편을 생각하며 내가 누군지, 어디에서 와서, 왜 여기에 있는지를 생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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