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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定 역사 교과서,  제 눈의 들보는 안 보고


[김태익, “檢定 역사 교과서, 제 눈의 들보는 안 보고,” 조선일보, 2017. 1. 4, A31.]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국정(國定) 역사 교과서 반대 운동에 앞장선 대표적 역사학자다. 그가 주도해 쓴 검정(檢定)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박정희 사진이 딱 한 장 실려 있다. 1961년 5월 16일 서울시청 앞에서 군복 차림에 검은 선글라스 끼고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 여기서 박정희는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가 아니다.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보는 것은 '군사정변 주역 박정희'일 뿐이다.


주 교수의 교과서에 어떤 대통령은 사진이 넉 장 실려 있다. 대통령 취임식과 민주화 운동, 김정일과의 남북 정상회담 때 모습이다. 하나같이 당당하거나 훤하게 웃고 있다. 교과서는 1998년 그가 베트남 호찌민 묘소에 가 헌화하는 사진을 싣고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썼다. '신선한 충격' 같은 주관적 표현은 이제껏 어느 역사 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없다. 교과서가 어느 대통령을 '미화(美化)'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책이 나오기 전부터 '박정희 미화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새 교과서를 조금만 찬찬히 들춰보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10월 유신을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 체제였다"고 썼다. '굴욕적 한․일 회담'의 한계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국민의 정당한 시위와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 사례도 열거했다. 오히려 너무 눈치를 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새 교과서는 물론 대한민국의 성취와 발전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화'와는 거리가 멀다. 대다수 국민이 아들딸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 역사 교과서 '정상화(正常化)' 쪽에 가깝다. 새 교과서가 진선진미(盡善盡美)하다는 게 아니다. 검정 교과서들은 남의 흠 잡기 전에 우선 제 눈의 들보부터 봐야 한다.

국정․검정을 혼용(混用)토록 하겠다는 것은 '단일 교과서'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국정 포기 선언이다. 그런데도 반대 진영에선 줄기차게 새 교과서 '완전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아예 인쇄 자체를 막아 씨앗 단계에서 밟아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국정 반대 논리는 단일 교과서가 교육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좌편향이 대세를 이루는 교육 현장에 새로운 사관(史觀)의 교과서 하나를 넣어 혼용시키는 것조차 막겠다는 발상이야말로 다양성을 죽이는 것이다.


해마다 60만명이 고교에 진학해 역사 교과서를 배운다.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이 된 작년부터 교과서는 더 중요해졌다. 2년이면 120만명, 지난 대선에서 승패를 가른 표 차이만 한 숫자다. 이만하면 그들이 똘똘 뭉쳐 검정 교과서를 사수하려는 이유를 알 만하다. 검정 교과서는 자기들 노선과 이념으로 주입된 미래의 유권자를 키워내는 더없는 정치 수단인 셈이다.


새 교과서 필진 중 상당수가 관련 학회의 대표를 지냈다. 이들은 1년 넘게 고생한 대가로 집필료․자료조사비 합쳐 한 사람당 2000만원 정도 받았다고 한다. 검정 교과서 필자들이 60만 독자를 가진 출판 시장에서 해마다 인세를 챙기고 도덕적 우위를 차지한 것처럼 큰소리치는 것에 비하면 많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질은 새 교과서 쪽이 괄목상대할 만하다. 그들은 이래저래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이 두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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