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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국회와 임정]

제헌국회는 왜 헌법에 臨政을 명기하지 않았나

분수령은 1948년 5·10 총선거
김구가 소련 지지로 돌아서고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하면서
임정은 몰락했다. 한국 민족주의의 정치적 오류는
독립과 건국 사이의 단절
자유와 민주의 가치로 거듭날 때
대한민국은 문명국가 될 것


[김영수, "제헌국회는 왜 헌법에 臨政을 명기하지 않았나," 조선일보, 2024. 8. 16, A30쪽. 영남대 교수. 정치학]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심훈) 해방은 도둑같이 찾아왔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념 대립으로 좌우가 갈리고 남북이 찢겼다. 결국 6·25전쟁이 일어나 동족의 피로 대지를 적셨다. 79년이 지난 올 광복절 기념식도 두 쪽이 났다. 신임 독립기념관장 인사를 둘러싼 정부와 광복회의 불화 때문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번 인사가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계획”, 즉 ‘건국절 제정을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이며,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반역자들이 일본 우익과 내통하여 오히려 일본과 같이 가고 있다”고 의심한다. 상식 밖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이 논란이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종찬 회장의 논리를 떠받치는 기둥은 1919년 상해임시정부(임정)에 의해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것이다. 그 반면 우파는 1948년 5·10선거로 건국되었다고 본다. 좌우 절충안은 1919년 건국을 시작해 1948년 완성됐다는 견해다. 하지만 이 이슈는 단지 논리적 문제가 아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한국 국내의 정치 세력은 임정의 지위를 놓고 고민했다. 여운형·박헌영 등 좌익은 임정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미군정은 당연히 임정의 지위를 부정했다. 송진우·김성수를 비롯한 한민당 세력만 임정봉대론을 주장했다.

김구는 임정의 유일한 정통성을 초지일관 견지했다. 반탁운동 때 김구는 임정이 미군정의 주권을 회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실패했다. 임정의 지위는 시간을 경과하며 변했다. 1948년 5·10 총선거가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김구는 원래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고, 1947년까지는 5·10 총선거를 지지했다. 하지만 1948년 들어 “미‧소 양군 철퇴와 한인의 자주적·민주적 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소련의 주장은 원칙적으로 정당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5·10 총선거에 불참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도 부정하면서, 임정은 몰락했다.

1948년 헌법 제정 때 제헌국회는 임정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심각하게 논의했다. 헌법 전문에 임정의 법통을 명기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최종안은 “대한민국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이었다.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했지만, 임정은 빠졌다. 정치적 정통성(legitimacy)이 아니라 단지 ‘정신’만 계승한다고 결론지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비로소 헌법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기했다. 40여 년 뒤 극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후손인 이종찬 전 민정당 의원의 공로였다.

하지만 제헌헌법에서 임정이 빠지면서 큰 문제가 생겼다. 주권 회복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세운 건국운동 사이에 역사적 단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원래 둘은 하나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미‧소가 격돌한 한반도에서 어느 한쪽의 선택이 불가피했을 때, 안타깝게도 김구는 통일을 명분으로 북쪽·소련과의 연대를 택했다. 이승만과 제헌의원들은 단독정부의 현실을 인정하고, 자유민주주의와 미국을 택했다. 남북협상이 실패하고 대한민국이 출범한 뒤에도, 김구는 계속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양군이 철퇴하면 진공상태에 빠지고, 북조선 인민군이 쳐들어오고, 내란이 일어난다는 것은 모두가 구실이고 모두가 비과학적인 관찰”이라고 외쳤다.

한국민족주의는 독립에서 건국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중대한 정치적 오류를 범했다. 또한 김구의 암살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1948년 대한민국과 이승만은 그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근대의 이념 대립이 있는 곳에서, 민족에 대한 호소는 모든 도전을 제압해 왔다. 하지만 한국은 다소 예외적이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한 1948년 대한민국이 너무 성공적이고, 북한처럼 민족주의의 실패가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로 폭풍 성장기를 막 끝낸 한국 사회가 중2병,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허태균) 과연 80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 혼란은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성찰의 시간이다. 나는 누구인지,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지 알려는 열망이 뜨겁다. 민족주의는 자유와 민주의 보편 가치 안에서 순화되어야 한다. 그 고뇌의 연옥을 지나면, 대한민국은 마침내 성숙한 문명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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